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자연의 이법에 대하여

如岡園 2011. 3. 19. 23:04

 우주의 실체는 온순하고 유연하다. 그리고 우주를 지배하는 이성은 전혀 악의 동기를 자기 자신 속에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이성은 악의를 품지 않고 악을 저지르지 않으며, 아무것에도 손상을 입히지 않기 때문이다. 만물은 이 이성에 따라 생성되고 완성된다.

 

 당신이 자기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춥든 덥든, 졸립든 잘 잤든, 남에게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죽을 지경이든 그 밖의 다른 난처한 지경에 이르렀든 개의치 말라. 왜냐하면 죽는다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행위에 있어서도 눈앞에 닥친 일을 잘 처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면을 잘 살펴보라. 그것이 무엇이든 고유의 성질과 가치를 간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최선의 복수는 상대방이 자기에게 저지른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지배적인 원리는 스스로 자각하고 방향을 전환하며, 원하는 대로 자기를 형성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가 원하는 무대로 나타나게 하는 원리다.

 

 우주는 혼란되어 있고 뒤죽박죽이며 흩어져 있는가, 아니면 통일되어 있고 질서 정연하며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가? 만일 전자라면 무엇이 좋아서 나는 이런 혼잡과 혼돈 속에 머물러 있는가? 드디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관심을 가질 일이 없는가? 무엇 때문에 마음의 불안을 느낀단 말인가?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결국 나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이 흩어져버릴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후자라면, 나는 경건한 생각으로 충만되어 똑바른 자세로 이 지배자를 신뢰할 것이다.

 

 주위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흐트러졌을 때에는 재빨리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고 필요 이상으로 당황하지 않도록 하라.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갈 때 당신은 조화를 더욱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존재를 서두르고 어떤 것은 사멸을 서두른다. 새로 태어난 것도 이미 부분적으로는 사멸을 겪고 있다. 그칠 줄 모르는 시간의 흐름이 영원한 세월을 언제나 새로 보유하는 것처럼, 유전(流轉)과 변화가 세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한다.

 모든 것을 휩쓸 때, 흘러가는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존중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우리 옆을 날아가는 참새 중의 한 마리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참새는 벌써 시계(視界)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각자의 생명 자체도 피에서 증발되고 공기에서 흡수된 것과 같다. 왜냐하면 마치 우리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것처럼- 그것은 우리가 순간순간 하고 있는 일이지만- 어제 또는 그저께 당신이 태어날 때 받은 모든 호흡 기능을 처음에 당신이 숨을 들이마신 대기에 되돌려주는 것[죽음]과 같기 때문이다.

 

 식물처럼 호흡하거나 가축 또는 들짐승처럼 호흡하거나, 감각을 통해 인상을 받거나 충동대로 움직이거나, 떼를 지어 모여들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는 일은 아무 가치도 없다. 그것은 음식의 찌꺼기를 배설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면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 박수 갈채를 받는 것인가? 아니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대중으로부터의 칭찬은 혀끝에서 나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가치한 명예도 버렸다면 무엇이 가치 있는 것으로 남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신의 고유한 본질에 따라 활동하거나 혹은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모든 직업이나 기술도 거기에 목적을 둔다. 모든 기술의 목적은 만들어진 모든 것이 제기능을 갖도록 하는 데 있다. 포도를 재배하는 자나 망아지를 길들이는 자, 또는 개를 훈련시키는 자도 이러한 목적을 추구한다. 또한 어린이의 교육법과 교수법도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다.

 이것을 잘 이해한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을 위해 앞에서 말한 것 이외의 일은 추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 당신은 그밖에 다른 가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없고 만족할 줄 아는 인간도 될 수 없으며, 또한 걱정에 시달리지 않는 인간도 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 당신은 그런 것들을 부러워하거나 샘을 내며, 당신에게서 그런 것들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소유한 사람에서 그것들을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밀 것은 정한 이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연히 혼란에 빠지게 되며 신들에 대해서도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정신을 존중한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사람들과 화합하여 신들과 조화를 이룬 자, 다시 말하면 모든 신들이 배정한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가 될 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가! 그들은 자기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칭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가 본 적도 없고 앞으로 볼 수도 없을 후세 사람들에게서 칭찬받을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건 마치 당신의 전 시대 사람들이 당신을 칭찬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탄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당신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인간에게 가능하고 또 인간의 본성에 맞는 일이 있으면 당신도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우리는 경기장에서 상대방의 손톱에 긁히거나 머리를 부딪쳐서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에게 항의하거나 불쾌하게 생각해서는 안되며, 상대방을 교활한 놈이 아닌가 하고 의심해서도 안된다. 다만 우리는 그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를 적으로 여기거나 의혹을 품어서는 안 되며, 호의를 가지면서 그런 일을 조용히 피해야 한다.

 우리는 인생의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와 함께 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많은 면에서 관대하게 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내가 방금 말한 대로 남에게 의혹을 품거나 미워하지 않고 그를 조용히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누가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납득시켜 준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여 시정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나는 진리를 구하는 것이며, 진리에 의해 손해를 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자기의 오류와 무지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야말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성이 없는 동물이나 일반적인 모든 사물에 대하여 아량 있고 너그러운 태도로 대하라.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이성이 있고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는 그들도 이성을 갖고 있으므로 동지처럼 대하라. 그리고 모든 일을 신들에게 호소하라. 이 때문에 소비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 세 시간쯤만 소비하면 충분할 테니까.

 

 똑같은 순간에 우리 모두의 육체와 영혼 양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유일하고도 보편적인 것 속에 보다 더 많은 일, 아니 오히려 모든 일이 공존한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란, 감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인상이나 욕망을 일으키는 충동 그리고 마음의 방황과 육신에의 봉사 등이 중단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당신의 육체가 굴복하지 않았는데, 정신이 먼저 굴복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건전한 정신으로 돌아가 자기를 되찾으라. 잠에서 깨어나 당신을 괴롭혀 온 것이 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꿈속에서 사물을 대하듯이 자기 주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라.

 

 나는 조그마한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 육체에 관한 한 모든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육체는 사물에 관심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에 있어서는 그 작용 안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무방하지만 그 작용 안에 속하는 것은 그 능력 범위 안에 있다. 그 중에서도 다만 현재와 관련된 것만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미래와 과거의 활동은 현재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발이 발의 역할을 하고 손이 손의 역할을 하는 이상, 손과 발의 노동은 자연에 위배되는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이상, 인간의 노고는 자연에 위배되는 일이 없다. 이러한 노고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지 않는 이상, 그 노고는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아시아나 유럽도 우주의 한 모퉁이다. 모든 대양은 우주 속의 한 물방울이다. 아토스 산은 우주 속 조그마한 돌덩이다. 현재의 시간은 모두가 영원 속의 한 점이다. 모든 것은 작고 변하기 쉽고 소멸되어 가고 있다.

 만물은 그곳으로부터, 곧 우주의 지배적인 힘으로부터 직접 생기거나 혹은 그 인과 관계에 따라 생긴다. 그러므로 사자의 쩍 벌린 입이나 독약이나 가시나 진흙처럼 해로운 것은 저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들이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만물의 원천을 생각하라.

 

 현재 존재하는 것들을 본 사람은 무한한 과거부터 존재한 것들을 본 것이며, 또한 무한히 존재하게 될 것들을 본 것이다. 왜냐하면 만물은 같은 기원을 갖고 있으며 같은 외관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몫으로 주어진 환경에 자신을 조화시켜라. 당신의 동포로서 운명적으로 정해진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라.

 

 자기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들 가운데 당신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싫어하는 일이 닥치거나 좋아하는 것을 잃었을 때, 당신은 신들을 원망하고 그 불운 또는 상실에 책임이 있거나 또는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많은 부정을 범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자기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좋다거나 싫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이미 신을 원망할 이유나 인간을 적대시할 이유가 없어진다.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자각하고 이해하면서, 어떤 사람은 의식하지 못하면서-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대로 '잠자는 사람도 일하고' 있으며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에 협력하고 있다. 그것도 각자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협력하고 있다. 심지어 그 일을 비난하는 자나 그 일에 반항하는 자나 그 일을 방해하는 자도 협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주는 이런 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신이 어떤 협력자 축에 끼어 있는가를 인식하는 일이다. 물론 어쨌든 우주의 지배자는 당신을 잘 이용하여 협력자나 조수들 사이에 끼워 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크리시포스가 언급하고 있는 '극 중의 야비하고 가소로운 시구(詩句)'와 같은 역할에 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태양이 비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아스클레피오스가 과실을 맺게 하는 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수많은 별들은 어떤가? 이 별들은 각각 다르면서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 협력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을 때에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장점, 예컨대 갑이라는 사람의 적극성, 을이라는 사람의 겸손, 병이라는 사람의 도량, 그 밖의 사람들의 장점을 생각해 보라.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덕을 풍부하게 나타낼 때처럼 그리고 그 덕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낼 때처럼 기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들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 보아야 한다.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행복이 남의 행위 속에 있다고 생각하며, 향락을 즐기는 사람은 자기의 감정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각 있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말을 조심스럽게 듣는 습관을 붙여라.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그 사람의 영혼 속에 파고 들어가라.

 

 만일 선원들이 타수(舵手)를 욕하거나 환자들이 의사를 욕한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타수가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의 안전을 도모하고, 의사가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나와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벌써 몇 사람이나 저 세상으로 떠났을까?

 

 당신이 자기 자신의 본성인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주의 본성인 이성에 어긋나는 일은 당신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아첨하는 사람들, 손에 넣으려는 이익, 사용하는 수단- 그것들은 어떤 것인가? 시간은 얼마나 빨리 이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갈 것인가?- 이미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아 갔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고대 로마 황제(재위161~180)로 5賢帝 가운데 최후의 황제임. 제국 동쪽과 도나우 강 양쪽 변경 방어에 힘씀. 스토아 철학으로 기울어 戰塵 속에서 <명상록>을 저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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