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법륜(初轉法輪)
부타(佛陀)의 깨달음은 너무나 크고 미묘해서 누구에서 최초의 설교를 하느냐 - 그것이 문제였다. 이해되지 않는 진리란 진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 최초의 이 법을 설교한단 말인가? 또렷이 이 깨달음을 이해해 줄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의 생각은 맨먼저 아라라가라마(阿羅羅迦羅摩)라는 사상가에게 미첬다. 그렇지만 그는 벌써 죽고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에 부타는 우따가라마시(鬱陀迦羅摩子)라는 사상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그 역시 죽었다. 이리하여 부타의 제3의 선택은 5인의 비구(比丘)에게로 갔다.
그들은 일찌기 부타가 고행을 하고 있을 때 여러 모로 도와준 사람들이다.
들은 말로는 그들은 지금 바아라나시의 이시빠타나(仙人住處), 미가다아야(鹿野苑)에 있다고 한다.
우르베에라아(優留毘羅)의 수하정각(樹下正覺)의 땅으로부터 녹야원(鹿野苑)까지는 250 킬로 떨어져 있다. 그 먼 길을 부타는 최초의 설법을 하기 위해 멀다 않고 찾아갔다.
그렇지만 녹야원에 도착한 부타는 뜨거운 환영은 고사하고 오히려 냉대를 받아야만 했다.
5인의 비구들은 부타의 모습이 보이자 수근거렸다.
"보게, 저기 오는 자는 사문(沙門, 修行者) 구담(瞿曇, 고다마; 佛陀의 俗姓)이다. 그는 게을러서 고행도 방기하고 사치에 떨어졌지. 그가 오더라도 일어서지 말고 의발(衣鉢, 세 벌의 옷과 하나의 鉢 즉 비구가 소유한 모든 것)도 받지 마세."
그렇지만 막상 부타가 도착하니 그들은 일어서 맞아들이며 그의 의발(衣鉢)도 받아 주었다. 그리고 발 씻을 물을 떠다 두었다.
그러나 부타가 그의 깨달음을 얘기 하려 해도 그것만은 쉬 들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이전에 부타가 고행을 멈춘 사실을 타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타가 빼어난 지견(智見)을 깨달았다고는 생각해 주지 않았다.
문답이 오고 가기 여러번, 마침내 부타가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아, 그렇다면 그대들은 지금까지 내 안색이 지금처럼 빛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말을 듣고 보니 지금 부타(佛陀)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빛나는 안색을 띄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 저 사문(沙門)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
다섯 비구들은 다소간 다소곳해졌다.
마침내 부타는 그들을 설득할 기회를 얻었다. 초전법륜(初轉法輪) - 즉, 부타의 최초의 설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律藏 大品 1,6. 四分律 32)
감로(甘露)의 문(門)
그것은 부타가 정각(正覺)을 성취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그는 아직도 이연선(尼連禪) 강가의 보리수 아래 정좌(靜坐)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부타의 마음은 미혹(迷惑)에 휩싸였다.
"지금 내가 깨닫고 있는 것은 너무나 미묘해서 쉽사리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한다 해도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다만 피로, 곤비(困憊)할 뿐 아닐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부타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것은 부타에게 있어서 하나의 위기였다.
부타의 깨달음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사람들에게 설득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타의 가슴 속에만 잠겨 있다가 그의 죽음과 함께 지상에서 소멸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가 않다. 이른바 불전에서 말하는 '범천(梵天)의 권청(勸請)'이 여기서 비롯된다.
설법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부타를 보자 하늘에 있던 梵天(범천, 인도의 古神)은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멸망할 거"라고 우려했다.
부타에게 설법과 전도를 권하기 위해 범천(梵天)은 부타 앞에 나타나 예배하고 말했다.
"세존(世尊)아, 법(法)을 설(說)하라."
그제사 부타는 사람들에 대한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다시 한 번 심안(心眼)으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때 부타의 심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을 경전에선 못 속의 연꽃에 비유했다.
연못 속에는 청연(靑蓮), 홍연(紅蓮), 백연(白蓮)의 꽃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떤 것은 진흙 속에 묻힌채 꽃을 피웠고, 또 어떤 것은 수면에 떠서 꽃을 피우기도 했으며 또 어떤 것은 수면에서 불끈 솟아 꽃을 피워, 진흙 속에 있으면서 더러운 흙탕물에 물드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와 같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 부타는 마침내 설법전도의 결의를 굳게 하며 말했다.
"이제 나는 감로(甘露, AMATA의 譯. 이것을 마시면 不死한다는 술. 轉意하여 佛敎의 說法을 일컬음)의 문을 여노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릴지어다." (相應部經典 61, 勤請增一阿含經 19, 1)
사체설법(四諦說法)
5인의 비구를 앞에 두고 처음으로 설법을 시작한 부타(佛陀)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아, 출가(出家)한 자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두 개의 극단한 경우가 있다. 그 하나는 쾌락(快樂)에 치우치는 경우이다. 갖가지 욕망에 애착을 두는 것은 비천한 일이다. 범부의 소행이지 성부의 취할 바 아니요, 무익한 일이다. 또 하나는 금욕(禁慾)에 치우치는 경우이다. 자신이 고행을 일삼는 것은 다만 괴로울 뿐으로 무익하다. 성자(聖者)의 태도가 아닌 것이다. 나는 그 두 개의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이것이 눈을 뜨고 지혜를 낳고 깨달음과 자유를 얻는 길이다."
그리하여 부타는 주도(主導)의 실천 항목으로 여덟 개의 정도(正道)를 들었다. 正見, 正思,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이 그것이다.
다음에 부타는 이와 같은 실천의 자세가 어디서 생겨 나왔는가를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해 주는데 이것이 이른바 '四諦說法'으로서 부타 최초의 설법의 중심적인 내용이다. 체(諦)란 진리 혹은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불교 술어다.
제1단계는 인생의 진실상(眞實相)을 제시하고 그것을 '苦諦'라 한다.
"비구들아, 이것이 고(苦)의 성체(聖諦)다. 生은 苦요, 死는 苦다. 미운 자를 만나는 것도 苦요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는 것도 苦, 구하여 얻음도 苦, 통털어 말하자면 인생은 苦이다."
이것은 부타의 出家의 원인과 같다. 부타는 이와같은 苦를 낳게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자문한다. 이것이 제2의 단계로서 '集諦(집체)'라고 칭하며 그는 苦의 원인을 이렇게 파악했다. "갈애(渴愛)가 있기 때문에 苦된 인생이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제3의 단계는 그 해결의 방책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渴愛가 없으면 苦된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감체(減諦)'라고 한다.
제4의 단계는 그 방책을 실현하는 실천 항목으로 앞에서 말한 八正道를 다시 한 번 부타가 되풀이했다.
이것을 '道諦'라고 하는 것이니 사체설법(四諦說法)은 불교의 골격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5인의 비구들은 부타와 함께 이 생각을 매일같이 음미하고 연구해서 마침내 사체(四諦)를 이해하고 납득했다.
그때 비로소 불교는 현실에, 이 지상에 성립한 것이다. (出典/律藏, 大品 16. 四分律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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