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으로 樂한다

[스크랩] 連絡船の唄 / 菅原都都子

如岡園 2012. 5. 17. 23:33

 

엔카 컴나라* 편집


☆.-- 동영상

가사곡
      ▣ 連絡船の唄 / 菅原都都子 ▣ 作詞 : 大高ひさお 作曲 : 金海松 번역 : 화산 한글토 :유덕인 (1) 오모이기레나이 미렌노테에푸 思い切れない 未練のテ-プ 단념할수 없는 미련의 테-프 기레테 세츠나이 온나노 코이고코로 切れて切ない 女のこい心 끊어져 안타까운 여자의 사랑하는 마음 기테키히토코에 기테키히토코에 汽笛一聲 汽笛一聲 기적소리 한마디 기적소리 한마디 나미다노 하토바 와타시히토리오 淚の波止場 わたしひとりを 눈물의 부두에 나혼자만을 스테테유쿠 랜라쿠셍요 捨ててゆく 連絡船よ 버리고 가는 연락선아 (2) 오구니나마리가 이마사라가나시 お國なまりが いまさら悲し 고향 사투리가 새삼스레 슬퍼요 아레가카타미카 와카레노 후나우타요 あれがかたみか 別れの船歌よ 저것이 유품인가 이별의 뱃노래여 츠바사아루나라 츠바사아루나라 翼あるなら 翼あるなら 날개가 있다면 날개가 있다면 이키타이오모이노 와타시히토리오 行きたい思いの わたしひとりを 가고싶은 생각인 나혼자만을 스테테유쿠 렌라쿠센요 捨ててゆく 連絡船よ 버리고 가는 연락선아 (3) 기리노 카이쿄오노 고우카이토우와 霧の海峽の 航海燈は 안개낀 해협의 항해등은 이츠카미나토니 가엣테쿠루모노오 いつか港に かえってくるものを 언젠가는 항구에 돌아 오건만 가에루아테나이 가에루 아테나이 かえるあてない かえるあてない 돌아올 기약 없는 돌아올 기약 없는 코이유에미오야쿠 와타시히토리오 戀ゆえ身をやく わたしひとりを 사랑이기에 애태우는 나 혼자만을 스테테유쿠 렌나쿠셍요 捨ててゆく 連絡船よ 버리고 가는 연락선아
    菅原都々子(すがわらつづこ) 
    1927年 青森県 胎生 
    아버지는 浅草opera歌手의 河合丸目郎(まるめろう)에서
    後에 作曲家 陸奥明이며 当時의 陸奥明은 
    故郷으로 돌아가 新聞記者가 됩니다. 
    9歳 때 audition에 參加하기 爲해 홀로 上京하여 古賀政男의 
    認定을 받아 “古賀久子”란 이름으로 養女가 됩니다 
    1937年 養父 古賀가 作曲한 “お父さんの歌 時計” 로 debut- 하고 
    実父 陸奥明도 作曲家로서 上京합니다. 
    1940年 古賀久子란 養女 因緣을 끊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 
    菅原都々子란 藝名으로 다시 debut- 합니다. 
    1945年 아버지의 母校인 東洋音楽学校을 卒業하고
    戦後에는 田端義夫의 前座(最下位 演藝人의 役割)에서 
    努力하면서 独特한 vibrato 의 高音으로 차차 
    人気를 얻기 始作합니다. 
    1946年 “片割れ月” 1948年 “踊りつかれて” 1950年
     “憧れの住む町” 
    1951年 “憧れは馬車に乗って” 1951年 “連絡船の唄”
     “江の島悲歌” 
    이때에 江の島悲歌는 大映에서 映画化하여 크게 hit 되고 
    菅原都々子의 이름이 全国에 퍼져 有名해집니다. 
    1951年 “アリラン/トラジ” 를 처음으로 
    日本에서 불러 韓国melody 를 紹介한 曲이 됩니다 
    1952年 “佐渡ヶ島悲歌” 1955年 “月がとっても青いから” 
    이 曲은 아버지 陸奥이 image 를 바꾸어 販賣한 曲으로 
    當時는現在의 1/3인 市場規模에서도 100万枚(現在의 3,000万枚에 
    相当)의 売上으로 크게 hit 시켜 歌手의 地位를 
    確固하게 합니다. 
    1955年 “木浦の涙” 그 後에도 노래는 繼續되고
    歌手生活50, 60周年記念의 recital 를 開催 하고
    2006年 “第38回NHK思い出のメロディー” 에 出演” 
    月がとっても青いから를 
    불러 다시 크게 hit하여 지난날의 變치 않는 名聲을 確因하였습니다 
    약력 作成 黃圭源 
    편집 柳 덕인

    출처 : 새벽별이 보고, 듣고,남기고
    글쓴이 : 새벽별 원글보기
    메모 : '연락선의 패'는 장세정의 데뷔곡 '연락선은 떠난다'(1937년)를 일본어로 번안하여 스가와라 스즈코가 부른 노래다. 1951년 취입 이래 수많은 일본의 대표적 여가수들이 불러 일본에서 더 유명해짐으로 해서 자칫 일본의 노래로 착각할 수가 있지만, 박영호 작사의 가사만 일본말로  번안되었을 뿐 작곡은 김해송(본명 김송규)의 원곡 그대로이다. 이 노래가 인연이 되어 장세정은 스가와라와 친하게 되고, 자신의 일본 공연 때 자신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연락선...'은 스즈코에게 양보하기까지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