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학아세(曲學阿世)
스스로 믿는 학설을 굽혀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한다는 말이다.
한의 무제는 왕위에 오르자 곧 천하의 인재를 찾았거니와 먼저 아흔살 난 시인 원고생(轅固生)을 불러 들였다. 그는 강직한 선비였기에 무제 측근의 어용학자들이 그를 중상하였다. "폐하, 그 따위 늙어빠진 촌뜨기 선비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저 촌구석에서 증손주나 돌보는 것이 제격일까 하옵니다."
그러나 무제는 단호히 그를 등용하였다. 그와 동시에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젊은 선비도 기용했는데 그 자 역시 원 노인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원 노인은 개의치 않고 젊은 선비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지금 학문의 길은 어지럽혀지고 속설(俗說)이 유행하고 있소. 이대로 놓아두면 유서있는 학문의 전통은 마침내 사설(邪說) 때문에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오. 그대는 요행히 젊으신 데다 학문을 즐기는 선비라고 들었소. 아무쪼록 올바른 학문을 착실히 닦아 널리 세상에 퍼뜨려 주오. 결코 자기가 믿는 학설을 굽혀(曲學)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阿世)하지는 마시오."
공손홍은 원 노인의 굳은 절개와 풍부한 학설에 감복하여 불손했던 일들을 사죄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른바, 철딱서니 없는 혁신, 천민민주주의의 논리가 활개치는 오늘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꼭 한번 짚어볼 만한 이야기다.
# 옥석혼효(玉石混淆)
구슬과 돌이 섞여 있다는 것이니 좋은 것과 나쁜 것,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이 섞여 있음을 말한다.
진(晉)나라의 갈홍(葛洪)이 지은 <抱朴子>라는 저서에 '玉石混淆'라는 말이 나오는데 대충 이러하다.
"시경이나 서경이 도의의 바다라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저서는 그것을 깊게 해 주는 강이요, 방법은 다를지언정 덕을 촉진하는데는 다름이 없다. 옛사람들은 곤산(崑山)의 구슬이 아니라고 해서 야광주(夜光珠)를 버리거나 성인의 글이 아니라고 해서 수양을 돕는 말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체 사람들은 여러가지 빛깔이 모여서 눈부신 아름다움을 빚어낸다는 것을 모른다. 천박한 시문을 찬양하는가 하면 뜻깊은 제자(諸子)의 글은 없신여기고 공허한 말재주에 탄복한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뒤집히고 구슬과 돌이 어우러진(玉石混淆) 격이니 참으로 한탄할 노릇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아무리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옥석은 가려서 처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다.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해서 인격을 못갖춘 개나 다름없는 대상에까지 인권을 보장해서도 안되는 일이 아닌가.
# 백년하청(百年河淸)
황하의 탁류가 맑아지기를 암만 기다려도 허사라는 데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음을 두고 '백년하청'이라 말한다.
주(周)나라의 영왕 7년(기원전565) 때 얘기다. 정(鄭)나라가 채(蔡)나라를 침공하여 그 곳의 공자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채는 초(楚)의 속국이었던 만큼 채나라 군병이 정나라를 공격해 왔다. 그 무렵 약소국인 정나라는 북쪽의 진(晉)나라와 남쪽의 초나라에게서 무시로 압력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그리하여 정나라의 지도자들은 긴급히 구수회의(鳩首會議)를 가졌는데 의견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곧 초나라에 항복을 하자는 의견과 진나라의 구원을 청하자는 의견이 그것이었다.
먼저 항복론을 펴는 측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周詩에 노래하기를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려도 끝이 없으며(百年河淸) 사람의 수명에는 한정이 있느니라 하였소. 지금 우리 백성들은 위급한 상태인 만큼 초나라에 항복하여 백성들의 고난을 덜어줍시다. 진나라 군사가 오면 또한 그들에게 항복하는 것이 약소국의 도리인 것이오."
한편 진나라의 구원을 청하자는 측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약소국일수록 신용이 없으면 당장 망하오. 우리는 진나라와 다섯번이나 동맹을 맺었던만큼 이제 와서 그 신의를 저버린다면, 설령 초나라가 구원해주려 할지라도 무슨 소용이겠소? 진나라는 우리를 멀리 하고 초나라는 우리를 속국으로 삼을 것이오."
결국 정(鄭)과 초(楚)는 화평을 맺었다.
# 기호지세(騎虎之勢)
범을 타고 몰아친다는 것이니, 이미 큰 일을 착수한 이상 도중에 그만 두면 오히려 위험함을 뜻한 말이다.
잡다한 이민족이 한족과 대항하여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났다 망했다하던 남북조(南北朝) 시대.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의 의제가 죽자 외척인 한인 양견(楊堅)이 궁중에 들어갔다.
견은 재상으로서 정치를 총괄하고 있었는데 한인의 천하를 이룩하고자 염원하고 있던 터에 죽은 의제의 자식이 어린데다가 슬기롭지도 못하여 스스로 제위에 올라 수(隋)나라를 세웠다.
서기 581년의 일로서 견은 그로부터 8년 후에는 남조의 진(陳)나라를 무찔러 천하를 통일하였다. 그가 수나라의 고조 문제(文帝)인 것이다. 문제의 황후가 독고황후(獨孤皇后)였다. 일찌기 남편의 대망을 알고 있었기에 남편이 북주(北周) 천하를 장악하고자 궁중에 들어갔을 때 사람을 보내어 남편을 격려하였다.
"하루에 천리를 내닫는 범을 탄 이상, 도중에 내려오신다면 범에게 잡아먹히십니다. 범을 몰아 끝까지 가셔야 합니다. 이미 큰 일을 일으키려고 일어서셨으니 도중에 물러나서는 안됩니다. 기필코 목적을 이룩하도록 힘써 주셔요."
남편이 이 말에 용기를 얻은 것은 물론이다.
# 어부지리(漁夫之利)
양편이 싸우고 있을 때 제3자가 이익을 차지함을 말한다.
전국시대에 연(燕)나라는 중국 북동 쪽에 있었는데 서쪽은 조(趙)나라, 남쪽은 제(齊)나라와 더불어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로부터 꾸준히 압력을 받고 있었다. 어느 해 연나라에 흉년이 든데다가 많은 병력이 제나라에 나가 있는 사이에 조나라가 연나라를 침략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연나라에서는 소대(蘇代)를 조나라 왕에게 보내어서 설득시키기로 하였다.
"저는 오늘 귀국에 오는 도중에 역수(易水)를 지났는데요, 문득 강가를 보니 조개가 입을 벌리고 볕을 쬐고 있습디다. 그런데 마침 비취새가 지나다가 조개의 살을 먹으려고 부리를 집어넣지 않았겠어요? 조개는 냉큼 껍질을 아물어버리고는 열어 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비취새가 말하기를,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안오면 너는 죽었지 별 수 없어."
하나 조개는 지지 않고 뇌까립디다.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죽었지 별 수 없어."
이렇게 서로 고집을 피우고 있는데 어부가 지나다가 한꺼번에 잡아버립디다 그려.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우리 연나라를 치려 하시거니와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비취새올시다. 두 나라가 싸와 백성들이 지치면 저 강대국인 진(秦)나라가 어부가 돼서 횡재를 거둘 것이올시다."
조나라 혜문왕은 현명한 왕이었기에 소대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자기네 조나라와 대붙어 있는 소나라의 위력을 생각하면 연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여겨 침공을 중지하였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얘기인데 휼방지쟁(鷸蚌之爭)은 어부지리(漁夫之利)라 하여 둘이 서로 싸우다가 제3자를 이롭게 하는 일을 두고 '휼방지쟁' 혹은 '어부지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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