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養名言

자녀 교육을 위한 충언 (2)

如岡園 2007. 8. 6. 10:35

 과수원의 과일이 잘되고 못되고는 가꾸는 사람의 솜씨에 달린 것이다.  자라는 아이들은 과수원의 과일과 같다. 부모가 바라는 대로 아이가 자라지 못했다면 그것은 부모의 탓인 것이다. 즉, 잘못된 아이는 부모의 실패 탓이라고 최근의 발달된 학문은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로런스 굴드>

 

 나는 일찌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음악가의 가족들과 사귄 일이 있다. 그런데 그 음악가인 아버지가 아주 노인이 되었을 무렵에 그 밑에 여덟 명의 자녀들 중에 음악의 길로 나가서 생활을 영위한 것은 온순하고 부모 말을 잘 듣는 딸 하나 뿐이었다. 그것도 대단치 않은 말단의 음악직업인이 되었을 뿐이었다. 나머지 일곱 명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음악 공부를 시켰으나 모두 하나같이 음악이 싫어서 딴 길로 내뺐던 것이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모가 음악가가 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자식이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요는 어떠한 방법으로 음악의 길로 인도했던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음악가는 엄격한 수업과정을 세우고 자식들이 인내로써 그 수업에 복종하기를 바란 것이었다. 즉, 그 음악가는 자기 자신이 걸어 온 그대로 엄격한 규율을 자식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식들에게 음악은 첫째로, 행복과 자기표현의 원천이 아니고 괴로운 수업이었던 것이다. 자식들은 그 괴로운 수업이 싫었던 것이다.

 많은 목사의 아들이 종교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장사하는 아버지를 가진 젊은이가 예술가가 되고, 청교도의 신앙 깊은 어머니의 딸이 댄서가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오는 것이다.

 자식은 어버이의 그림자는 아니다. 그는 그 자신으로서 행복과 즐거움을 요구하는 독립된 하나의 인격인 것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아이들은 먼저 흥미에서 끌리는 법이다. 예술이고 수학이고 아버지가 즐겨하는 것을 보면 흥미를 느껴 자기도 해 보고 싶어진다. 독서가인 아이들은 억지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고 독서하는 것이 재미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먼저 그 유명한 음악가는 아이들에게 흥미를 돋구기 전에 너무도 괴로운 엄격한 수업을 강요했던 것이다.

 종교에 대한 깊은 신앙이 얼마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또 불평을 쫓고 행복의 길을 여는가를 가르치기 전에 엄격한 신앙의 규율과 금욕정신만 강요한다면 자녀는 어느덧 종교에서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로런스 굴드>

 

 부모는 아이들에게 자기의 희망을 억지로 떠다 맡겨서는 안된다.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스무 살 전의 자녀들의 기본적인 성격이나 기질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가진 그대로, 그가 표현하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서, 여러가지 분야가 모여 전체를 이룬 사회에 적응시키도록 하는 데 있다.

 부모의 희망과 다른 희망을 표시했다 하더라도 부모는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 찬성하고 반대하고에 따라 그 결과는 큰 차이가 있다. 찬성해 주면 자식은 용기를 얻을 것이며 반대하면 위축할 것이다.    <로런스 굴드>

 

 20세 전의 소년 소녀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천사와 악마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즉, 악마에게 끌려갈 가능성과 천사에게로 향하는 가능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미확정 지대인 것이다. 부모는 악마에게 자녀를 맡기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천사에게 자기 귀여운 자녀를 맡기고 싶은 것이지만 때로는 그 방법을 잘못하여 도리어 부모의 손으로 부지중에 악마의 손아귀에 몰아 넣을 수도 있다.

 부모는 손님 앞에 얌전하고 부모 말에 잘 복종하고 여가가 있으면 책이나 읽고 수나 놓는 자녀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어떤 테두리 안에 몰아 넣는 것은 아이로 하여금 그 능력에 대해서 자신을 잃게 하는 결과가 되기 쉽다.

 젊은 20대 이전의 소년 소녀들은 밖으로 나가 자기 동료들도 만나보고 싶고 이성과도 접촉하고 싶은 둥, 여러가지 충동 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위험하고 나쁘다고만 해서는 안된다. 우리 어른 자신들도 그 무렵에는 그랬던 것을 생각해야 한다.

 부모가 할 일은 그 자연스런 모든 충동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을 가르쳐 주는 데 있다. 성에 눈뜨는 그 자체가 나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가르침에 빠져서는 안된다. 요는 올바른 코스를 분명히 소년 소녀에게 터득시키는 점에 있다. 즉, 어른은 진리를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로런스 굴드>

 

 한두 가지 탈선을 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가장 나쁜 것은 외부에 나가서 비활동적인 병든 아이를 만드는 데에 있다. 부모가, '얌전'이란 이름 밑에 강요하는 것 중에는 자라는 소년 소녀의 생명력을 위축시키는 가장 무서운 해독이 있다. 그들의 생명의 적극성을 막아서는 안된다. 올바른 코스로 인도할 것만이 부모의 할 일이다.

 아이들은 얼마든지 뻗어나갈 가능성과 또 얼마든지 비뚤어질 가능성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것이니, 좋은 방향을 늘 분명히 가르치며 그들의 자유스런 성장을 도와 줄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본다면 부모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즉, 부모의 감화력- 억제한 것과 장려한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또 그 방법이 어떠한 것인가에 따라 아이들의 성격과 기질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로런스 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