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陰曆)의 時食
계절의 미각을 신선케 하기 위하여 4월의 시식으로 화전(花煎), 어채(魚菜), 미나리강회(芹膾), 파강회, 증병(蒸餠) 등이 있다.
화전은 찹쌀가루에 장미꽃을 섞어 반죽해서 원형 또는 반원형으로 만들어 기름에 튀긴다. 기름에 튀기기 때문에 유전(油煎)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채는 생선을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썰어 파,석이(石耳)버섯, 전복, 달걀을 부쳐 국화잎을 가늘게 썰어 버무려서 기름과 초를 쳐서 시원하게 먹는다.
파강회는 파를 삶아 생육(生肉)을 속에 넣고 감아서 초간장에 찍어 먹으며, 미나리강회는 미나리를 데쳐서 속에 생육을 넣고 파강회처럼 만들어 먹는다. 이 때에 쇠고기의 경우는 생육을 쓰지만 돼지고기인 때에는 삶은 것을 사용한다. 이 시식들은 가도(家道)와 솜씨에 따라 양념의 변화가 있다.
# 연등놀이
四월 八일은 俗傳에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라고 하여 욕불일(浴佛日)이라 부르기도 하고, 민간에서는 흔히 초파일이라고 한다. 초파일엔 사찰을 찾아가 재(齋)를 올리고 연등(燃燈)하는 풍속이 있다.
문헌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는 정월 보름에 간등(看燈)을 한 사실이 있고, 고려 시대에도 이를 계승하여 오다가 8대 현종 때에 이르러 2월 보름에 연등회를 거행하게 되고, 이후 이것이 관례가 되었다. 중간에 와서 사정에 의하여 상원일로 환원된 일도 이었으나 고려 말엽까지 2월 연등이 원칙이었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그 초기에 왕가에서 연등회를 베푼 사례가 있기는 하였으나 고려 시대처럼 공의(公儀)로서의 연등회는 하지 않게 되었고, 다만 민간의 세시풍속으로서 전승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불탄일을 四월八일이라 하여 이날에 연등놀이를 거행하고 있는 바, 이와같은 四월 연등은 고려 중엽인 고종 때에 이미 있었고 이때부터 고려 말엽까지는 한 해에 두 번 연등회가 거행된 셈이다. 그 후 민간에 전승된 것은 四월 연등 뿐이고 이를 보통 파일놀이라고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궁중에서 公儀로서 행한 연등회는 그 규모가 크고 호화로왔다. 한 예를 들면 문종 21년에는 흥왕사 낙성을 계기로 정월 18일에 대대적인 연등회를 개설하였는데 이때의 등화의 성대함을 '燈山火樹 光照如晝'라고 형용하였고, 같은 문종 27년의 2월 망일 연등회에는 등불 수가 3 만 개였으며 공민왕때에도 신돈은 자기 집에 무려 백 만을 헤아릴 만큼 많은 등을 가설하여 왕을 맞이하였던 사실이 <고려사>에 전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있어서도 四월八일 불탄일은 역시 세시 명절의 하나로서 제법 다채로운 연등행사가 거행되었다. <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종 12년의 상원 연등 시에는 龍鳳虎豹의 형상으로 등을 만들어서 장식하였고, 성종 6년 四월 연등 시에는 집집마다 등을 수없이 달았는데 鳥獸魚龍의 온갖 모양의 등들이 사치와 절묘함을 서로 자랑하였다고 한다. <京都雜志>, <洌陽歲時記>, <東國歲時記> 등 조선왕조 후기의 기록에 의하면, 파일에 세우는 등간(燈竿)은 자녀의 수대로 하고 남보다 크고 높기를 바라고 자랑으로 알았으며 등간 위에는 꿩 깃을 끼우고 울긋불긋한 천을 매달거나 둥근 모양의 깃을 달기도 하여 이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눈을 어지럽게 하였다고 한다. 등의 종류는 매우 많아서 마늘, 연꽃, 수박 같은 菜果의 모양을 따른 등, 학, 잉어, 자라, 거북과 같은 동물형상의 등, 병, 항아리, 배, 북 같은 기물 모양의 등, 七星, 壽자와 같은 글자 등등이 있었다.
이와같이 조선왕조 시대의 四월 팔일 놀이도 호화롭고 대채로왔음을 알 수 있으나 왕조의 몰락과 더불어 차차 옛날의 盛儀는 사라져갔다. 특히 개화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일반적인 민중놀이에서 벗어나 주로 사원 중심의 행사로만 남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려의 고도인 개성에서는 이 유풍이 남아 있어서 전국에서 가장 성대한 연등놀이가 거행되었었다.
연등놀이에 곁들여 낙화희(落火戱)가 있는데, 낙화희는 오늘의 불꽃놀이와 비슷한 것으로서 등간(燈竿)에 매달린 등 줄의 사이사이에, 숯과 소금과 사기파편을 섞어넣어 만든 종이주머니를 매달고 여기에 불을 붙이면 그것이 터뜨려지면서 불꽃이 이는데 그 찬란한 불꽃을 즐기는 것이었다.
오늘날 역시 불교도들이 四월八일에 연등놀이를 하지만 제등행렬을 하는 정도이며 낙화희도 볼 수 없게 되었다.
# 四月令 농가월령가
사월이라 맹하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 비온 끝에 볕이 나니 일기도 청화하다 /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로 울고 / 보리 이삭 패어나니 꾀꼬리 소리 난다 / 전사도 한창이요 잠전도 방장이라 /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 적막한 대 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 면화를 많이 갈소 방적의 근본이라 / 수수 동부 녹두 참깨 부룩을 적게 하소 / 갈 꺾어 거름 할 제 풀 베어 섞어 하소 / 무논을 써을이고 이른 모 내어 보세 / 전량이 부족하니 환자 타 보태리라 / 한잠자고 이는 누에 하루도 열두 밥을 / 밤낮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 뽕 따는 아이들아 훗그루 보아하여 / 고목은 가지 찍고 햇잎은 제쳐 따소 /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문 없을소냐 / 이 때를 승시하여 나 할 일 생각하소 / 도랑쳐 물길 내고 우루처 개와하여 / 음우를 방비하면 훗 근심 더 없나니 / 봄 나이 필무명을 이때에 마전하고 / 베 모시 형세대로 여름 옷 지어두소 / 벌통에 새끼나니 새 통에 받으리라 / 천만이 일심하여 봉왕을 옹위하니 / 꿀 먹기도 하려니와 군자분의 깨닫도다 / 초파일 현등함은 산촌에 불긴하니 / 느티떡 콩찐이는 제때의 별미로다 / 앞 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보세 / 해 길고 잔풍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겠다 /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 수기를 둘러치고 은린 옥척 후려내어 / 반석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 팔진미 오후청을 이 맛과 바꿀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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