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모성(母性)' '여자'/林語堂

如岡園 2008. 5. 20. 08:53

        #  모성(母性)

 

 세상 사람들의 즐거움의 대부분은 그가 필생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할 수 있는 일, 즉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내 생각으로는, 현재 남녀가 하고 있는 직업적인 일 가운데 백분의 구십은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고 자랑하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 말이 진실에서 우러나온 것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된다. 우리는 '나는 내 집을 사랑한다' 고 하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라 말하지 않아도 다 알기 때문이다. 보통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매일 그들의 직장에 들어설 때의 심정은 비슷하다. 중국 부인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과 같이, '사람마다 다 마찬가지인데 나만이 예외일 수 있나' 하는 심리를 가지는 것과 같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만약 이 말이 엘리베이터 운전사나 전화 교환양 혹은 칫과의사의 입에서 나왔다면 이것은 틀림없는 거짓말이다. 만약 이 말이 편집자(編輯者)나 부동산업자 혹은 증권 대리 매매인의 입에서 나왔다면 이건 더욱 마음에 없는 말이다. 북극을 향해 떠나는 탐험가나 실험실 안에 있는 과학자가 전심전력을 다하는 이외는, 사람들이 자기 일에 대해 기껏해야 취미에 맞는다거나 성격에 부합된다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사랑한다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에 대한 사랑이 결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 비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직업에 대해 혐오를 느끼고 몇 차례나 전업을 하지만, 어떤 어머니나 자녀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이 필생의 일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 일은 없다. 성공한 정치가가 그 정치적인 업적을 포기할 수 있고, 편집자가 그가 출판한 잡지의 업적을 포기할 수 있고, 비행가가 비행의 업적을 포기할 수 있고,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의 성취를 포기할 수 있고, 배우가 무대를 포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어머니도 성공했건 아니면 실패했건 간에 어머니로서의 직책을 포기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여기고, 그의 생명 가운데 이미 하나의 지위가 있어, 이 좋은 직무를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념은 히틀러가 자기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강한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생명 가운데 적절한 지위를 얻었다고 하는 만족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취업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혹 5퍼센트는 자기 성격에 맞는 일을 얻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러나 100퍼센트의 부모들은 모두 자기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바로 생활 목표 가운데 가장 절실한 부분임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한 여인이 자연 어머니라는 천직(天職)을 갖는 가운데,  건축기사가 되는 것보다 더욱 쉽게 참된 쾌락을 얻게 됨을 이해할 수 있다. 대자연도 결코 그를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은 여인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여자들이 원래 이와 같은 의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말로만 표현하지 않았을 뿐임을 알고 있다. 지금 내가 이 내용을 말로 표현하고 나서 가장 무거운 짐은 결국 여자가 져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니 여자들은 혹시 이 말을 듣고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내 본의(本意)이며 취지이다. 어느 것이 여자에게 좋은 것인가 두고 보자. 왜냐하면, 우리들의 관심은 여인의 쾌락에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이룩한 업적의 쾌락이 아니라 개인적인 쾌락이다. 타당하고도 적절한 관점에서 말한다면, 여자처럼 그 직무에 적합한 은행장은 몇 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늘 능력이 모자라는 계장, 능력이 모자라는 경영자, 능력이 모자라는 은행가, 능력이 모자라는 사장의 얘기들을 들을 수는 있지만, 능력이 모자라는 어머니의 얘기는 듣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어머니라는 직종에 적합한 것이다.

 

 

       #  여자

 

 나는 여자들과 말하기를 제일 좋아한다. 그들은 정말 재미가 있다. 늘 나로 하여금 바이런의 명구(名句)를 생각케 한다.

     남자란 얼마나 이상한 동물이냐? 그러나 더 이상한 것은 여자다.

     (What a strange thing is man! and hat a stranger is woman!) 

 나를 니체나 쇼펜하워 같은 여성 증오자라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나도 셰익스피어같이 신사적으로 '약한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니라'라고 여인에 대하여 지고(至高)의 개념으로 하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좋아한다. 넋을 잃어야 할 필요도 없고 괴로와 할 필요도 없는 그런 모습이다. 그들은 능히 일체의 모순과 천박,부화(浮華)등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직감과 생존 본능을 믿는다. - 그들이 말하는 제육감(第六感)은 그들이 감정을 중시하고 이지(理智)를 경시하는 표현 아래, 그들은 현실을 장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자보다 더욱 인생에 접근한다. 나는 이 점을 대단히 존중한다. 그들이 인생을 아는 데 반해 남자들은 오히려 이론만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남자를 이해하지만 남자는 영원히 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는 일생 동안 담배를 피우고, 사냥을 하고, 발명을 하고, 작곡을 하는데, 여자는 오히려 자녀만을 키운다. 이것은 경멸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세상에 아버지만 있어도 그의 자녀를 돌볼 수 있다는 가정을 믿지 않는다. 또 세상에 어머니가 없으면 모든 갓난아이는 세 살이 되기 전에 홍역을 앓아 다 죽어버리거나 설령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열 살 미만에 소매치기가 될 것이라는 가정도 믿지 않는다. 국민학교 학생들은 틀림없이 지각을 할 것이요, 어른들의 공무(公務)도 시간에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손수건은 몇 달을 쌓아두고 빨지 못할 것이며, 우산도 늘 잃을 것이며, 시내버스도 시간에 맞추어 운행하지 못할 것이다. 결혼이니 장례니 하는 의식도 없을 뿐더러, 이발소는 틀림없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인생의 대사, 생로병사, 그 모두가 여인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지 남자에 의해서 처리되는 것이 아니다. 종족의 번식, 풍속의 조성, 민족의 단결이 모두 완전히 여인에 의지하고 있다. 여자가 없는 세계는 틀림없이 예의와 종교 및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선천적으로 예의를 지키는 남자도 없고 선천적으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여자도 없다. 만일 여자가 없다면, 남자들은 예쁘장하고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 거리에 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삼각형의 문이 있는 독창적인 설계로 지은 집에서 살 것이다. 침실에서 식사를 하고 식당에서 잠을 잘 뿐 아니라 가장 훌륭한 외교관이라 하더라도 흰 넥타이와 검은 넥타이의 중요성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위에 든 긴 얘기는 여자들의 직감이 남자들의 이론을 훨씬 능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말들이다. 이미 이 점이 명백해졌다면 우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여자들의 얘기가 재미있는 까닭을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여자들의 이론적인 얘기는 바로 그들의 행위의 일부분이다. 소위 한가하게 주고받는 얘기 가운데서, 무미건조한 추상명사는 찾아볼 수 없고, 모두가 실제의 인물들이며 모두가 기고 꿈틀거리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자면, 여자가 사교적인 모임에서 어느 대학의 유기화학 교수를 소개한다면 그가 유기화학 교수라는 것을 절대로 말하지 않고 해리슨 대령의 외삼촌이라고 소개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령이 죽을 때, 그 여자는 때마침 뉴욕의 한 병원에서 맹장염을 수술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점에서 얘기는 일본 외교가들이 이른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현실' 쪽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혹은 해리슨 대령이 일찌기 자기와 함께 켄싱턴 공원을 산보했다거나 혹은 맹장염으로 해서 '친애하는 브라운 의사 선생님과 그의 아름다운 긴 수염'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얘기가 어떤 제목이 되든 간에 여자는 현실을 꽉 잡는다. 그는 어떤 것이 인생의 의미가 충만한 것이며 무엇이 쓸데없는 잔소리인가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여자라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을 좋아할 것이다. 그 여자가 파리에 가서 방돔 광장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나폴레옹 탑(銅柱)에 등을 지고 서서 고개를 쳐들고 '역사상 유명한 이름', 예를 들면 코티와 카스티에(향수점의 간판) 같은 것을 바라다 보는데, 그의 직감에 의해 방돔과 코티를 비교해 보고 스스로 코티는 인생의 의미가 충만하지만 방돔은 오히려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맹장염은 사실이지만, 유기화학은 아니다. 인생은 생, 사 ,맹장염, 홍역, 향수, 생일파티로 결합된 것이다. 결코 유기화학과 무기화학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다. 물론 세상에는 퀴리 부인, 엠마 골드망과 비트리스 웨브와 같은 학자도 있지만 나는 평범한 일반 여성들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X는 위대한 시인입니다." 어느 땐가 기차 안에서 한 여자 손님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음악을 감상할 줄 알며 그의 문장은 지극히 우아하고 자연스럽다."라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W를 말하시는 것이 아니세요? 그의 부인은 아편을 피우지요". "그렇습니다. 그 자신도 때때로 아편을 피우지요.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그의 문장입니다". "그 여자가 그에게 아편을 피우도록 했어요. 그 여자가 그의 일생을 망쳤다고 저는 생각해요". "만일 당신의 쿡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면 그가 만든 과자의 맛을 잃어버리십니까?". "아, 그건 다르지요".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감각'은 여자의 최고 법원이다. 여자들이 옳고 그름을 그들의 '감각' 앞에 호소할 때 똑똑한 사람은 기회를 보아 물러나야 한다.

 

 한 미국 여자가 일찌기 '묘한 생각'을 한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자들이 이 세계를 엉망진창으로 통치했기 때문에 차후로는 여자들에게 세계의 통치권을 물려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한 남자의 자격으로 얘기한다면,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나는 다시 이 세계를 통치하기에는 게으르다. 만약 누군가가 맹목적으로 이 일을 즐겨 하겠다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양보하고 휴가나 가겠다. 나는 완전히 실패했다. 나는 다시 세계를 통치하고 싶지도 않다. 머리가 똑똑한 남자들은 틀림없이 나와 동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태즈매이니어 섬(오스트레일리아 남쪽에 있음)의 토인들이 세계를 통치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이 일을 즐겁게 그들에게 물려주겠지만, 아마 그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머리에 왕관을 쓴 사람들은 모두 잠자리가 편치 않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남자들은 모두 이에 동감일 것이다. 우리 남자들은 자기 운명의 주재자(主宰者)요 세계 운명의 주재자라고 한다. 또한 영혼의 관리자요, 세계 영혼의 관리자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정치가, 정객, 시장, 재판관, 극장 지배인, 과자집 주인 및 기타 다른 직위도 모두 남자의 소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러한 일을 하기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의 사정은 이것보다 더욱 간단하다. 콜럼비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가 말한 것처럼, 남녀 사이의 진정한 분업은 바로 남자는 돈만 벌어오고, 여자는 다만 돈을 쓰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정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나는 정말 여자들이 조선소나 사무실 혹은 회의석상에서 수고스럽게 일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며, 동시에 우리 남자들은 오후에 색깔이 고운 가벼운 옷을 입고 나가 화투놀이나 하다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이 퇴근해 돌아와 우리를 데리고 나가 영화구경을 시켜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묘한 생각'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이기적인 이유 이외에도 우리는 정말 마땅히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만약 여자들이 세계를 통치한다 하더라도 남자보다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 리는 없다. 그러므로 만일 여자들이 '마땅히 우리 여자들로 하여금 한 번 해보게 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진심으로 자기들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세계를 통치하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자들이 줄곧 자녀를 기르고 있을 때, 우리 남자들은 오히려 전쟁이나 도발하여 가장 우수한 청년들을 죽게 내보냈다. 이는 정말 듣기에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만회할 방법이 없다. 우리들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모양이다. 우리는 아무래도 전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서로 말다툼이나 하고 가장 심한 경우라 하더라도 할퀴어 피나 나게 할 정도다. 만일 독이 안 들면 이것은 상해라고도 할 수 없다. 여자들은 다만 바늘을 휘두르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우리는 기관총을 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남자들이 브라스밴드의 연주를 듣기 좋아하는 한 전쟁을 중지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브라스밴드를 반대할 수는 없다. 가령 우리가 집 안에 조용히 앉아 외출을 덜하고 하오의 커피타임을 즐길 수만 있다면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할 것인가? 만약 여자들이 세계를 통치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들이 지금 세계를 통치하고 있으니, 만일 전쟁을 하고 싶거든 당신들이 나가 싸워보구료." 그때 세계에는 기관총이 있을 수도 없으니 천하는 마지막에 가서 태평해질 것이다.

 

                                                                                 林語堂隨想錄 <吾見吾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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