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百濟金銅龍鳳蓬萊山香爐)는 1993년 10월 하순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실시한 부여 능산리의 절터 유적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국보 중의 최고 걸작 향로이다.
내가 이 백제 금동향로에 관심하게 된 것은 1994년 <한국동물우화소설연구>를 출판할 때인데, 서울의 유명출판사 사장이 동물 상징에 별다른 관심이 있었던 데다 내 책의 내용이 동물과 관련된 내용이라 책의 장정에 걸맞는 사진을 선택하면서 통일신라시대의 '토끼 두꺼비무늬 수막새'와 여기서 말하는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 실물 사진을 책의 장정으로 사용하였는데, 경주 박물관에 소장된 '토끼 두꺼비무늬 수막새' 사진은 교과서 같은데서 간혹 보아 알고 있는 바였지만 금동향로 사진은 낯이 설어 알아보았더니, 그것이 바로 몇개월 전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그 향로였던 것이다.
천 년이 넘는 시공을 뛰어넘어 백제인의 숭고한 장인정신과 백제미술의 향기를 전해주는 금동향로이면서 다채한 동물 문양이 다양하게 부각된 이 향로는 일시에 나를 매료케 했다.
동물의 문학적 발상과 상징에 관심하고 동물의 의인화 기법을 빌린 문학작품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던 당시, 동물 상징이 다른 예술 영역에는 어떤 양태로 수용되고 있는가도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던 터에, 무려 65종의 동물이 양각으로 부각되어 있다는 이 향로를 꼭 한번 보고 싶던 차, 이의 원형 복각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이 정교한 대작을 재현하기 위하여 정밀 실측에 의한 조각을 하고 고대 주물기법을 그대로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의 엄정한 기술지원 및 감리를 받아 제작하였다는데, 원형 복각품은 실물 크기로 청동으로 제작하여 고풍의 금분도금으로 표면처리한 것이고, 높이 28센티미터의 축소형(원형 향로 높이는 64센티미터)은 실용성과 상품성을 고려, 주석으로 제작 순금도금을 하여 문화재 상품으로서 국내외에 소개되었던 것이다.
상품 가격이 부담스러워 즉시 구입을 못하고 있었던 나는 4,5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제작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쾌재를 불렀다. 복각품에도 유사품이 있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인증하는 관장의 직인과 단위상품 고유번호 0415가 각인된 이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순금도금 복각품을 수중에 넣고 혼자 쾌재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회심의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 향로는 좌대와 몸체, 뚜껑과 용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구성 원리는 연꽃에서 출현하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의 불교관과 봉래산을 중심으로 한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음양(陰陽)의 조화 속에 삼라만상이 존재하는 우주를 나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향로의 좌대로 표현된 용은, 수중과 지하 세계와 음계(陰界)를 상징하는 가장 원초적인 우주의 근원으로, 지상을 향해 용솟음치는 기운찬 모습으로 다이나믹한 기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용좌 위에 떠받쳐진 향로의 몸체 하단은 환생을 상징하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하고 있어, 봉황의 양계(陽界)와 용의 음계(陰界) 사이에서 삼라만상을 떠받치고 있는데, 이 연꽃은 상서로운 조화로 만물을 탄생시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향로의 뚜껑부분이 되는 몸체의 상단은,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는 봉래산과 진기한 새들과 기이한 짐승같은 동물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으며, 향로 꼭대기에는 그야말로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하는 봉황을 얹어 하늘의 기상과 양계의 상서로움을 상징하고 있다.
이 향로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봉래산을 중심으로 한 신선의 세계이다. 향로 꼭대기에 날개를 펴고 서 있는 봉황을 다섯마리의 기러기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신선 세계의 악사들은 봉황을 맞아 연주하고 산중의 신선들은 음악과 함께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낚시를 하거나 머리를 감고 말 타고 수렵을 즐기기도 한다.
이 향로에는 자그마치 74개의 산봉우리와,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동물과 호랑이 코끼리 원숭이 등 현실 세계의 동물 65마리, 5인의 악사를 포함한 18인의 인물상이 부각되어 있다.
이 향로에 양각으로 입체감 있게 부조된 인물상과 동물문양의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짚어보면, 우선 향로의 꼭지를 장식한 봉황이 눈에 띈다. 이 새는 몸에는 오색 문채가 있고 음악을 좋아하여 가곡을 짓고 명공에 명하여 악기를 만들어 연주케 한다고 하는데 바로 그 모습이 생생하게 부조되어 있다.
진나라 완함이라는 악공이 비파를 개량하여 만든 완함을 타는 주악선인상(奏樂仙人像)의 측면을 향해 연주하는 표정에는 엷은 미소가 감돌고 있다.
머리에 관을 쓰고 요고(腰鼓)를 연주하는 천상계 악사의 문양하며, 향로 뚜껑에 표현된 첩첩산중으로 날아드는 두루미의 형상과 학춤을 추는 모습은 신선세계 그대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비슷한 모양을 볼수 있는 날개 달린 신수(神獸)는, 벼같은 곡식을 오른손으로 잡고 산자락 사이를 가로질러 질주하고 있다.
백제금동향로에 새겨진 자라 모양의 짐승은 새처럼 나는 모양으로 묘사되었으며, 곰의 형상은 전설상의 황웅(黃熊)을 묘사한 것일 것이다.
입 밖으로 돌출한 상아와 코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 코끼리의 등에는 한 신선이 짐을 갖고 타고 있어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다.
인간과 동물은 오랜 세월 동안 가까이 접촉하며 살아왔고 그 생리적 동질성으로 말미암아 일찍부터 정신적 관계를 맺어 왔다.
신화적 사유에서는 사람과 동물과의 혈족관계를 신앙하여 스스로 곰이며 호랑이임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동물에게서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받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사람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때로는 인간의 욕구를 이들 동물에 담아 표현하였으며 피안의 세계로 인간의 영혼을 인도하는 영매(靈媒)이며 보은의 使者이기도 하다.
신적인 것이 동물에 깃들고 동물을 통해 시현될 때 동물은 신성현시(神聖顯示)의 주체가 되고 보호령이며 수호신으로 존재한다. 동물과 인간은 심성이 교감하는 상관관계 속에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신화의 세계에서는 인간 이상의 영감을 가진 신성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상상의 동물까지 그려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동물이란 존재물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기대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 모든 종류의 동물을 구현하고 있고, 역으로 모든 종류의 동물 속에 인간의 여러 면모를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을 비롯한 다양의 예술작품에 동물 모습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도 그런 소이연(所以然)이 아닐까 한다.
향(香)은 정화와 신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신과 인간이 교통하게 하는 매개물이다. 향은 본디 신선이 사는 산에서 피는 꽃의 향기로서 모든 마귀나 독충을 물리친다고 한다. 따라서 향로는 신선사상과 관련된 것이 많다고 한다.
신화의 세계에서 동물이 신과 인간의 영매(靈媒)였다는 점과, 향이 신과 인간의 교통매개물(交通媒介物)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백제청동용봉봉래산향로에서 무려 65종의 동물문양(動物紋樣)이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2005. 12. 10 동인지 <길>5호) 如 岡 김 재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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