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페이터의 산문/이양하

如岡園 2008. 1. 26. 22:51

 만일 나의 애독하는 서적을 제한하여 2,3권 내지 4,5권만을 들라하면 나는 그 중의 하나로 옛날 로마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들기를 주저하지 아니하겠다.

 혹은 설움으로, 혹은 분노로, 혹은 욕정으로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또는 모든 일이 뜻같지 아니하여, 세상이 귀찮고, 아름다운 동무의 이야기까지 번거롭게 들릴 때, 나는 흔히 이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 황제를 생각하고, 어떤 때에는 직접 조용히 그의 <명상록>을 펴본다. 그러면 그것은 대강의 경우에 있어, 어느 정도의 마음의 평정을 회복해 주고, 당면한 고통과 침울을 많이 완화해 주고, 진무(鎭撫)해 준다.

 이러한 위안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는 확실치 않다. 모르거니와, 그것은 -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네 마음에 달렸다." "행복한 생활이란, 많은 물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모든 것을 사리(捨離)하라. 그리고 물러가 네 자신 가운데 침잠(沈潛)하라." - 이러한 현명한 교훈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도리어 그 가운데 읽을 수 있는 외로운 마음,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생활의 필요조건이 되어 있는 마음, 행복을 단념하고 오로지 마음의 평정만을 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목전의 현실에 눈을 감음으로써, 현실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또 어떤 때는 현실을 아주 무시하고 망각할 수 있는 마음에서 오는 편이 많을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 그 위안은 건전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일종의 지적 오만 또는 냉정한 무관심이, 황제의 견인주의의 자연한 귀결이요, 동시에 생활철학으로서의 한 큰 제한이 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반면, 견인주의가 황제의 생활에 있어 가장 아름답게 구현되고, 견인주의자의 추구하는 마음의 평정이, 행복을 구할 수 있는 마음의 한 기본적 자체(姿體)가 된다는 것만은 또 수긍하지 아니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음에 번역해 본 것은 직접 <명상록>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요, 월터 페이터가 그의 <쾌락주의자 마리우스>의 일장(一章)에 있어서  황제의 연설이라 하여, <명상록>에서 임의로 취재한데다 자기 자신의 상상과 문식(文飾)을 가하여 써 놓은 몇 귀절을 번역한 것이다.

 페이터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세기말의 영국의 유명한 심미비평가(審美批評家)로, 아름다운 것을 관조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나는 그의 문예부흥의 찬란한 문체도 좋아하나 이 몇 귀절의 간소하고 장중한 문체도, 거기 못지아니하게 좋아한다. 그리고 황제의 생각도 페이터의 붓을 빌어 잃은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한층 아름다운 표현을 얻었다 할 수 있지 아니한가 한다.  

 

 사람의 칭찬받기를 원하거든, 깊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 그들이 어떠한 판관인가, 또 그들이 그들 자신에 관한 일에 대하여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가를 보라. 사후에 칭찬받기를 바라거든, 후세에 나서 너의 위대한 명성을 전할 사람들도, 네가 오늘같이 살기에 곤란을 느끼는 사람들과 다름없다는 것을 생각하라. 진실로 사후의 명성에 연연해 하는 자는, 그를 기억해 주기 바라는 사람의 하나하나이 같이, 얼마 아니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기억 자체도 한동안 사람의 마음의 날개에 오르내리나 결국은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네가 장차 볼 길 없는 사람들의 칭찬에 그렇게도 마음을 두는 것은 무슨 이유인고! 그것은 마치 너보다 앞서 이 세상에 났던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참다운 지혜로 마음을 가다듬은 사람은, 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호머의 싯귀 하나로도 이 세상의 비애와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유자(阿諛者)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 하는 자나, 이 세상에 있어 너를 헐고 비웃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나, 모두가 다 한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그들은 참으로 호머가 말한 바와 같이 봄철을 타고난 것으로, 얼마 아니하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나무에는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통된 것이라곤 다만 그들의 목숨이 짧다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치 그들이 영원한 목숨을 가진 것처럼 미워하고 사랑하려고 하느냐? 얼마 아니하여서는 네 눈도 감겨지고, 네가 죽은 몸을 의탁하였던 자 또한 다른 사람의 짐이 되어 무덤에 가는 것이 아닌가?

 때때로 현존하는 것, 또는 인제 막 나타나려 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신속히 지나가는 것인가를 생각하여 보라. 그들의 실체는 끊임없는 물의 흐름, 영속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리고 바닥 모를 시간의 심연(深淵)은 바로 네 곁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혹은 기뻐하고, 혹은 서러워하고, 혹은 괴로와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무한한 물상(物象) 가운데 네가 향수(享受)한 부분이 어떻게 적고, 무한한 시간 가운데 네게 허여된 시간이 어떻게 짧고, 운명 앞에 네 존재가 어떻게 미소(微小)한 것인가를 생각하라. 그리고 기꺼이 운명의 직녀(織女) 클로토의 베틀에 몸을 맡기고, 여신이 너를 실삼아 어떤 베를 짜든 마음을 쓰지 말라.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싸움에 휩쓸려들어갔을 때에는 때때로 그들의 분노와 격렬한 패기로 오늘까지 알려진 사람들 - 저 유명한 격노(激怒)와 및 그 동기(動機) - 을 생각하고 고래(古來)의 큰 싸움의 성패를 생각하라. 그들은 지금 모두 어떻게 되었으며, 그들의 전진(戰塵)의 자취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야말로 먼지요, 재요, 이야기요, 신화, 아니 어떡하면 그만도 못한 것이다. 일어나는 이런 일 저런 일을 중대시하여 혹은 몹시 다투고 혹은 몹시 화를 내던 네 신변의 사람들을 상기하여 보라. 그들은 과연 어디 있는가? 너는 이들과 같아지기를 원하는가? 

 

 죽음을 염두에 두고 네 육신과 영혼을 생각해 보라. 네 육신이 차지한 것은 만상(萬象) 가운데 한 미진(微塵), 네 영혼이 차지한 것은 온 세상에 충만한 마음의 한 조각. 이 몸을 둘러보고 그것이 어떤 것이며 노령과 애욕과 병약 끝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또는 그 본질, 원형(原形)에 상도(想到)하여 가상(假想)에서 분리된 정체(正體)를 살펴보고 만상의 본질이 그의 특수한 원형을 유지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생각해 보라. 아니 부패한 만상의 원리원칙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만상은 곧 진애(塵埃)요 수액(水液)이요 악취요 골편(骨片), 너의 대리석은 흙의 경결(硬結), 너의 금은(金銀)은 흙의 잔사(殘渣)에 지나지 못하고, 너의 명주옷은 벌레의 잠자리, 너의 자포(紫袍)는 깨끗지 못한 물고기 피에 지나지 못한다. 아아! 이러한 물건(物件)에서 나와 다시 이러한 물건으로 돌아가는 네 생명의 호흡 또한 이와 다름이 없느니라.

 

 천지에 미만(彌滿)해 있는 대령(大靈)은 만상을 초와 같이 손에 넣고, 분주히 차례차례로 짐승을 빚어내고, 초목을 빚어내고, 어린애를 빚어낸다. 그리고 사멸하는 것도 자연의 질서에서 아주 벗어져나가는 것은 아니요, 그 안에 남아 있어 역시 변화를 계속하고, 자연을 구성하고, 또 너를 구성하는 요소로 다시 배분(配分)되는 것이다. 자연은 중얼거림 없이 변화한다. 느티나무 궤짝은 목수가 꾸며놓을 때 아무런 불평도 없었던 것과 같이 부서질 때도 아무런 불평을 말하지 아니한다. 사람이 있어 네가 내일, 길어도 모레는 죽으리라고 명언(明言)한다 할지라도 네게는 내일 죽으나 모레 죽으나 별 다름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너는 내일 죽지 아니하고 1년 후 2년 후 또는 10년 후에 죽는 것을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도록 힘쓰라. 

 

 만일 너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 마음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니까 너는 그것을 쉬이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만일 죽음에 부수되는 여러가지 외관과 관념을 사리(捨離)하고 죽음 자체를 직시한다면, 죽음이란 자연의 한 이법(理法)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람은 그 이법 앞에 겁을 집어먹는 어린애에 지나지 못하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 죽음은 자연의 이법이요 작용일 뿐 아니라, 자연을 돕고 이롭게 하는 것이다.

 

 활동을 중지하는 데, 생각하고 행하는 네 노력을 중지하는 데 아무런 해도 없다. 사람의 일생의 여러가지 단계, 유년 청년 성년 노년을 생각해 보라. 이 하나하나의 변천 역시 한 죽음이나, 거기도 아무런 해가 없다. 너는 배를 타고 물을 건너 언덕에 다다랐다. 그러니 배에서 내리라! 피생(彼生)이 있다 하자, 그렇다면 거기도 신의 섭리가 있을 것이요, 영원한 망각이 있다 하자, 그렇다면 너는 적어도 오관(五官)에 사무치는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무감각한 괴뢰(傀儡)와 같이 너를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어놓는 모든 정욕을 해탈하고 이지(理智)의 멀고 먼 길, 육신에의 수고로운 예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철인(哲人)이나 법학자나 장군이 우러러보이면 이러한 사람으로 이미 사거(死去)한 사람을 생각하라. 네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볼 때는 네 조선(祖先)의 하나, 옛날의 로마 황제의 하나를 생각하여 보라. 그러면 너는 도처에 네 현신(現身)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여 보라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너는 네 생명이 속절없고, 너의 직무, 너의 경영(經營)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머물러 있으라. 적어도 치열한 불길이 그 가운데 던져지는 모든 것을 열과 빛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이러한 세상의 속사(俗事)나마 그것을 네 본성에 맞도록 동화시키기 까지는.

 

 한때 통용되던 말이 폐어(廢語)가 되는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던 이름도 마침내는 잊혀진다. 카밀루스, 볼레수스, 레오나투스, 조금 내려와서는 스키피오와 카토, 그리고 다음에는 아우구스투스, 하드리안, 안토니누스 피우스,이러한 큰 이름이 모두 그러하다. 또 수미(愁眉)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병상 옆에 섰던 얼마나 많은 의사가 그들 자신 병들어 죽었는가! 다른 사람의 운명을 신중하게 예언하던 저 현명한 칼테아의 복자(卜者)들도 자기 자신의 최후는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집에 살던 모든 사람, 티베리우스와 같이  카프리의 도변(島邊)을 사랑하고 정원과 탕욕(湯浴)을 즐기던 사람들, 불멸에 관하여 정밀한 철리(哲理)를 말하던 피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 또는 자기의 생명만은 영속할 듯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무찌른 알렉산더, 그와 그의 마부가 지금 다른 것이 무엇인가 - 이러한 모든 사람들도 다 한가지로 다음 다음 가버리지 아니하였는가! 안토니우스의 궁신(宮臣)도 태반은 죽었다. 판테아도 페르가무스도 벌써 그녀들의 임자의 분묘 옆에 앉아 있지 아니한 지 오래다. 하드리안의 묘지기도 이미 사라졌다.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면 도리어 우스운 일일 것이다. 그들이 혹 아직 남아 있어 묘를 지킨다 한들 죽은 사람이 그것을 알고 기뻐하며, 또 그들이 영구히 지켜주는 것을 즐겨 하랴?  그들도 결국은 늙고 병들어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누가 있어 군왕의 분묘를 지킬 것인가? 이것이 무덤의 종말로 무덤에도 정명(定命)이 있는 것이다.

 

 세상은 한 큰 도시, 너는 이 도시의 한 시민으로 이때까지 살아 왔다. 아! 온 날을 세지 말며, 그날의 짧음을 한탄하지 말라. 너를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부정한 판관이나 폭군이 아니요 너를 여기 데려온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그를 고용한 감독이 명령하는 대로 무대를 나가듯이. 아직 5막을 다 끝내지 못하였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3막으로 극 전체가 끝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작자의 상관할 일이요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기쁨을 가지고 물러가라. 너를 물러가게 하는 것도 혹은 선의(善意)에서 나오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李敭河隨筆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