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새벽/한흑구

如岡園 2017. 6. 1. 12:20

  어둡고, 춥고, 침침한 밤이 다하는 것을 새벽이라고 부른다. 훠언히 빛나는 새벽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캄캄한 주검 위에 새로운 생명의 빛을 가져오는 것이 새벽이다. 빛이 없고 따뜻함이 없었다면, 지상에 생물이 창조되었을 까닭도 없고, 생물이 생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밝고 따뜻한 빛의 세계를 가져오는 새벽을 모든 생물은 손꼽아 기다리고, 또한 즐겁게 맞이하는 것이다.


 괴로운 일이 생겨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어서 어둡고 답답한 밤이 지나서 새벽의 동이 트기를 안타까이 기다리기도 한다.

 혹은, 중한 병에 걸려서 온 밤을 정신을 잃고 안타까이 신음하던 사람이 동이 트는 새벽이 되어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쉬면서 고요히 잠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새벽이 가져오는 새로운 빛은 모든 생물에게 기운을 가져오고, 생명과 새로운 힘을 가져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새벽은 또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기도 하다. 맑은 하늘 위에 해가 얼굴을 나타내기 전에 연못가로 거닐어 보면, 우리는 널따란 연 이파리 가운데서 한 알의 진주와 같은 새뽀얀 물방울이 괴어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긴 밤 사이에 안개와 함께 떨어진 이슬방울이 고요히 놓여 있는 것이다.

 그 새맑고, 푸른 연잎을 꿰뚫어 비치는 푸른 진주와 같은 이슬방울은 새벽의 따뜻함과 함께 새맑고 아름답다.


 해가 어느덧 얼굴을 쳐들어 붉은 빛을 뿌려 놓으면, 그 진주의 색은 무지개 같은 아롱진 빛에 잠긴다.

 어린애가 아닌 나도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싶고, 입 속에 넣어 굴려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새벽이 다가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닭의 울음이다.

 닭은 한없이 맑고 고요한 공기를 울리면서 자주 그 울음을 높인다. 닭은 한 마리의 새이면서도, 다른 새들과는 달리, 새벽을 고해 주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멀리 교회당에서 들려오는, 쇠를 때리는 강한 종소리에 어울리어, 낮고 또한 높았다 낮아지는 외마디와 굵은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드러누워 있노라면, 모든 생물의 사명이 무엇인가, 또는 왜 생존하고 있는가 하는 무거운 생각에 잠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아침마다 울어 대는 닭의 울음 속에서도 세상의 숨결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이러한 야릇한 생각에 잠겨서 "너 자신을 알라"고 하던 先哲의 가르치심을 또 한 번 사색해 보는 것도 새벽이 가져오는 생명의 기운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작 동이 트는 새벽이 되어, 바다 위에 환한 등불 같이 반짝이던 샛별이 그의 빛을 잃고 자취를 감추게 되면, 석류나무 위에선 참새들이 재잘거리고, 빨랫줄 위에선 제비들이 재롱을 부리면서 노래를 부른다.

 새들도 새벽을 즐기고 새벽을 노래하는 것이 모두 새벽이 가져다 주는 새맑은 생명의 기운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새벽의 바다를 본 사람은 그 아름다운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달걀 노른자같이 새맑고 고운 해의 얼굴을 맞아서, 형용할 수도 없는 광경을 펼쳐 놓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 위에 구름들이 뭉게뭉게 떠 있을 때에는, 그 구름들이 사자나 코끼리 같은 온갖  동물의 형상같이 되기도 하고,, 지상에선 구경할 수도 없는 화려한 宮城이나 聖市와 같이 되기도 한다. 

 이것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또 다른 형상들로 변하여 간다.

 또 그뿐 아니라, 이 움직이고 있는 하나의 진기한 세계는 태양이 움직이어 오름에 따라서 그 색을 회색으로, 분홍으로, 자줏빛으로, 혹은 금색으로 온갖 색깔로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신기한 형상을 위로 두고 있는 바다의 넓은 가슴팍은, 진기한 무늬를 하고 있는 비단폭같이 너울거리고 있다.


          햇볕들은

          춤을 추는 물결들과

          입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시는 동이 트는 새벽의 즐거운 생명을 노래한 것이다.


 새벽은 이렇게 아름답고, 줄기찬 생명을 가져오는 시간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새벽이 오기 전이 제일 아름답다"고 말한 선철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어둡고 답답한 밤이 어서 다해지기를 기다리는 밤도  적지 않다.

                                  (1958. 韓黑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