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은 윤극영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다. 1927년 경성방송이 개국하여 정규 방송 시대가 열리기 3년 전인 1924년 12월, 21세의 청년 음악가 윤극영은 경성 관철동의 영화관 우미관의 마이크 앞에서 이 '반달'을 불렀다. '반달'은 지은이가 시집간 맏누이의 부고를 듣고 처연한 마음이 돼 만든 노래라고 하며, 그 직전에 아버지에게서 들은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에서 착상했다고 한다. 뒤에 '나라 잃은 슬픔'이 시상과 악상의 실마리라는 회고가 보태졌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운명을 '쪽배'에 담아 '희망'을 상징하는 '샛별 등대'로 향하게 하는 希願이 가득 담긴 이 민족 동요는, 잠자고 있는 조선의 혼을 흔들어 깨웠다. '반달'은 식민지 조선의 꿈을 상징한다. 그것을 '샛별 등대'로 형상화함으로써 그는 민족의 앞날을 가파른 뱃길로 비유, 희망의 이미지로 나타냈다. 엄혹했던 시대에 어린이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들이 즐겨 부르던 이 동요는 광복 후엔 교과서에도 실리어, 온 겨레의 사랑을 받아왔다. //'반달'은 1950년대 초 북경에서 조선족 김정평과 그의 아버지 김철남이 중국어로 번역 편곡, 레코드로 취입하여 30년간 애송되었고, 1979년 '샤오바이촨', 곧 '하얀 쪽배[小白船]'라는 제목으로 중국 통용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었는데, 중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동요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 '반달'이야말로 韓流의 원조(?)가 아닌가 한다. '샤오바이촨'의 가사는 '반달'의 내용을 직역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노래가 중국의 인민에게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데에는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사에 중국 인민에게 친근한 고대 신화와 연관된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게 흥미롭다. 직역된 '반달'의 노랫말은 중국 인민에게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니 별 어려움 없이 '우리의 동요'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류영남의 글 '동요 설날과 반달을 다시 읽다'<수필 동인지 길 12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