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168

서양의 역사와 일화(11), 人民의 人民에 의한 人民을 위한 政治

#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 민주 정치의 이상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1809~1865)이 게티스버그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온다. 게티스버그는 펜실바니아주의 남부에 있는 도시로 남북전쟁의 싸움터였다. 이곳에서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대격전이 벌어져 북군이 대승했다. 전쟁은 그후 2년간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戰場의 한쪽에 그해 가을 남북전쟁에서 쓰러진 용사들을 모시는 국립묘지가 만들어졌고 11월 19일에 그 奉獻式이 거행되었다. 이에 링컨이 한 연설이 소위 이다. 링컨의 이 연설은 미리 예상되었던 다른 연설자가 두 시간에 걸쳐서 열변을 토한 뒤에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요청을 받고 한 것이었다. 前者의 열변은 어떠한 ..

서양의 역사와 逸話(10), 人間은 政治的 動物이다.

#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이름난 철학자다. 로마시대로부터 중세를 통하여 그의 철학상, 과학상의 권위는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만치 큰 것이었다. 중세에 있어서는 철학자라고 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키고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녀에 비유될 정도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경 마케도니아왕 필리프의 侍醫 아들로 태어났다. 그 무렵 그곳에서는 경험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이며 이오니아적 자연학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 영향은 훗날 그의 사상 속에서 플라톤으로부터 이어받은 형이상학적 관념론적 요소와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었다. 열여덟살 때 아테네에 나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고, 그 후 20년 가까이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학원 아카데미아에 머물러 있었..

서양의 역사와 逸話(9), 아트란티스/태양은 날로 새롭다

# 아트란티스(잃어버린 대륙) 플라톤의 대화편 등을 보면 이집트의 神官이 아테네의 賢人 솔론에 이야기했다는 형식으로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부랄탈) 바깥쪽 대해, 즉 대서양에 아트란티스라 불리우는 큰 섬이 있다고 되어 있다. 아트란티스트란 지구를 떠받들고 있다는 전설상의 거인 아트라스의 섬이라는 뜻이다. 섬에는 초록이 무성하고 금은 주옥이 풍부하며 인구가 많고 왕후는 호화로운 생활을 보낸다는 일종의 지상 낙원이었다. 이 섬의 왕은 플라톤의 시대보다 9천년 가량 이전에 지중해의 정복을 꾀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리스에게 격파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섬의 주민은 신을 받들지 않았는데, 그로 말미암아 신의 노여움을 사서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섬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고 한다. 이런 일로해서 아트란티스트..

서양의 역사와 일화(8), 萬物은 流轉한다

# 萬物은 流轉한다 이 말은 플라톤의 크라튜로스에 나오는 말인 것 같다. 헤라크레이토스는 거기서 먼저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옮아가며, 무엇 하나 정지해 있지 않다". 다시 존재를 강의 흐름에 비유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즉 강물과 같이 만물은 유전(流轉)하며 같은 강이라고 해도 실은 매초마다 달라지고 있다. 사람의 몸 역시 그러하며 현재의 나는 한 시간 한 순간 전의 내가 아니다. 변화야말로 만물의 불변의 모습이다. 이는 불교와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으며, 헤라크레이토스가 소아시아 西岸의 희랍인 마을 에페소스에서 가르침을 편 것이 기원전 500년 경이라고 하니, 석가와 거의 비슷하다. (석가는 기원전6세기 중엽에 태어나서 530년 경 成道했다.) 그..

西洋의 歷史와 逸話(7), 人間은 萬物의 尺度이다

# 人間은 萬物의 尺度이다 서양의 철학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은 지금껏 살아 있다. 기독교 신학도 그들을 제외하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희랍이 자립할 수 있는 철학자 혹은 좀더 넓은 의미에 있어서 사상가는, 주요한 사람만으로서도 열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보통 철학, 철학자로 번역되는 영어의 philosophy, philosopher도 그 본래의 말인 그리스語의 philosophia, philosophos는 문자 그대로 '愛知', '愛知者'이며(phillos는 친구, 사랑하는 자, phileo는 사랑한다, sophos는 친구, 사랑하는 자, phileo는 사랑한다, sophos는 현명한, sophia는 '지혜'이다). 본래 예지(叡知)나 사색 따위를 사..

서양의 억사와 일화(6),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 藝術은 길고 人生 은 짧다. 詩나 노래에 무척 자주 동원되는 귀절이다. 이것은 그리스의 醫聖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생)의 말이다. 그것은 그의 맨 처음에 기록되어 있다. 보통 '藝術'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기술 특히 의술(醫術)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생은 짧지만 의술은 심오한 것이어서 도저히 구명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이에 종사하려는 자는 스스로 경계하고 게을리하지 말라.' 하는 뜻의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이 말은 다시 '好機는 날카롭고 (험준하다 혹은 寸時를 다툰다는 뜻) 試圖는 실패하기 쉬우며 판단은 어렵다. 그러므로 사람은 필요한 수단을 몸소 다할 뿐만 아니라 환자나 臨席한 자, 혹은 외계 사물의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고 계속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판단'이라 해석한..

서양의 역사와 일화(5), 솔론의 改革/조개껍질의 追放

# 솔론의 개혁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고도의 도시국가였고 민주주의 아래 번영을 누렸지만 이러한 민주정치가 완성하기까지에는 역시 수많은 정치적 변천을 겪어야 했었다. 아테네는 이오니아인이 정주하여 건설한 포리스이며 초기에는 다른 도시국가와 마찬가지로 族長적인 욍을 추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주로 귀족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다. 지중해 연안의 교통이 발달하고 상공업과 노예매매가 성행해짐에 따라 평민들의 경제력이 신장되었고, 지주계급인 귀족의 권력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귀족과 평민의 대립이 심해져서 그 사이에 끼여 독재적 권력을 행사하는 소위 僭主라는 것이 나타났다. 그들은 대개 명문출신이었는데, 비합법적인 지배자로서 그 지위가 세습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 크레이..

서양의 역사와 逸話(4), 다모크레스의 칼/너 자신을 알아라

# 다모크레스의 칼 시실리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왕 메이오니시우스의 신하 가운데 다모크레스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왕에게 영합하기 위해 언제나 왕의 행복함을 찬양했다. 그러자 어느날 왕은 다모크레스를 보고 말했다. "네가 항상 부러워하여 마지 않는 왕의 자리에 하루 동안만 앉아 보아라." 다모크레스는 왕의 호의에 감사하며 왕좌에 앉았다. 눈앞에는 산해진미가 그득히 놓여 있었다. 문득 천정을 쳐다보니, 머리 위에는 날카로운 칼이 한가닥 머리칼에 매달려 드리워져 있었다. 다모크레스의 감격은 금시 공포로 변했고, 왕좌에 앉아 있는 동안은 산 것 같지 않았다. 이 전설은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의 자리란 결코 겉보기처럼 좋기만 한 것이 아니고 항상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스코틀란드의 민속학자 프..

서양의 역사와 逸話(3), 우리는 명령을 지켜 이곳에 왔다

# 우리는 명령을 지켜 이곳에 왔다. 기원전 500년 경 - 페르샤는 동쪽에는 인도 국경으로부터 서쪽에는 에에게해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장악하고 있었다. 동양의 漢, 唐에 필적할 만한 고대 유수의 大帝國이었다. 한편 그리스는 그리스 반도의 끝을 차지하고 있는 小民族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개개의 도시는 독립된 주권을 가진, 소위 도시국가(포리스)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시국가의 내부는 그 당시로 보아서 놀라울만큼 민주정치가 행해졌고, 고도의 문명이 꽃피고 있었다. 그리스는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에 미레토스를 비로산 식민지를 건설했었으나 폐르샤의 서쪽으로 뻗어날수록 그들 도시도 말려들고 말았다. 그러나 정치의식이 높은 그리스인은 페르샤의 중앙집권적 지배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을 페르샤군..

西洋의 歷史와 逸話(2), 악어의 눈물/스파르타 敎育

# 악어의 눈물 세익스피어의 , , 등을 떠들어 보면 '악어의 눈물'이란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의 문헌 을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만약 악어가 물가에서 사람을 발견한다면 가능한 이를 죽이고, 그 후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잡아 먹을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이 귀절에서 借用해서 썼다는 설이 있다. '악어의 눈물'이란, 말하자면 거짓 눈물을 뜻하며 그 악어는 위선의 상징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악어의 논법'이란 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이집트의 전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나일강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악어가 잡아갔다. 그의 아버지(혹은 어머니)는 자식을 돌려달라고 애걸했다. 그때 악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이를 돌려주겠는가. 안돌려 주겠는가.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