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경멸하지 말라. 이것도 자연이 원하는 것의 하나이므로 환영하라.
예컨대 청년이 되고 나이를 먹고 성장하고 성숙되고 이빨이나 수염이나 백발이 생기고 수태하고 분만하는 등 그 밖에 인생의 각 단계가 가져다 주는 자연의 작용도 역시 소멸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잘 간파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태도는 죽음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비통해 하거나 모멸감(侮蔑感)을 갖지도 않으며, 자연 현상의 하나로 생각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당신이 지금 아내의 태내에서 아기가 태어날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당신의 영혼이 이 육체라는 껍질에서 벗어나는 때를 기다릴 일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당신을 대범해질 수 있게 하고 당신의 마음을 달래 주는 일반적인 처세훈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곧 떠나게 될 이 세상이 어떤 것이며, 당신의 영혼이 곧 관계를 갖지 않게 될 사람들의 성질이 어떤 것인가를 바라보는 것이리라.
당신은 물론 그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과 신념이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곧 해방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 인생에 애착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와 신념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다.
그러나 당신은 사람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될 것이다.
"오, 죽음이여 빨리 오라. 나까지도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이라고.
공통점을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자기와 동류(同類)가 되는 것을 요구한다.
흙에서 나온 것은 흙을 그리워하고, 액체는 모두 함께 흘러가며 기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분리시키려면 사이를 차단하는 장애물을 놓아 두거나 폭력을 사용해야 할 정도다.
불은 그 원소의 성질 때문에 위로 치솟게 되고 지상의 모든 불과 함께 타오르기 쉬우며, 모든 물질은 조금이라도 건조해 있으면 쉽게 타 버린다. 그것은 연소를 방해하는 요소가 조금밖에 섞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통된 이성적인 본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또는 그 이상으로 동류를 요구한다.
이것은 다른 것에 비해 뛰어나므로 동류와 쉽게 어울리고 융합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성을 갖지 못한 동물인 벌떼나 가축의 무리나 새끼를 기르는 어미새의 무리 가운데서도 사랑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동물의 사회적인 본능은 식물이나 돌이나 목재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성적 동물[인간]에게는 정치적 공동체와 우정과 가정 집회 등이 있고, 전시에는 동맹과 휴전이 있다.
그러나 더욱 탁월한 것들, 예컨대 별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일종의 통일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보다 뛰어날수록 설사 분리되어 있더라도 그 사이에 공감적(共感的)인 유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라! 오직 이성적인 동물만이 이런 상호간의 친화성(親和性)과 호응을 망각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서만 동류의 합류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결합을 기피하더라도 그것은 허사다. 그들은 결합하려는 본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잘 관찰해 보면 당신도 이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완전히 고립된 인간은 없는 것이다. 흙에서 나온 것 중에 흙과 인연을 끊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은 인간을 찾아내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인간도 신도 우주도 각각 고유한 계절에 열매를 맺는다. 흔히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포도나무나 그밖에 이와 비슷한 식물에게만 적용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무방하다.
이성(理性)은 만유(萬有)와 자기 자신을 위해 열매를 맺는데 이성 자체와 동일한 열매를 맺는다.
'불후의 명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쿠스아울레리우스의 명상록(죽음에 대하여) (0) | 2019.11.07 |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죽음에 대하여 (0) | 2019.08.23 |
학창 시절의 친구들/안톤 슈낙 (0) | 2017.06.18 |
새벽/한흑구 (0) | 2017.06.01 |
연륜/이육사 (0) | 2016.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