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모두 생일이 둘이다. 자신의 생존기간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의 경과 주기에 놓이는 때가 누구에게나 한 해에 적어도 두 번 있다는 거다.
한 번은 각별한 의식으로 자기의 생일이라고 이름한 날이다. 옛날의 의식들이 점차 단절되어감에 따라 우리의 고유한 생일날을 엄숙하게 지내는 습속이 거의 사라져버렸거나 있다 하더라도 그 의미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케이크나 오렌지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나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새해의 탄생은 널리 관계되어 있어서 임금이나 구두 수선공이라도 무시하지 않는다. 사실 어느 누구도 정월 초하루를 무심히 보내지는 않는다. 이날을 기점으로 누구나 자기의 시간을 셈해보고 남은 날을 헤아린다. 이날이 우리 인류 공동의 생일인 것이다.
모든 종소리들 -(그건 천계에 가장 가까이 임하는 음악인데) -그 중에서도 제야의 종소리는 가장 엄숙하고 가장 감동적이다. 그 종소리를 들을 때는 나는 언제나 지난 열두 달에 걸쳐 흩으져 있는 모든 영상들 -그 아쉬운 기간 중에 내가 행하거나 당했거나 이루었거나 등한히 한 모든 일을 응축시키는 데에 마음을 모두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의 가치를 깨닫듯 나는 가버린 시간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거다. 가버린 시간은 인간적 색채를 가지게 되어서 현대의 한 시인이,
저문 해, 그 치맛자락 나는 보았네
하고 외친 것이 비단 시적 환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두려운 고별의 숙연한 슬픔 중에서 우리 누구나가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어젯밤 분명 그렇게 느꼈고 분명 모두 나와 같았을 것이다. 하기야 내 지인들 가운데에는 떠나가는 한 해를 여의는 애절한 아쉬움보다는 한 해의 탄생에 대한 즐거운 환희를 표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찾아오는 손을 즐겨 맞고
떠나는 객을 재촉한다
는 사람들 축에 들지 못한다. 그 전부터 나는 본래 새것들이라면 새 책, 새 얼굴, 새 해 할 것 없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미래를 마주보는 것을 거북하게 하는 무언가 뒤틀린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을 나는 거의 중지해버렸고, 세월의 다른 쪽 -지나가버린 세월을 바라볼 때만이 생기가 돈다. 나는 지나간 환영과 결말이 나버린 일에 빠져 있다. 나는 지난날에 실망했던 일들과 이놈 저놈 마구잡이로 돌아가며 싸운다. 나는 빈틈없이 갑옷으로 방비가 되어 있다. 용서해주기도 하고, 굴복시키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 도박꾼의 표현으로, 내가 한때 비싼 값을 치른 유희를 하고 나서 나는 다시 그것을 재연한다. 내 생애 중에 있었던 딱했던 일과 사건들 그 어느 것도 나는 이제 다시 고치고 싶은 생각이 거의 없다. 잘 구성된 어느 소설의 사건들처럼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고 싶다.
앨리스 W-n(램의 애인이었던 앤 시먼스)의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 그보다 더 더욱 아름다웠던 눈매에 사로잡혀 가장 귀중한 황금의 7년이란 나의 젊은 세월을 연모로 흘려보내버리고 말았던 편이, 그 열정적인 사랑의 모험이 없었던 것보다 낫다고 생각된다. 우리집 가족들이 그 노회한 도렐의 속임수로 유산을 잃고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던 편이 지금 이 순간 은행에 2천 파운드의 저금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낫고, 그 능청스러운 악당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몰랐던 편보다 나은 것이다.
조금은 사내답지 않게 젊은 시절이나 회상하는 것이 나의 약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40이 넘으면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도 자신을 사랑하도록 허용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역설이 좀 지나친 것일까?
내 자신에 관해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마음이 내성적인 사람치고 -나도 무척이나 내성적이지만- 자신의 현 존재에 대해 존경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엘리아(램 자신의 필명)라는 사나이에 대한 것 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는 경박하고, 쓸모 없고, 변덕스럽고, 그 악명, 그 악벽 -고집불통, 충고를 싫어하고, 받을 줄도, 줄 줄도 모르고 -더구나 말더듬이 광대, -무어라고 매도 해도, 나는 당연히 그 매도를 당할 만하고, 그보다 심한 비난을 하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중략......
이처럼 동경이 지나칠 정도로 내가 과거에 심취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병적인 기벽증후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원인에 연유되는 것일까?
아내나 자식이 없기 때문에 나를 나 자신 밖으로 완전히 투영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고, 희롱하고 놀 때 친자식이 없으니 추억으로 돌아가 나자신의 어렸을 때의 생각을 나의 상속자요 총아로 삼고 있는 것이 뻔하지 않은가?
만일 이런 사색들이, 독자여, (어쩌면 무척이나 바쁘실)그대에게 허황되게 생각된다면, 만일 내가 그대의 공감대를 벗어나 나 혼자서 들떠 있는 것에 불과하다면, 나는 그대의 비웃음을 피해 엘리아라는 환상의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련다.
내가 성장할 때만 해도 어른들은 옛날부터 내려온 의식은 어느 것이건 신성하게 지키는 것을 조금도 허수이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송년의 타종은 각별한 의식을 갖추어 거행되었다.
그 시절에도 그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는 나의 온 주변에 환희를 일으키는 것이었으나 나의 마음속에는 어김없이 한 가닥의 구슬픈 영상을 심어 주었다. 그렇다고 그때 그 종소리의 의미를 인식했다거나 그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어린 시절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30의 청년이 되어서까지도 자신이 죽을 숙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실로 전혀 깨닫지 못했다. 물론 그때에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고, 필요했다면 인생무상에 대한 설교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진정 자기 자신에게는 6월의 한더위에 차가운 겨울날을 상상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가? 진실을 고백할까? -이 최후 결산의 날들이 너무도 강력하게만 느껴지는 거다. 나는 생존이 가능한 날들을 셈하기 시작했고,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구두쇠의 동전처럼 인색하게 굴게 되었다. 남은 해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시간이 더욱 빨라질수록 그 기간들이 더욱 소중해지고, 헛되이나마 그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를 멈추어보고 싶은 것이다.
'베틀의 북통이 지나가듯' 시간을 기꺼이 보내버릴 수가 없다. 그와같은 비유에 위안이 되는 것도 아니요, 그 죽음이라는 쓰디쓴 약이 달콤해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을 영원 속으로 유유히 실어가는 조수에 실려가고 싶지 않다. 나는 피할 수 없는 그 운명의 행로가 싫다.
나는 이 푸르른 대지며 도시와 시골의 풍경을 사랑한다. 설명할 수 없는 전원(田園)의 고독, 도시 거리의 달콤한 안정을 나는 사랑한다. 나는 이 곳을 내가 영원히 살 곳으로 삼고 싶다. 나는 내가 지금 이르러 있는 나이에 그대로 머물고 싶다. 나도 내 친구들도 더 젊어지지 않고, 더 부유해지지도 않고, 더 수려해지지도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이로 인해 이 세상과 끊어지거나 사람들이 말하듯 익은 과일처럼 무덤 속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 -나의 소유인 이 대지에서의 어떠한 변화도, 먹는 것이건 사는 데서건 나를 당황하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내 집 터주와 조상신들은 무섭도록 발을 견고히 틀어박고 있어서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뽑히지 않는다. 그들은 리비니아의 해안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삶의 새로운 상태는 나를 망연하게 한다.
태양과 하늘, 시원한 바람, 홀로 걷는 산책, 여름 휴가, 푸른 들판, 고기와 생선의 맛있는 국물, 친구와의 어울림, 유쾌한 술잔이며 노변의 정담, 순진한 자랑이며 농담들이며 빈정대는 이야기 그것까지도-. 이 모든 것들이 생명과 함께 사라지는가?
귀신들과 정답게 지내면 그들이 미소를 지을 수도 있고 가냘픈 옆구리를 비비꼬며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대, 나의 한밤중의 연인들, 2절판 책들은 또 어찌 되는 것인가! 내 품에 그대들을 한아름 안아보는 그 강렬한 기쁨과도 헤어져야만 하는 것인가? 그 세계에서도 도대체 지식이란 것이 찾아오는 것이라면 이 친숙한 독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어느 괴상한 직관의 실험을 통해야만 하는 것인가?
나의 마음을 끄는 이 세상 친구들의 미소, -그 낯익은 얼굴, -그 감미로운 표정의 교차, -이런 것들이 없어도 저승에서 우정을 누릴까?
겨울철에는 유달리도 자주 죽음에 대한 -아무리 온건한 표현을 쓰려해도- 이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나를 붙어다니며 괴롭힌다.
쾌청한 8월의 정오, 찌는듯 뜨거운 하늘 아래에서는 죽음은 거의 불확실하게 된다. 그런 날에는 나같은 가련한 파충류도 일종의 불멸감 같은 것을 느낀다. 이 때는 몸이 부풀고 싹이 돋는다. 이 때에는 우리는 다시 강해지고 다시 씩씩해지고 다시 현명해지고 다시 더욱 장대해진다.
그러나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치면 다시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무력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바로 이 죽음이라는 감정의 주인에게 시중을 든다. 추위, 멍멍한 느낌, 꿈속 같은 기분, 착잡한 분위기- 유령같이 으스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 차가운 달빛까지도- 그 차가운 태양의 유령, 아니면 아가서(雅歌書)에 나온 혈색 없는 메마른 여인(Cantacles, 솔로몬의 노래에 나오는 여인)같은 그 피버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의 병든 누이. -나는 결코 그녀의 총아가 아니다. -나는 페르시아인처럼 태양을 숭배한다.
생의 도상에서 나를 가로막거나 밀어내는 것은 무엇이건 죽음을 연상케 한다. 개개의 불길한 일 모두가 체액이 흐르듯 바로 그 대역병(大疫病)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에 관심이 없다고 고백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삶의 종말을 피난의 항구처럼 기꺼이 영접하고 무덤에 대해서도 베개처럼 베고 잠드는 부드러운 팔뚝인 양 말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죽음에게 구혼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네게 말하노니, 사라지라! 너 추하고 흉한 유령이여! 나는 너를 혐오하고 미워하고 저주한다. 나는 너를 (수도사 존의 말대로)12만의 악마들에게 넘겨주어 어떤 경우에도 용서나 묵인받지 못하게 하여 누구나 싫어하는 독사를 보듯 너를 피하게 할 것이요, 낙인을 찍어서 추방하여 네 흉을 보게 할 테다! 아무리 해도 나는 너를 소화할 수가 없구나! 너, 그 찝찝하고 음울한 존재의 부정, 아니 놀랍고 당혹스런 절멸의 긍정이여!
그대를 두려워하는 공포에 대한 처방들 또한 한결같이 그대처럼 쌀쌀하고 무례하기만 하다 그는 '죽어서 황제와 제후와 함께 누워 있다'는 것이 생전에 그런 잠자리 친구를 탐한 적도, 원한 적도 없는 사람에게 무슨 만족을 주자는 것인가?' -아니면 '눈부신 그 예쁜 얼굴 그대로 보이리' 라는 말이 정말 무슨 위로를 주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앨리스 W-n이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 무엇보다도 보통 비문(碑文)에서 흔히 보는 그 무례하고 당치않은 상투적인 말에서 나는 더욱 역겨움을 느낀다.
망자(亡者)는 모두가 '머지않아 나도 지금의 그와 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그의 가증스럽고 뻔한 사실을 내게 훈계를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가까운 장래는 아니다.
우선 현재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움직이고 있다. 나는 망자가 된 그대들 스무 사람 값은 되는 거다. 그대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 그대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그대들에게는 신년(新年)이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살아남아 1821년(당시 램은 46세)의 즐거운 후보자로 생존하고 있다.
다시 술 한잔을 -그리고, 저 변절(變節)하는 종소리, 방금까지 1820년의 장송(葬送)을 구슬프게 노래하던 종소리는 사라지고, 곡조를 바꾸어 활기차게 후계자를 영접하고 있으니, 이런 경우에 지어부른 명쾌한 코튼(Charles Cotten, 1630~1687)의 노래를 그 종소리에 맞추어 부르자.
신 년(新年)
들어라, 닭은 울고, 저기 빛난 별,
알리누나, 밝은 날 머지 않음을
보아라 저기 밤의 장막을 찢고
금빛으로 서산마루 물을 들인다
노(老) 야누스 그와 함께 나와서는 갸웃갸웃 살펴보며
'저쪽은 전망이 흐린데'
말하려는 듯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러면 따라서 그 속을 우리도 들여다 보고
'우리 쪽이 아닌데' 예언을 한다'
그러나 어둠 앞질러 미리 말함은
최악의 무서운 일 당하기보다
더 더욱 괴로운 재난들을 불러들이고
더 더욱 심하게 영혼을 괴롭히는
쓰디쓴 고통 속에 빠져드는 법
그러나 어디 보자! 그러나 어디 보자!!
이제 좀 보이누나 맑은 빛 돋아오니
이내껏 찌푸리던 그 이마에
청명 화창
내 눈에도 보이누나
지나간 궂은 일을 마주보는
저쪽 얼굴 달갑잖게 찌푸리나
신년탄생 마주보는
이쪽 얼굴 맑고 밝게 미소만 짓네
드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모든 세월 훤히 열렸고
햇님은 시시각각 세월을 모두 보는데
그대로 세시천역(歲時遷易) 바뀔수록
더욱 더욱 미소만 짓네
첫날 아침 우리 맞아 그렇게도 미소를 짓고
태어나는 그 순간에 다정히 말을 거는데
우리 어찌 일년영기(一年靈氣)
겁을 내어 의심할손가?
저주로다 지난 해 액운이래도
올해는 보다 좋은 증거가 될 뿐
아니면 최악으로 지난해를 보내듯
아무렴 올해 또한 겪어 보내지
그러면 좋은 해가 다음에는 따라오는 법
최악의 궂은 일도 (우리가 매일 보듯)
최선의 행운보다 수명이 길 순 없고
궂은 일 흔적보다
좋은 일 남긴 자국 더욱더 오래 가니
삼 년에 좋은 일 년 맞은 사람
운명을 불평함은 배은이리니
그것조차 받을 자격 없는 이로다
그러니 좋은 술 가득 부어
남실남실 잔을 들어
새 손님을 영접하세나
언제나 즐거움은 행운을 불러들이고
재앙도 감미롭게 바꿔주는 법
만약에 행운의 공주님이 등을 돌려도
들자꾸나 술잔을 가득히 -
그러면 공주님 다음해에 얼굴
다시 돌리실 그때까지
우리 더욱더욱 잘 참아내리니
어떤가 독자여? 이 시구(詩句) 속에는 옛날 영국의 기질인 소박한 관용의 맛이 흐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일종의 강심제처럼 소화되어 마음을 키우고, 신선한 피와 훈훈한 원기를 북돋아주지 않는가? 조금 전만 해도 죽음을 이야기하고 두려워했던 그 울먹이는 공포가 어디 있는가?
-맑은 시, 그 정화(淨化)의 빛살에 흡수되고, -우울증의 유일한 영약인 순수한 헬리콘(Helicon, 그리스 신화의 詩神들이 살았다는 그리스 남부의 산. 詩想의 원천) 광천(鑛泉)의 파도에 말끔히 씻기어 -구름처럼 사라졌다.
-자 이제 그 훈훈한 또 한잔의 술을! 그리고 즐거운 신년을, 나의 주인이신 독자들, 그대 모두에게 신년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찰스 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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