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과 식탁에 마주 앉으면 위화감이 들 정도로 음식물에 대한 식성의 차이가 현저함을 느끼게 된다.
가정 주부가 정성들여 조리한 된장찌개나 풋나물 무침에 수저가 가기보다 인스턴트 식품을 기호하고 있는 아이들의 입맛을 굳이 탓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식탁에서까지 세대 차이가 나고 운치나 정이 사그라지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일기까지 한다.
장맛에서 그 집 인심까지를 통찰하기도 했던 옛날을 생각하면, 음식 맛이라는 게 단지 혀끝에 와 닿는 산함신감고(酸鹹辛甘苦)의 오미(五味)로만 가늠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손끝에서 맛이 난다는데 아무래도 음식이라는 게 정이 배고 정성이 깃들인 주부의 조리 과정을 거쳐야 맛이 살아난다고 보면, 인스턴트 식품의 기호는 뭔가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풍성한 요릿집의 진수성찬보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밀수제비에 더 강한 식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모정에서 비롯된 음식맛의 향수 탓이다.
살강 밑에 놓아 둔 식초병을 아침 저녁으로 흔들며, '알강달강 알강달강 니캉내캉 살자 니캉내캉 살자' 하고 어머니가 만들어 냈던 식초를 먹어 온 아들의 입맛에 합성 빙초산 식초가 쉽게 길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현대의 문명이 편의성과 아울러 간사한 구미를 유혹한다 할지라도 정성스레 차려 주는 주부의 마음이 있고, 음식맛에서 모정을 읽으며 모정에서 음식맛을 찾으려는 아들의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들 가정의 식탁에서도 음식에 대한 향수거리는 얼마든지 만들어지리라.
어버이날이 곧 다가온다. 참다운 모정이 담뿍 담긴 음식에 길들여진 아들딸이 그 맛의 향수를 느꺼워하며 정담이라도 나눌 수 있는 풍성한 식탁이 마련되었으면... (1990.5.1. H일보 鄕關散筆)
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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