여강의 글B(논문·편글)

전통 속 한국 여인의 정절

如岡園 2007. 1. 28. 16:07

 여성이 지니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겉모양에만 있기보다는 속 마음이 아름답다는 데 있습니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하는 속된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습니까?

 본질적인 미는 내심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여인이 세계 어느 나라 여성보다도 아름다울 수 있는 조건은 그 정절이 바른 데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전 작품이나 역사상에는 정절의 여인이 많습니다. 그 중 <삼국사기> 속의 "도미의 아내" 이야기를 하나 들어 봅시다.

 

 백제의 한 미천한 백성인 도미의 아내는 용모가 아름답고 절개가 곧은 여자였습니다. 백제의 제6대 개루왕이 이 얘기를 듣고 도미를 불러, "그대 부인의 덕이 정절을 위주로 한다고 하나, 만약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교묘한 말로 꾀면 능히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하므로, 도미가 "사람의 마음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신의 아내만은 비록 죽는 일이 있더라도 두 마음을 갖지 않을 사람이옵니다."고 하였습니다.

 왕은 도미 아내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도미를 궁궐에 잡아 가두어 두고 신하 한 사람을 왕처럼 꾸며 도미의 집으로 보내서 그의 아내를 범하려 하니, 도미의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 모시겠다는 핑게를 대고는 계집종을 자기처럼 꾸며 대신 모시게 했습니다.

 나중에사 자기가 속은 것을 알게 된 개루왕은 크게 분노한 나머지, 도미를 애매한 죄로 몰아 두 눈동자를 빼고 작은 배에 실어 강물 위에 던져 버리고는, 도미의 아내를 궁궐로 끌어들여 간음하려 했습니다. 이에 도미의 아내가 짐짓 말하기를, "이미 남편을 잃고 혼자몸이 되고 보니, 능히 스스로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대왕을 모시게 된 바에 어찌 감히 왕명을 받들지 않겠습니까만, 지금은 마침 경도로 몸이 더러우니, 다른 날을 기다려 깨끗하게 목욕을 한 다음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하였더니, 왕은 그 말을 믿고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도미의 아내는 그 길로 몰래 도망을 하여 강가에 이르렀는데, 배가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였더니, 조각배 한 척이 나타나 그녀는 이 배를 타고 천성도라는 섬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공교롭게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남편 도미를 만나, 이들 부부는 풀뿌리를 캐먹고 굶주림을 면하면서 근근히 연명을 하다가 그들의 사랑을 짓밟는 원수의 땅 백제를 떠나 배를 타고 멀리 고구려 땅에 가서 일생을 마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이었던지 아니었던지는 살필 바가 아닙니다만, 남편에 대한 절개를 지키려는 여인의 재치바르고 애절한 심상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인의 정절에 대한 관념은 삼종지도(三從之道), 일부종사(一夫從事), 불경이부(不更二夫)의 유교윤리에 의하여, 여성의 미덕으로, 나아가서는 여성의 도덕관으로 정착되었습니다만, 이 삼국사기 속 <도미의 아내>라는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유교윤리 이전의 부부애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 신뢰나 양심의 발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인간적 신뢰나 양심은 물질 중심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타산에 밝은 서구인으로서는 좀처럼 갖기 어려운 마음입니다. 헌옷을 벗어던지듯이 이혼을 하기도 하고, 또 내노라 하는 대통령 부인도 남편이 죽기가 바쁘게 돈많은 사람을 찾아 쉽게 재혼을 해버리는 서구 사회의 의식을 쉽게 닮을 수가 없는 것도, 명분이나 절개를 존중하는 한국인의 전통적 기질 탓일 것입니다.

 

 도미의 아내는 왕의 요청을 들어주고 도미를 잊어버린 채, 현실에 안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를 않고 교묘한 핑계를 대어 몰래 도망까지 하여 눈 먼 남편을 찾아 끝까지 일부종사 하는 절개를 지켰습니다. 여기에 한국 여인의 강점과 미덕이 있고, 이것이 한국의 전통적 여인상입니다. 

 십자군으로 출정하는 서구의 남성들은 그들의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우는 수선을 떨었지만, 열녀적 기질을 믿는 한국의 남성은 그것을 오히려 웃음거리로 아는 것입니다.

 한국 여인이 전통적으로 지켜 온 매운 정절의 표징은 비각이나 열녀문으로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물적 증거 이상으로 오늘을 사는 한국 여성의 마음 속에 정절이 뿌리내려 있다는 것은 한국 여인을 돋보이게 하는 자랑스런 유산입니다.    ('87. 5  KBS 여성 스튜디오 - 한국의 여인상)

 

                                                                    여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