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을 축하한다. 아름다운 사랑에서 시작된 결혼이기에 더욱 축하한다. 중매결혼을 아니 시키고 찬란한 기적이 나타날 때를 기다려온 너의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예식장에 너를 데리고 들어가는 너의 아버지는 기쁘면서도 한편 가슴이 빈 것 같으시리라. 눈에는 눈물이 어리고 다리가 휘청거리시리라. 시집 보내는 것을 딸을 여읜다고도 한다. 왜 여읜다고 하는지 너의 아빠는 체험으로 알게 되시리라.
네가 살던 집은 예전같지 않고 너와 함께 모든 젊음이 거기에서 사라지리라.
너의 아버지는 네 방에 들어가 너의 책, 너의 그림들, 너의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시리라. 네가 쓰던 책상을 가만히 만져보시리라. 네 화병의 꽃물을 갈아 주시려고 파란 화병을 들고 나오시리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친정집은 국그릇의 국이 식지 않은 거리에 있어야 좋다고도 한다.
너는 시집살이 잠깐 하다 따로 나와 네 살림을 하게 된다니 너의 아버지 집 가까운 데서 살도록 하여라.
얼마 전에 나는 무심코 말 실수를 한 일이 있다. 첫나들이 나온 예전 제자가 시부모가 아니 계시다기에 "거 참 좋겠다" 고 하였다. 그 옆에는 그의 남편이 있었다. 다행히 웃고 있었다.
시부모님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너의 남편의 부모니 정성껏 받들면 된다. 며느리는 아들의 배필이요 장래 태어날 손주들의 엄마가 될 사람이니 시부모께서는 너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실 거다. 네가 잘하면 대견히 여기시고 끔찍이 사랑하여주실 것이다. 너 하기에 달렸다.
결혼 후 남편이 친구들과 멀어지는 때가 있다고 한다. 너 같은 아내는 남편과 친구들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 줄 믿는다. 옛날 가난한 선비집에 친구가 찾아오면 착한 아내는 말없이 나가 외상으로라도 술을 받아 왔다고 한다.
너희는 친구 대접할 여유는 있으니 네가 주부 노릇만 잘하면 되겠다. 주말이면 너희 집에는 친구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남편의 친구가 너의 친구도 되고, 너의 친구가 그의 남편과 같이 오기도 하고......
부부는 일신이라지만 두 사람은 아무래도 상대적이다. 아버지와 달라 무조건 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언제나 마음을 같이 할 수는 없다. 제 마음도 제가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 한결같을 수야 있겠니?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기분이 맞지 않을 수도, 적은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자존심 강한 너는 남편의 편지를 엿보지는 않을 것이다. 석연치 않은 일이 있으면 오해가 커지기 전에 털어놓는 것이 좋다.
집에 들어온 남편의 안색이 좋지 않거든 따뜻하게 대하여라. 남편은 아내의 말 한마디에 굳어지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같이 살아가노라면 싸우게도 된다. 언젠가 나 아는 분이 어떤 여인 보고 "그렇게 싸울 바에야 무엇하러 같이 살아, 헤어지지" 그랬더니 대답이 "살려니까 싸우지요 헤어지려면 왜 싸워요" 하더란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싸움이라도 잦아서는 나쁘다. 그저 참는 게 좋다.
아내, 이 세상에 아내라는 말같이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이름이 또 있겠는가. 천년 전 영국에서는 아내를 '피스 위버(Peace-weaver)'라고 불렀다. 평화를 짜 나가는 사람이란 말이다.
행복한 가정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결혼 행로에 파란 신호등만이 나올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려움이 있으면 참고 견디어야 하고, 같이 견디기에 서로 애처롭게 여기게 되고 더 미더워지기도 한다. 역경에 있을 때 남편에게는 아내가 아내에게는 남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같이 극복해온 과거, 옛이야기 하며 잘 산다는 말이 있지.
결혼생활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긴긴 대화다. 고답(高踏)할 것도 없고 심오할 것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
부부는 서로 매력을 잃어서는 아니된다. 지성인이 매력을 유지하는 길은 정서를 퇴색시키지 않고 늘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며 인격의 도야를 늦추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은 충실히 살아온 사람에게 보람을 갖다주는 데 그리 인색치 않다.
너희 집에서는 여섯 살난 영이가 '백설공주' 이야기를 읽고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고거, 에미 어려서와 꼭 같구나" 그러시리라. (皮千得)
피천득(1910~2007) 시인, 수필가, 교수. 호는 琴兒. 서울 출생으로 1940년 상하이 후장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사범대 교수, 서울대 대학원 영문학과 주임교수를 역임했다. 1930년 <<신동아>>에 <서정소고>을 처음으로 발표하고 뒤이어 시 <소곡>과 수필<눈보라치는 밤의 추억>등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저서로 <서정시집>(47,상호출판사), <금아시문선>(60,경문사), <산호와 진주>(60,일조각), <A Flute Player>(68,영문판), <수필>(76,범우사), <금아시선>(80,일조각), <금아문선>(80,일조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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