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걷기에 알맞도록 간편히만 차리고 떠난다는 옷치장이 정작 푸른 하늘 아래에 떨치고 나서니 멋은 제대로 들었다. 스타킹과 니커-팬티와 잠바-로 몸을 가뿐히 단속한 후 등산모 제껴 쓰고 바랑을 걸머지며 고개를 드니 장차 우리의 발 밑에 밟혀야 할, 만 이천 봉이 천리로 트인 창공에 뚜렷이 솟아 보이는 듯하다.
그립던 金剛으로, 그리운 금강으로!
떨치고 나선 산장에서 어느 새 산의 향기가 서리서리 풍긴다. 산뜻한 마음으로 활개쳐 가며 산으로 떠나는 之完과 나는 이미 本町通에 방황하던 창백한 인텔리가 아니라, 力拔山 氣蓋世의 기개를 가진 갈데없는 野人 文書房이요 鄭生員이었다.
차 안에서 무슨 흘개빠진 체모란 말이냐! 우리들의 조상들의 본을 따서 우리도 할 소리 못할 소리 남 꺼릴 것 없이 성량껏 떠들었으면 그만이 아닌가.
스스로 야인의 긍지에 도취되어서 뒤로뒤로 흘러가는 창 밖의 景槪를 우리는 호화로운 심정으로 영접하였다. 고리타분한 생활을 巷間에 남겨두고 잠시나마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처럼 快事였던가. 인간 생활의 코답지근하고 답답하기 한없음을 인제서 깨달은 듯이나 하였다. 잠시나마 악착스러운 생활을 벗어나 순수한 자연의 품 안에 들어 본다는 것은 항상 오만한 인간 생활의 순화를 위하여 얼마나 긴요한 일일까.
虛心坦懷 ! 인화지와 같은 마음으로 앞으로 전개될 자연들을 우리는 海綿처럼 흡수했으면 그만이었다.
철원서 금강 전철로 차를 바꿔 탄 것이 저무는 일곱 시쯤 - 먼 산길에는 황혼이 어리고 대지는 刻一刻 회색으로 용해되어 가는데, 개성을 抽象당한 山嶺들이 묵직한 윤곽만으로 서녘 하늘에 웅크렸다.
고요하기 太古같은 이 풍경 속에서 瞬時도 멎음 없이 변화를 조종하는 기막힌 조화는 대체 누가 부리는 요술이던가. 愴冥히 저무는 경개에 심취하여 창가에 기대인 채 마음의 평화를 즐기다가 우리는 어느덧 저 모르게 가슴 깊이 지녔던 비밀들을 서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보배로 여기던 비밀을 아낌없이 털어놓도록 그만치 우리를 에워싼 분위기는 순수했던 것이다.
유리창 밖으로 비치는 지완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의 청춘사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웠을 사랑담을 허심하게 들어 넘기며 나는 몇 번이고 담배를 바꿔 피웠다.
침착한 여인네가 장롱에 옷가지 챙겨 넣듯 차근차근 조리 있게 얽어 나가는 지완의 능숙한 화술은, 맑은 그의 음성과 어울려서 귓가에 도란도란 향기로웠다.
사랑이 그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세상에 사랑처럼 쓰라린 것 매운 것은 없다는데, 지완의 것은 아침 이슬같이 淡潔했다니, 그도 그의 성격의 소치일까. 창 밖에 金風이 소슬해서 그 사람이 유난히 고매하게 느껴졌다.
외금강에 닿으니 밤 열 시! 어느 사찰을 연상시키는, 순조선식 巨廈가 달빛 속에 우리를 반기는 듯 맞는다.
내금강 驛舍다.
어느 내국인의 산장을 그대로 떠다 놓은 듯이 洋館의 외금강역과 아울러 이 조선식 내금강역은 산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한 정겨운 好對照의 두 건물이다. 내와 외를 상징한 것이 더 좋았다.
十三夜月의 달빛 차갑게 넘실거리는 역 광장에 나서니 深山의 밤이라 果是 바람은 세찬데, 별안간 溪間을 흐르는 물소리가 정신을 빼앗을 듯 소란해서 추위는 한층 뼈에 스민다. 장안사로 향하여 몇 걸음 걸어가며 고개를 드니 산과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우쭐우쭐 둘러선다. 기 쓰고 찾아온 것이 바로 저 산이 아니었던가고 금세 어루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힘껏 호흡을 들여마시니 어느덧 간장도 淸水에 씻기운 듯 맑아 온다. 淸溪를 끼고 물소리를 즐기며 걸어가기 십 분쯤, 문득 발부리에 나타나는 丹靑된 다리는 이름부터 격에 어울려 함부로 건너기조차 외람된 問仙橋 !
문선교! 어느 때 어떤 隱士가 예까지 찾아와서 仙境이 어디냐고 목동에게 借問한 故事라도 있었던가? 있을법한 일이면서 깜짝 소문에조차 듣지 못한 것은 역시 선경과 俗界가 스스로 유별한 탓이었던가.
"借文酒家何處在 牧童遙指杏花村"은 속계의 노래로, 속계에서는 이만하면 풍류객이렷다. 동양류의 선경이란 풍류객들이 사는 고장을 이름이니, 선경과 속계는 백지 한 겹밖에 아닌 듯이 믿어지니 이미 世塵을 떨치고 나선 몸이라 서슴지 않고 문선교를 건너기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 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몸에 지닌 기쁨이 하도 컸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靈峯들을 대면하려고 새댁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峻峯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모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밋밋하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野山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조반 후 단장 짚고 험난한 前程을 웃음경 삼아 探勝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 遠近 산악이 閱兵式 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 있는데, 첫눈에 비치는 萬山의 色素는 紅 !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보다 하였다.
萬壑千峯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은 �을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紅만도 아니었다. 靑이 있고, 綠이 있고, 橙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복잡한 것은 색만이 아니었다. 산의 용모는 더욱 多岐하다. 혹은 깎은 듯이 峻초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하고, 혹은 막 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틀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 용모, 풍취가 형형색색인 품이 이미 凡俗이 아니다.
산의 品評會를 연다면, 여기서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문자 그대로 無窮無盡이다. 長安寺 맞은편 산에 鬱鬱蒼蒼 우거진 것은 다 잣나무뿐인데, 모두 이등변 삼각형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섰는 품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괴어 놓은 茶禮塔 같다. 부처님은 禮佛床만으로는 미흡해서, 이렇게 자연의 진수성찬을 베풀어 놓으신 것일까? 얼른 듣기에 부처님이 무엇을 탐낸다는 것이 천만부당한 말 같지만, 탐내는 것이 物慾 저편의 존재인 자연이고 보면, 자연을 맘껏 탐낸다는 것이 이미 佛心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溪流를 끼고 돌며 몇 굽이의 협곡을 거슬러 오라가니, 산과 물이 어울리는 지점에 조그마한 찻집이 있다.
다리도 쉴 겸, 스탬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具備된 기념 印章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紙面에 나타나는 세 글자가 明鏡臺 ! 俯仰하여 天地에 참愧함이 없는 公明한 심경을 明鏡止水라고 이르나니,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 머무르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지니고 온 惡心을 여기서만은 淨하게 하지 아니ㅎ지 못하는 곳이 바로 만경대란 말인가! 아무러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찻집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로 올라가니, 깊고 푸른 黃泉潭을 발 밑에 굽어보며 半空에 巍然히 솟은 층암 절벽이 우뚝 마주 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火粧鏡 그대로였다. 옛날에 죄의 有無를 이 명경에 비추면, 그 밑에 흐르는 황천담에 죄의 影子가 반영되었다고 길잡이는 말한다.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건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이 發明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일까? 백 번 놀라도 猶不足일 거울의 요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可驚할 일인가?
신라조 최후의 왕자인 麻衣太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이 바위 위에 꿇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南無阿彌陀佛을 염송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業罪를 명경에 映照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雲上氣품에 무슨 죄가 있으련만, 등극하실 몸에 麻衣를 감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 이미 佛法이 말하는 前生의 緣일는지 모른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 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閻魔처럼 막아 서는 雄姿가 釋迦峯, 뒤로 맹호같이 덮누르는 神容이 天眞峯! 전후 좌우를 살펴봐야 협착한 골짜기는 그저 그뿐인 듯, 進退維谷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
몸에 감길 듯이 정겨운 黃泉江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由來談을 길잡이에게 들어가며 쉬엄쉬엄 걸어 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深海같이 幽邃한 수목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至天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산 전체가 燎原 같은 花原이요, 碧空에 巍然히 솟은 峯峯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 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때 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百花爛漫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의 神火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고 있는 것일까? 眞朱紅을 함빡 빨아들인 海綿같이, 우러러볼수록 찬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풍이 이렇게까지 고운 줄은 몰랐다. 金兄은 몇 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그림 같은 蓮花潭 垂簾瀑을 玩賞하며, 몇 십 굽이의 石階와 木棧과 鐵索을 踏破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막아서는 무려 삼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 - 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시야는 一望無際로 탁 트인다. 여기가 해발 오천척의 望軍臺 - 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이름도 정다운 白馬峯은 指呼之間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毘盧峯은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깝다. 그 밖에도, 有象無象의 허다한 봉들이 戰時에 할거하는 群雄들처럼 여기에서도 불끈 저기에서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 밑에 千인斷崖, 無限除로 뚝 떨어진 黃泉溪谷에 단풍이 선혈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 단장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치마폭 같다고나 할까. 수줍어 수줍어 생글 돌아서는 낯 붉힌 아가씨가 어느 구석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
저물 무렵에 摩하衍의 旅舍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여서였던가. 어서 오십사는, 상냥한 안주인의 歡待도 은근하거니와,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 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은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旅裝을 풀고 摩하衍庵을 찾아갔다. 여기는 禪院이어서, 공부하는 僧侶 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로 삼십명은 됨직하다. 이런 深山에 웬 승려가 그렇게도 많을까?
한없는 청산 끝나가려 하는데/흰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 - 無限靑山行欲盡 /白雲深處老僧多
옛 글 그대로다.
路毒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등 아래에 앉으니, 溫故之情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 하며, 불을 바라보는 김 형의 말씨가 하도 따뜻해서, 나도 장난 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였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운 얼굴들이, 흐르는 물의 落花 송이 같이 떠돌았다.
밤 깊어 뜰에 나가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陰風이 몸에 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 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요, 물 소린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 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뜰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는 등잔 아래에 외로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깊은 줄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 품이, 春香이 笞刑 맞으며 百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陋名 쓴 薔花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告祝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시베리아로 定配가는 카추샤의 뒤를 네프 伯爵이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 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갔다.
자꾸 깊은 산속으로만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을 다시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친지와 처자를 버리고 중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群小峯이 발 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옥하고 陰散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기더니, 銀梯, 金梯에 다달았을 때, 기어이 비가 내렸다. 젖빛 같은 煙霧가 짙어서 지척을 분별할 수 없다. 雨裝없이 떠난 몸이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올라가노라니까, 돌연 一陣狂風이 어디서 불어 왔는지, 휙 소리를 내며 雲霧를 몰아가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주홍 주단 폭같이 늘어놓은 붉은 진달래 단풍이, 몰려가는 연무 사이로 나타나 보인다. 은제와 단풍은 마치 이랑이랑으로 섞바꾸어가며 짜 놓은 비단결 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진달래 꽃보다 단풍이 倍勝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를수록 雨勢는 맹렬했으나, 광풍이 안개를 헤칠 때마다 濃霧 속에서 忽顯忽沒하는 靈峯을 迎送하는 것도 과히 壯觀이었다. 산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暴注로 내리붓는다. 만 이천 봉을 단박에 滄海로 변해 보려는 것일까. 우리는 갈데 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 가지고 비로봉 絶頂에 있는 찻집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내나보고 섰던 童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였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 같은 난로를 에워싸고 둘러앉았던 先着客들이 자리를 사양해 준다. 인정이 다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뒤집히는 듯하다. 龍虎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大怒하신 것일까? 驚天動地도 類萬不同이지, 이렇게 萬象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肝腸을 죄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간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졌다. 變幻도 이만하면 극치에 달한 듯싶다.
비로봉 最高點이라는 巖上에 올라 사방을 眺望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雲海뿐, - 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으리라 싶었다. 內外海 三金剛을 一望之下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는 것이 가석하나, 돌이켜 생각건대 해발 육천 척에 다시 신장 오척을 가하고 傲然히 佇立해서, 萬壑千峯을 발 밑에 꿇어 엎드리게 하였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일랴. 마음은 千軍萬馬에 군림하는 快勝將軍보다도 교만해진다.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樹海였다. 설자리를 삼가 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樹中公主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哀話 맺혀 있는 龍馬石 - 마의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陵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 - 鐵柵도 床石도 없고, 風霖에 시달려 碑文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무덤가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석양이 저무는 서녘 하늘에 化石된 태자의 愛騎 龍馬의 孤影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르는 듯, 素服한 百花는 한결 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에 서럽다.
태자의 몸으로 麻衣를 걸치고 스스로 險山에 들어온 것은, 千年社稷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지려는 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樂浪公主의 纖纖玉手를 뿌리치고 돌아서 入山할 때에, 대장부의 胸裡가 어떠했을까? 興亡이 在天이라, 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信義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悠久한 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須臾던가! 고작 七十生涯에 희로애락을 싣고 角逐하다가 한움큼 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愁愁롭다. (鄭飛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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