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한국 동물우화의 소설적 변용/논문

如岡園 2016. 7. 9. 21:42

          한국 동물우화의 소설적 변용(變容)

 

 인도의 판차탄트라, 그리스의 이솝우화에까지 뿌리를 두고 있는 우화(寓話)는 한국문학에서도 <龜兎說話>를 비롯한 민담이나 가전(假傳) 형식의 단형서사문학(短型敍事文學)에 수용되어 널리 원용되어 왔다.

 처음에는 단순 형태의 서사체이던 이 우화가 구전(口傳)을 통한 윤색이 더해짐으로써 점차 묘사적 요소가 확대되었으며 조선조 후기에 이르러서는 사회현상, 인간 본성을 비판하는 풍자소설로까지 발전한 것이 동물우화소설인데, 이렇게 단순한 서사체(敍事體)인 동물우화가 조선조 후기에 와서 장형(長型)의 소설로 변용되었다는 것은 우리 나라 동물우화소설의 한 큰 특징이다.

 문예학적인 장르론에 입각해 볼 때 서사문학은 대형서사문학과 단형서사문학으로 대별된다.

 H. 자이들러의 분류법 내지 장르 체계에 따르면 우화는 일차적 종배열(種排列)에 있어 자유형태(단순형태)의 서사문학 장르로서 '노벨레'나 '로망'과는 다른 갈래이다.

 이같은 단순형태의 우화가 단편소설 내지 장편소설로까지 발전한 것은 장르가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르란 무엇보다도 어떤 시대, 어떤 지역의 문화적 전통에 뿌리박고 있는 문학 형식이므로 생성, 발전, 쇠퇴라는 변화의 운명을 가진다. 

 장르의 변화는 장르의 양식적 변형, 장르 순위의 이동, 장르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 제시 형식의 변화, 외래모델 등에 의하여 새로운 장르가 발생하거나 변화가 일어난다. 

 동물우화의 동물우화소설화는 이미 존재한 장르 종의 변형 및 조합으로 발생한 장르 순위의 이동에 따른 변화이며 이러한 동물우화의 소설적 진전은 설화의 소설화 과정의 일환으로 일어난다. 

 서사문학이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설화와 소설은 설화가 소설화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기반이다. 서사문학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 형태인 설화는 그 자체로써 전승되고 성장하는 반면 새로운 형태인 소설로 이행되었다.

 설화에서 소설로의 이행은 구비문학에서 기록문학, 공동체의 문학에서 개인문학으로의 이행이며 설화가 소설화하면서 이루어진 변화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소설에 크게 접근된 설화를 문헌설화인 <삼국유사>, <삼국사기>, <수이전>의 일문(逸文)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도미', '온달', '구토설화', '최치원전' 등이 후대 소설의 근원설화임을 밝힌 성과를 남겼고, <춘향전>의 근원설화를 다각도로 수집한 김동욱은 '열녀설화', '암행어사설화', 伸寃說話', '艶情설화'를 근간으로 '信物교환설화', '夢祥설화', '手記설화', '漢詩설화'가 삽입되어 <춘향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심청전>은 '효행설화'를 주축으로 하여 '人身供犧설화'가 중요 모티브를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태몽설화', '용궁설화', '맹인得明설화', '환생설화' 등의 잡다한 설화가 얽혀 이루어진 것이고, <흥부전>은 몽고의 '박타는 처녀', 일본의 '報恩朴" 등 동양 일대에 널리 보급되었던 설화에 우리 것다운 풍자와 골계를 가미하여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소설과 근원설화와의 관계는 한 편의 소설에 여러 개의 설화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고 지극히 단편적인 삽화로만 끝나는 것도 있어서 반드시 어떤 특정 설화가 그대로 소설로 발전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민간에서 구비 전승되어 오던 설화가 문헌에 정착되기도 하고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는 소설적 흥미의 확대에 따라 어떤 재사(才士)의 손에 의해 소설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하고 다각도로 윤색되어 장편의 이야기로 다듬어졌으니 설화의 소설화는 서사문학 발달 과정의 당연한 추세였다고 볼 수 있다.

 설화의 한 유형인 우화의 소설적 변용(變容)은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생경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우화는 주제적 소재적 비난을 서사적 또는 극적 행동경과로 계획된 교훈적 장르가 절충된 짧은 단순형태의 서사문학이고, 그러한 속성을 소설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동물의 행태에 가탁하여 인간생활을 기지로써 풍자하고, 윤리적 교훈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설화의 소설화라는 의미 이상의 뜻을 가진다.

 전승되던 동물우화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설적 효과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동물우화소설은 <토끼전>이다. 

 한국의 동물우화로 수용된 <삼국사기> 속의 '구토설화'는 

 "동해 용녀가 병을 얻어 토끼의 간을 얻고자 하였는데 용왕에게 자청하고 나선 거북이 육지에 나와 토끼를 유인하여 등에 업고 가다가 도중에서 사실을 말하였더니 토끼가 간을 바위 밑에 두고 왔으니 가지고 가자고 하여 다시 육지로 돌아왔는데, 육지에 이른 토끼는 풀숲으로 달아나며 거북이를 놀려댔다."는 것이다.

 이것을  소설 <토끼전>은 이러한 동물우화의 요소를 다치지 않고 훌륭하게 소설로 변용하고 있는 것이다.

 동해용녀가 병을 얻었다는 상황에 착안한 소설적 전개는 '용궁설화'까지 가미시켜 용궁이라는 가상(假想) 왕국을 설정하고, 다시 용왕은 문무백관을 거느린 근엄한 현실 사회의 군주임을 표방한다. 군왕의 존엄성마저 상실된 현실인식은 왕의 병이 주색(酒色)에 기인한 것으로 결구하고 있으며 의원(醫員)의 병처방이 장황하게 설명된다.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과정도, 대뜸 자라가 육지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사전에 어전회의가 열리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공적을 쌓기 위한 경쟁심까지 덧보태진다. 토끼를 확인할 자료로 화공(畵工)을 불러 토끼의 화상이 그려지고 만조백관과 처자와의 이별이 있다.

 육지에 오른 자라의 산천경개를 구경하는 가사조(歌辭調)의 사설이 엮어지며 자라와 토끼의 대담(對談)이 흥미진진하게 엮어진다.

 대담 속에 경솔한 인간의 오만이 있고, 상대편의 자존심을 내리깎는 해학적 언사(言辭)가 있는가 하면 존장(尊長)의 겨룸이 있고, 토끼와 자라의 육지와 수부(水府)에서 살아가는 재미가 그려진다.

 "海中有一島 淸泉白石 茂林佳果 寒暑不能到 鳶준不能侵 爾若得至 可以安居無患'이라는 자라의 말 한마디에 덥석 자라의 등에 업혀가는 '구토설화'에 비하면 <토끼전>에서 자라가 토끼를 유인하는 과정은 용의주도하기 이를 데 없다. 別乾坤의 세계가 자라의 입을 빌려 묘사되고 육지에서 살아가는 토끼의 현실적 아픔을 찔러 기를 죽여놓아야 했던 것이다.

 토끼의 허욕을 충고하는 너구리의 등장도 소설적 전개과정에서 삽입된 부분이다. 토끼를 업은 자라가 수중(水中) 이삼리허(二三里許)에서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용궁에 이르러 문무백관이 도열한 어전에서 용왕을 속이는 것으로 결구함으로써 소설적 통쾌감을 살렸다. 

 육지에 다시 돌아온 자라와 토끼의 후일담도 소설의식의 발로에서 기인한 것이다.

 불전(佛典)에 근원을 둔 구토설화의 동물우화는 인도에도 중국에도 일본에도 양태(樣態)를 바꾸어 존재하고 있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나 <토끼전>과 같이 사회현실 및 인간본성과 결부시켜 훌륭한 소설로 작품화한 경우는 없다. 

 불전(佛典)에 모태를 둔 "爭年說話'는 <두껍전>류의 동물우화소설로 변용되었다. 재담 형식을 빌려 서로가 연장자임을 내세우는 이 유형의 우화는 단순하기 그지 없지만 소설적 전개에 있어서는 나이 자랑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잔치를 설정하여 많은 짐승들이 초대되고, 놀이의 과정에서 1대1 혹은 수종의 동물들이 연장자임을 다투거나 자기자랑의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형식으로 결구하여 거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입을 빌려 당시 서민적 지식인의 식견이나 인간적 약점을 표출하는 유형의 소설을 창출하고 있다.

 '뻐꾸기와 따오기의 목청자랑'으로 대표되는 소송설화는 <황새결송>, <까치전>, <蛙蛇獄案>, <鵲烏相訟>, <서동지전>, <서대주전>, <鼠獄記> 등 송사가 사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동물우화소설로 변용(變用)된다.

 소송사건을 주제로 한 동물우화소설 중 서류(鼠類)를 의인화한 작품은 별도로 '쥐설화'와도 관련지워 생각할 수 있으나 쥐를 의인화했다는 점에서만 같을 뿐 주제가 달라 직접적인 관련점을 찾을 수 없다. 다종다양한 '鼠類說話'에 송사 모티브가 가미되어 서류의 동물우화소설로 변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동물형태유래담과 관련이 되는 동물우화소설은 <메기장군전>이다. 동물의 형태유래담은 동물우화에서도, '목이 긴 황새이야기'가 나오고, 우리나라의 경우 '목이 짧아진 자라의 이야기', '참새와 파리 이야기' 등이 있다. <메기장군전>의 결말에서 가자미가 메기장군의 비위에 거슬리는 해몽을 했다가 이뺨 저뺨을 얻어 맞고 얼굴이 모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이와 같은 동물형태유래담이 동물우화소설의 한 형태로 발전한 예라 하겠다.

 동물우화나 동물우화소설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극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의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동물의 세계는 현실세계와 복합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독자와 작가의 묵게(默契) 속에 성립한다. 우화 속의 허구적 상황은 모순된 아이러니에 기초하고 있으며 비판의식이 작용한다. 등장하는 인물은 사회적 인간의 전형이며 비유적 표상은 작가의 정서 속에 수렴된 구체적 현실 사태에 대응관계를 맺고 있다.

 이같은 우화라는 서술 방식은 인생과 사회의 단면을 동물에 가탁하여 압축과 비유를 통해 극적으로 제시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실의 구체적 실상을 총체적으로 인식 반영하지 못한다.

 동물우화는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성을 가지고 유전(流轉)하고 있지만 동물우화를 소재로 하여 소설로 구성하고 있는 경우를 필자의 짧은 학문적 편력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예를 찾을 수가 없다.

 전래의 동물우화를 소설로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소설에서 가능했던 것은 부분의 독자성을 인정, 부분에 따라 또는 부분대로 창작하거나 개작하여 그것을 누적 삽입시키거나 흥미로운 가사체(歌辭體)의 사설을 부연시켰기 때문이다.

 <토끼전>의 경우만 하더라도 불전의 본생담 중 과거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동물우화만을 취하여 그것을 근간으로 전체적 구성에 손상이 없도록 다른 삽화들을 요소요소에 삽입하고 흥미진진한 사설을 늘어놓아 훌륭한 소설로 작품화하고 있다. 

 전래의 동물우화를 소설로 변용하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일조가 되었던 것은 동물우화라는 소재를 인간의 본성 문제에만 국한시켜서 해석했던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현실, 나아가서는 사회제도에까지 확대시켜 생각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동물의 외양이나 생활습성이 세세히 관찰되고, 그것을 인간사회의 한 단면에 결부시켜 의인화함으로써 다양한 인간사회의 현실문제를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우화는 동물의인(動物擬人)이라는 표현수법을 활용, 일찍부터 동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관찰에 입각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반영했고, 보다 선명하게 동물과 인간심성을 통찰하고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교묘히 결합시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교훈과 흥미를 공유하는 예술상의 특색을 가지고 생동하는 인간사회의 모습과 인간행위를 표현하고 있었다.

 구성이 단순하면서도 표현이 집중되어 조리가 정연한 가운데 변화가 다단하고 등장인물의 생활과 특징에 의거, 이치에 맞게 주제, 사상을 표현함으로써 감동을 주고 강한 인상을 남기는 문학적 매력을 지니고 있는 동물우화는, 동물의 외형적 습성에 착안하여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상상적 허구를 가미하여 이를 인간의 정황과 결부시킴으로써 강한 교훈성과 풍자성을 도출할 수 있었기에 허구성을 본질로 하는 소설에 활용될 수 있었다.    

             (金在煥 著 <韓國動物寓話小說硏究>PP 89~96. 발췌 수록의 편의에서 脚註는 생략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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