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행주치마/강강수월래/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술잔 깨뜨린 건 파맹의 뜻

如岡園 2008. 5. 26. 22:41

          # 행주치마

 여자들이 일할 때 막 입는 튼튼한 베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하는데 여기엔 이런 연유가 있다.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光州牧使)로서 전공을 세운 권율 장군은, 이어 전라감사로 임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북상해 왔는데 때마침 왜군은 명나라 대군에게 밀려 후퇴하여 서울로 집결하던 때였다.

 권율 장군이 서울의 서쪽 강가 행주산성에 웅거하여 왜놈들의 돌아오는 목을 노리니 그들에게는 여간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래 대군을 휘동하여 여러 날 이를 포위 공격하였었는데 성 안에서는 적은 수의 군대로 잘 지켜 싸워 왜군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전사자를 남기고 포위를 풀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임진왜란 중의 유명한 행주대첩인데 이 때 성중에서는 적을 막아내는데 돌팔매까지를 동원했고 그 돌을 나르기 위해서는 부녀자들까지도 모두 합심하여 앞치마에다 돌을 담아 날라서 이를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행주(幸州)의 지명을 따서 부녀자의 앞치마를 행주치마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임란 전에 이미 부엌을 '행자'라 기록한 것이 있으니 '부엌치마'란 뜻이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난을 치른 뒤에는 공있는 영웅을 만들고 적개심이 발로하여 이런 유의 설화는 생겨나게 마련이니 어원의 해석을 꼭히 어학적으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앞의 민간설화에 근거하여도 큰 잘못은 없으리라고 본다.

 

          # 강강수월래

 이순신 장군에 결부되어 이런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중의 어느 전투에서 왜적을 짓두들겨 쫓았는데 장병은 모두가 여러 날 전투에서 시달려 맥이 풀리도록 피로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배마다 몇 통씩의 술을 배급해 주었다.

 "오늘 저녁엘랑 실컷들 마시고 즐겨라. 내가 노래를 지어서 가르쳐 줄 것이니 밤새 칼을 빼어 뱃전을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부르고 놀면 재미날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이기고 난 뒤일수록 긴장을 못풀게 하던 그였는데 뜻밖에 너그러운 처분에 모두들 기뻐 어쩔줄을 몰라했다. - 이 때 지어준 노래가 오늘날 전라도 지방에서 널리 부르는 '강강수월래'라는 것이다. -  번갈아 멕이며 후렴을 되풀이 하는 이 노래는 흥겹게 밤을 새우기에 족하였다.

 낮 전투에 참패를 본 왜적들은 무슨 수로라도 보복을 하려는데 때마침 달은 밝고 안개는 자욱한지라 하늘이 도우셨다고 야습을 하기로 하였다. 알몸둥이에 칼만을 지니고 헤엄쳐 들어가 곤히 잠든 배를 습격하자는 것이다.

 일당 백의 용사들만으로 된 이 결사대는 헤엄쳐 들어오며 씽긋이들 웃었을 것이다. '저렇게 술들을 처먹고 난장을 부리니 수라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라고.

 그러나 놈들은 하나도 배 위에 올라와 보지 못하였다. 새벽녘에야 놀이를 끝내고 해가 높이 뜨도록 자고 일어난 배 안의 군사들은 잘려진 손가락이며 손목들과 주위에 떠 다니는 많은 왜적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란 <강한 오랑캐가 물을 넘어서 온다>는 뜻으로 풀이가 되나, 물론 이 노래도 '강강'은 '캉캉'하고 사물을  두드리는 소리의 의성(擬聲)으로, '수월래'는 '술래'를 길게 발음한 '수울래'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무튼 국가 수호의 영웅을 두고 이런 유의 전설이 엮어졌다는 것은 여간 대견한 일이 아니다.

 

          #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칼에 새겨 지녔던 문구이다. '바다를 두고 맹세하면 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을 향해 맹세할 때 풀과 나무도 알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 충무공의 명성에 관하여는 세계적으로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이런 일화가 전한다.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노일전쟁을 벌였을 때의 일이다. 연합함대를 이끌고 나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전사에 없을 만큼 전멸시키고 이름을 떨친 도오꼬(東鄕平八郞) 대장이 개선했을 때 도꾜 제국호텔에서 조야를 망라하여 성대한 환영연이 벌어진 자리에서 유명한 외교관 고또(後藤新平)가 일장 연설을 하였다.

 "이번의 도오꼬 대장의 전승이야말로 멀리는 영국의 넬슨에 해당되고 가까이는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 비길만한 대 공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다음 본인의 답변 차례가 되자 본시 말이 적은 도오꼬 대장은 엉뚱하게도 이렇게 실마리를 꺼냈다.

 "이번 이 사람의 한 일을 넬슨에 비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럴만 하다. 다만 조선의 이순신에 비한다는 것은 천만부당한 소리다. 영국은 거국일치가 되어 싸우는 해군의 한 정점으로 누구나가 한 사람 총책임자로 앉아야 할 그런 태세였고, 일본 역시 군신상하가 일치가 되어 나라는 사람을 내세웠을 뿐이니, 이것은 국가 전체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싸운 것이요 두 나라의 형편은 매우 비슷한 바가 있다. 그러나 조선의 이순신은 그의 임금이 그를 믿었던가? 오직 하나만의 힘으로 정성으로 나라를 버티어 싸웠던 것이니, 그는 신이요 사람은 아니다. 이 사람은 도저히 그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관점이 뚜렷한 도오꼬의 이같은 겸손한 발언은 오히려 그의 명성을 더 높이는 결과가 되었더라는 것이다.

 

          # 술잔 깨뜨린 건 파맹(破盟)의 뜻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금산(錦山)에서 수장 이하 전원이 고스란히 순국한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의 주인공 중봉 조헌(重峰 趙憲)에 관해 이런 얘기가 있다.

 오랜 전란 끝에 일본을 평정한 평수길(平秀吉)이가 국교를 청해 오자 우선 그 본 뜻이나 알아보자 하여 사신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그 사신을 대하는 태도가 수수께끼에 차 있다.

 50일 만에서야 우리 사신을 대했는데 술잔으로 술을 권하고는 문득 깨뜨리고 새 잔을 썼으며, 어린 것을 안고 나와 서서 다니며 응대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들은 조정 안에서는 의논이 분분했는데, 중봉은 이렇게 해석하였다.

 "술잔을 깨쳤다는 건 여태까지의 맹약을 깨뜨린다는 것이요, 어린 것을 안고 나온 것은 우리는 너희를 어린애 같이 본다 하는 뜻이다" 라고, 일본 사신을 버릴 것을 상소하니 조정에서는 일부 찬동도 있으나 실성한 사람으로들 돌린다.

 그러나 그는 집안 식구와 제자들을 총독하여 전란에 대비하였다. 본시 두드러진 벼슬도 한 적이 없는 분이건만 의병을 일으켜 끝까지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뒤에 예조판서를 증직하고 문묘에 배향이 되었으나 그의 뜻을 생전에 펴 주지 못한 이상 모두가 헛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