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苦瓜(여주2호) 이야기

如岡園 2006. 9. 22. 23:31

 건강에 좋다면 지렁이 굼벵이 까마귀도 잡아먹는 세상이 되고 보니, 온갖 건강 식품이 쏟아져 나와 현기증이 돌 지경이다.

 분석 여하에 따라, 약이 아닌 날짐승 길짐승이 없고 천만가지 蟲魚 草木 가운데 독이 있는 것을 제하면 몸에 안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병은 천 가지나 있으나 건강은 한 가지 밖에 없으니 건강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천 가지 병에 각 병마다 골백 가지 요법이 따르고 보면 藥材가 되는 천지 생물의 수만 하여도 수만 가지가 안 될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건강은 참으로 귀중한 것이다. 이것은 실로 사람들이 그 추구를 위해 시간은 물론 땀이나 노력이나 재물까지도 소비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건강의 유지는 우리들의 의무이자 생리학적 도덕이기도 한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에 좋다는 건강 식품을 찾아 먹고 약을 복용한다. '오슬러'는 약을 복용하려는 욕망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가장 현저한 특징이라고까지 단언하였다.

 그러나 '藥能殺人 病不能殺人'이란 말처럼 약을 잘못 써서 사람을 죽게 하는 경우도 있고 보면 약만으로 모든 건강이 찾아지는 것만은 아닐 것이고, 백약이 무효한 병도 있을 터이니, 약이 없는 병에는 養生하는 길이 상책일 것이다. 그것마저도, 야단스러운 양생 덕분으로 겨우 자기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해 낼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 우리의 풍토 속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자연 식품을 알맞게 분량을 재고 시간에 맞추어 마시고 먹으면 그게 양생이고 건강을 지키는 약이 아니겠는가.

 건강 식품과 관련된 박科의 덩굴 식물 한 種을 상품으로 상표등록하기 위하여 이름 하나를 지어보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여주'라고 하는 박과의 일년생 蔓草인데 열대 아시아 원산의 관상 식물이며,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져 있고 여름과 가을에 노란 꽃이 피며 길둥근 열매에는 혹같은 우툴두툴한 돌기가 있는 식물로, 속칭 '여자'라는 이름으로 시골 울타리에도 심어 황금색 열매를 관상하던 식물이다. 한약재 이름의 '여枝'가 와전되어 '여주' 혹은 '여자'로 불려온 것이 아닌가 싶은데, 막상 우리 나라 한방 처방에는 이 '여지'가 처방된 용례가 드물어 한약재로서의 값어치는 별로 없었던 듯하다.

 중국을 자주 드나들며 사업을 하는 친구가 중국의 부성장급 고관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는 기회에 당뇨병에 좋다는 '苦瓜'라는 이름의 식용 열매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여주'였다. 果皮는 쓴맛이 있고 익지않은 열매를 식용하던 것이었으니 이 쓴맛과 오이 모양에서 '苦瓜'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다.

 여주(여자)를 관상용으로만 알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식물 인슐린을 함유하여 혈당의 밸런스를 유지시켜 주는 식품이란 사실은 어쩌면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강남의 귤이 강북에 오면 탱자가 되듯이 재래의 우리 나라 여주는 겉모양에서부터가 퇴화되었고 고과의 본성을 상실한 것이었다.

 친구가 이름을 지어보라고 의뢰한 고과는 고과가 가진 본래의 약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열매가 한층 크고 충실한 품종으로 개량한 '여주2호'로 명명된 고과 씨앗 200알을 반입하여 국내에서 재배한 고과인데, 모르긴 해도 이것은 고과(苦瓜 ,Bitter melon)라는 이름을 달고 국내에 등장한 신품종 '여주'의 신기원이라 할 것이다.

 식물 인슐린을 함유한 고과가 이미 일본에서는 '오끼나와 고야'라 하여 대형 할인 매장에서 건강 식품으로 개당 우리나라 돈 2,3천 원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니 사업하는 사람의 안목에서 국내 생산 공급에 용심을 한 번 내어봄직 하지 않겠는가.

 시험 재배 대상지를 鄕里가 속한 덕유 지리의 일원으로 정하고 고과라는 생소한 건강 식품에 그럴듯하고도 친숙한 이름을 짓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에서 이름 하나를 생각해 본 것이 <흥부네 燕子 苦瓜>였다.

 그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중국을 많이도 드나들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성급에 조선족 인척도 있었고 하여 행정적 측면에서 지원도 받을 수 있었고, 운신이 자유로웠던 대신 정신적 물질적 투자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니 은택도 베푼 셈이었다. 중국의 강남 호남성에서 얻어 온 박씨를 닮은 고과의 씨앗이었으니, 흥부네 제비가 준 박씨나 같았고, 옛소설 <흥부전>에서 흥부의 제비가 박씨를 떨어뜨렸던 곳이 충청 전라 경상도 어름의 흥부네 집 앞마당이었으니, 이 곳은 곧 덕유 지리의 산자락이라 고과를 재배하기로 작정한 곳과도 일치하여 <흥부네 연자 고과>라 하였지만, 상품의 이름치고는 너주레하여 그것을 이름으로 써먹고 안 써먹고는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그때 내 몫으로 돌아온 고과 씨앗은 단 일곱 개, 그것도 두 개는 남을 주고 다섯 알을 텃밭에 정성들여 심었다. 발아가 더디다는 것은 미리 설명서를 보아 알았지만 한 달이 넘게 기다려 단 두 포기의 고과 묘종을 성공시켰다. 발아를 촉진하기 위하여 발아점을 손톱깎이로 찍어 주라는 설명서의 잘못이기도 했다.

 고향에서의 시험 재배는 성공하여 덩굴 마디마디의 모두에 열려 한 그루당 30개 이상의 고과를 생산하고 있다며 대학 연구소에 의뢰하여 성분 검사라도 해 주었으면 하고 무려 3상자나 보내어 왔다. 길이 30센티미터에 직경 5센티미터이면 대형의 양질 고과였다.

 중국 일본 인도는 물론 아프리카 필리핀 중남부 미국에서 인기있는 건강 식품으로 알려진 고과는 식탁에서 야채로 常食할 뿐만 아니라, 분말이나 정제 캡슐 농축엑기스 등으로 가공하여 널리 공급되고 있다고 하니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닐 듯도 하다.

 아닌게 아니라 인슐린의 분비를 도와 혈당 밸런스를 조절하는 고과는 일찍부터 미국의 학자들에 의하여 식물 인슐린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중국의 제약 회사가 이러한 사실에 착안, 1993년부터 고과에 관한 연구를 추진하여 1999년 고농축의 식물 인슐린을 함유한 고과 농축엑기스의 개발에 성공했으며, 2000년 2월에는 중국의 보건 당국이 건강 식품으로 허가함과 아울러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하여 86.68퍼센트의 유효율을 확인한 바 있으며, 일본에서도 2000년부터 도쿄 의과대학 부속병원 등에서 임상 실험을 실시한 바가 있다고 외국의 건강 잡지들은 소개하고 있다.

 身土不二라고 했으니 저 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식품이 이 나라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맞으란 법은 없지만 한 번쯤 관심은 기울여 봄직은 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는 기상천외한 건강 식품들이 중구난방으로 개발되어 옥석을 가리기 어렵게 되었으니 남의 말만 듣고 마구잡이로 먹어 임상 실험의 대상이 되기보단 건강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니 매사는 당사자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란 생각이다.

 해방이 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 문물이 쇄도하면서 건강을 다스리는 방법도 서양식 일변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반성의 기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항생제의 효험에 심취하고 의약의 현대적 발전에 우리들이 매료되고 있었을 때, 나무껍질 풀뿌리가 약의 전부였다고 북쪽 사람들의 후진을 안쓰러워하던 우리가 이제야 와서 자연식품 건강식품을 떠들어 대는 것도 꼴불견은 아닐지.

 <흥부네 연자 고과>가 상품으로 히트 하고 안 하고는 나의 상관할 바가 아니고, 나는 또다시 내년 봄이 오면 고과를 심어 雌雄同株로 황색 꽃이 피며 긴 타원형에 양끝이 뾰족하고 혹 모양의 돌기가 성성한 채, 적황색으로 익어가는 고과의 정취를 즐기려 한다.

 

                                                                       김    재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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