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컴맹에서 폰맹으로

如岡園 2014. 9. 2. 19:34

요즘 와서 뜬금없이 내 뇌리를 파고든 동요 한가락이 있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진도 맨도 또 맨도

 짝바리 해양건

 도로매줌치 장도칼

 머구밭에 덕서리

 엉 장 껑

 

 좁은 온돌방에 아이들이 둘러앉아 뻗친 다리를 마주 겯고 차례로 짚어나가면서 숫자를 헤아리듯이 불렀던 것인데, 하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뜻도 기능도 모르고 있으면서 이 동요가 거머리처럼 내 머릿속에 달라붙어 있다.

 김소운의 <조선구전민요집>을 상고하였더니 조선 팔도에 이런 유의 민요는 7편이 채록되어 있고, 놀이에서 편을 가를 때나 여러 아이들 중에서 특정 아이를 뽑을 때 뻗친 다리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 동요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히 인간적 온기가 감도는 놀이이고 그 시절 그 나름대로 신바람 나게 불렀던 동요였지만 과연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놀이와  동요를 권한다면 그 반응이 어떨지, 혹시 야만인 대접을 받지 않을지 몰라.

 문명의 이기(利器)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늙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연구실에서 지필(紙筆)로 아무렇게나 써서 내갈긴 원고를 조교 선생에게 맡겨 두면 틀린 것까지 깔끔하게 손을 보아 컴퓨터 처리를 해주는 바람에 당초부터 컴맹이 되어버린 내가 컴퓨터라는 괴물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년 퇴직을 하고 집에 들어앉은 뒤부터였다.

 컴퓨터를 통해 크게 일을 처리할 생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가 필수인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세상을 따라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소한으로 워드프로세스는 익혀야겠고 e메일 정도는 이용할 줄 알아야 사람구실을 하지 않겠냐 싶어 전전긍긍하면서 몇몇 과정을 배워두었지만, 그것도 자주 쓰지 않는 기능은 까먹고 또 까먹고 하여 애매한 손자 손녀 놈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 덤으로 저작권 침해다 악성코드다 하는 것들이 따라다니니 그 편의성을 십분 감안하고서도 심기가 자못 불편하다.

 이런 와중에 근래에 와서는 그 스마트폰인가 뭔가 하는 괴물 때문에 또 고역을 치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지난 생일에 며느리의 권유로 덜렁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꿔버린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용도마저도 다 알 수 없는 다양한 애프리케이션에, 잘못 적용하면 따라 붙는 데이터 통신 요금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호주머니를 위협하는데다가 도대체 나 같은 형편의 사람에게는 필요가 없고 또 알 수도 없는 기능이 너무나 많다.

 늙은 사람인데다가 낡은 사람까지를 겹치고 있으니, 또 이 폰맹을 극복하는 데는 컴맹을 벗어나는 것 이상의 노력이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과외선생을 찾자 해도 어른들은 제 앞장가리기에 여념이 없고, 별 수 없이 초등학교 5학년짜리 손녀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의 유희요(遊戱謠) 세대와 디지털 시대 손녀딸이,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만남은 가히 천양(天壤)의 조우(遭遇)라 할 만하다. 영어뮤지컬 '맘마미아'에서 소피 역으로 절찬을 받기도 했던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터에 종달새처럼 나긋나긋하여 할아비 폰 선생으로는 제격이어서 열 번을 물어도 싫단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육친애의 교감이라는 부수입은 있었던 셈이다. 

 참, 소통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 한계는 어디까지로 잡아야 할지, 걸핏하면 불통이어서 일이 안 된다고 한다.

 전화를 이용한 사람사이의 소통은 가히 인류가 창안한 발명품 중에서 획기적인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신호가 간다. 다이얼을 돌린다. 자르르 가슴을 전율하는 상쾌한 텃치, 사춘(思春)처럼 호기심이 피우는 꽃...'. 이런 정도는 낭만이라도 있을 텐데.

 유선전화기에서 무선전화기로, 모바일텔레폰에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기능까지 가세하였으니 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이션의 개량을 지향하는 과학의 시대에 살아가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60년대 중등학교 교사시절 학생생활기록부를 뒤적여 가정에 전화가 가설된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가를 조사한 적도 있었다. 경제력을 저울질하여 학생지도의 잣대로 삼기 위함이었다. 휴대폰을 가지지 않은 학생이 몇인가를 알아보아야 할 작금의 사정에 비하면 격세의 감이 있다. 그 시절에야 백색전화 한 대 받으려고 전화국 앞에 밤을 새워 줄을 서도 좀처럼 배당받기가 어려웠던 것 아닌가?

 가정마다 유선전화기가 제대로 보급되고, 잠시 삐삐가 뜨더니 핸드폰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휴대전화기가 날개가 달린 것처럼 보급 개량되어 온 것이다.

 급한 일로 전화를 자주 사용할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았던 나는 전화기를 갈아치우는 일에는 아주 게으름뱅이였다. 늘 신고 다니는 신발이 발이 편하듯이 같은 번호에 일상으로 손에 익은 휴대폰이 좋았던 것이다.

 나는 물질에는 호사꾼이기도 해서 문방용구나 생활 공구, 사진기, 오디오 비디오를 비롯한 전자제품 같은 것은 새로운 것이 눈에 띌 때마다 가지고 싶어 안달하던 처지였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철이 든 것이 아니라 한번 가지면 버리지를 못하는 성질인데다가 손익 계산이 맞지를 않는 것이다. 

 음반에서 CD까지, 사진필름 슬라이드에서 DVD까지 새로운 것이 출시 될 때마다 부지런히도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축을 낸 용돈이 모두 저금통장에 들어갔거나 후원금에라도 기부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한 대에 증폭기가 딸린 자그마한 스피커 한 조를 연결하여 돈 안들이고 기찬 음악과 영상을 접하고 있으면서, 지금도 작은 서재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덩치 큰 오디오 세트와 음반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 추억 때문이다. 

 그런 미련퉁이이기 때문에 어차피 또 변해버릴 그러면서 그 기능을 다 소화할 자신이 없는 스마트폰이란 괴물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 스마트폰은 문명의 이기이기 이전에, 이른바 소통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사람들, 여론조사를 금지옥엽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요물이기도 하다.

 감각이 무딘 손으로 자칫 잘못 건드리기만 해도 엉뚱한 화면이 떠올라 질겁을 하게 만든다.

 사진이라도 찍어 컴퓨터 블로그에나 써먹자고 화면이 좀 큰 것으로 했더니 그 무게마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호주머니가 얕은 여름철에는 아예 전용 손가방이라도 있어야겠으니 그건 또 핸드폰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 아닌가.

 신문 잡지를 펼쳐들고 독서하던 전철 안은 온통 스마트폰을 긁어대는 풍경으로 일색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알맹이는 몇 알이나 될지.

 일백 개가 넘는 앱(application)의 기능을 모두 다 알 수가 없으니 스마트폰은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공해의 산실일 수도 있다는 기우에서 공포부터 앞선다.

 울며 겨자 먹기로 폰맹을 벗어나려고 동냥이라도 하듯이 만만한 상대를 붙들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알려고 하는 열정도 식어버린 나이가 원망스럽다.      (2014. 8. 15. 수필 동인지 <길>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