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寸志'라는 말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정성이 담긴 선물이란 뜻으로 흔히 선물 대신으로 그 선물에 값할 만한 적은 돈을 봉투에 넣고 '촌지'라는 글자를 적어 고마운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위를 두고 생긴 말이다.
'寸志'라는 말 대신 '微誠' '微意'라는 말이 있는데, 기실 '寸志'라는 말은 일본 한자어이고 우리말에서는 '변변치 못한 작은 뜻'을 나타내는 말로 '微意' '微誠'이란 한자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촌지(寸志)가 하필이면 교육계에서 말썽이 되어 師道를 흐리게 했던 적이 있었다. 학생을 맡긴 학부모가 자기 자녀를 잘 보살펴 달라는 뜻으로, 혹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 주는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교사에게 선물을 주었던 것인데, 그것을 돈으로 표현하다가 보니 촌지의 근본적인 뜻이 흐려지고 일종의 거래가 따랐다는 데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가르치는 사람은 촌지를 조장하고 촌지를 건네 준 측에서는 촌지의 효과를 기대한다면 폐단이 따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교육의 현장이란 세속의 흐름과는 달라야 하고 다르도록 지켜주는 정신이 필요하다. 교육은 신성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명절 떡값이란 명목으로 사과상자 하나 가득 돈을 담아 권력층에 전달하여 이권 사냥을 하던 정치 풍토에 교육계의 촌지를 대입해서는 안될 것이었다.
60년대 중반 경남 함안의 어느 변두리 중학교 교사 시절의 이야기다. 그 때만 해도 담임 선생은 자기 반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하여 신학기 초에 일주일 간의 기간을 정하여 오전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가정방문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의 형편을 속속들이 알아 확실히 가르치겠다는 교육상 취지에서였다.
학생들의 집이 먼 거리를 두고 분산되어 있는 시골학교에서는 이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정방문은 교육상 담임 선생의 의무이기도 했으니 학생들의 집들을 일일이 방문하고 학부모와도 의견 교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부모 측에서도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에 대한 인사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 가정방문을 하면서 학부모로부터 내가 받은 최초의 촌지는 달걀 두 알이었다. 시골에서는 손님을 대접할 음료수도 준비하고 살지 않던 시절이라, 비지땀을 흘리고 먼 길을 찾아 온 자기 아이의 담임 선생에게 냉수를 내어 놓을 수는 없고 부업삼아 양계를 하는 집들이 많은 동네여서 생달걀을 내놓아 마시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개는 야박하니 두 알인 것이다. 고마운 인정의 표출이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촌지로서의 성의는 충분한 것이었으니 천만금의 물질적인 보답보다 달걀 한 알의 정성이 고마웠다. 그 다음 학생 집에 가면 더도 덜도 없이 달걀 두 알이 또 나온다. 이제는 더 먹을 수도 없고 거절을 할 수도 없어 두 개의 달걀을 호주머니에 넣어 나올 수박에 없다. 그런 순서대로 세 집 네 집 가정방문을 하다가 보면 호주머니에 든 달걀 때문에 더 이상의 가정방문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야말로 촌지의 홍수였던 것이다.
내가 받은 그 다음의 촌지 형태는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했던 부산 범내골 산언덕 내 반 급장 아이의 집을 방문했을 때 쬐그마한 정종술잔에 맥주를 대접받은 일이었다. 웃음이 나왔지만 그 시절 도시 빈민촌 가난한 학부모가 베푼 성의였으니 기꺼이 수용을 했다. 그편의 입장에서 보면 맥주라는 술은 귀한 손님에게나 대접하는 술이고 정종을 따루어 마시는 작은 술잔 역시 귀한 손님의 술상 위에 놓여야 하는 술잔이었고 보면 최상의 대접을 받은 것이 된다.
교육계에서 '촌지'라는 이름의 돈봉투가 등장한 것은 60년대 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학부모가 학교를 자주 드나들지 않던 시절이라 역시 학부모를 만나는 일은 가정방문 때가 보편적인 사항이었다. 승용차는 생각할 여지도 없었고 대중교통 수단마저 여의치 않았던 때이니 만큼 택시라도 이용하라고 어쩌다가 교통비 몇 푼을 봉투에 넣어주던 것이었고, 스승의 날이 정해지자 학생 편에 와이셔츠며 넥타이 양말 등속을 보내주는 학부모도 간혹 있었고 드물게는 선물 대신 와이셔츠값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봉투로 전달하던 것이었다.
그것이 교육계에서 촌지 문제의 발단이다. 스승의 날이 되면 학생들을 통하여 전해 받은 선물을 교무실 책상 위에 쌓아 놓고 인기를 과시하는 선생도 있었고 선물해 주기를 은근히 부추기는 일도 있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식을 키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역시 신학기나 스승의 날쯤이 되면 담임 선생에게 성의 표시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고 마음의 빚을 지게 되는 풍토가 되고 보면 촌지의 병폐가 없다고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쥐를 잡으려다가 독을 깨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되리라 본다. 교육계에 번진 촌지의 병폐를 척결한다고 하여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본무로 하고 있는 교육 현장의 풍토를 엉뚱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몰아부치는 일은 없어야 될 것이다. 촌지라는 이름의 돈봉투에 좌우되어 교육을 망가뜨릴 선생 아닌 선생은 사회적 통념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을 나는 지금 믿고 있고, 설령 그런 선생이 있다면 그것은 돈봉투에 마음이 약해진 선생에게 책임이 있다기보다는 돈으로 선생을 매수하려고 했던 당사자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러한 촌지의 효과가 어느만큼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교육 성과면에서 과연 촌지는 어떻게 기능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 상도하고 보면 적어도 교육현장에 오래 몸담고 있었던 입장에서 볼때, 별무효과라는 생각이다. 착각은 자유겠지만....... (김재환 著. <如岡散藁>)
김 재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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