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如岡園 2008. 11. 4. 11:13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라. "인간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나는 일어나야 한다." 나는 역할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는데 불평 불만을 터뜨린단 말인가? 아니면 나라는 인간은 이불 속에서 몸을 따뜻이 감싸기 위해서 태어났단 말인가?  "그렇지만 이편이 기분 좋은 걸."  그렇다면 당신은 기분만 좋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는가? 대체 당신은 사물을 수동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 아니면 행동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조그마한 초목이나 새나 개미나 거미나 꿀벌까지도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각각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당신은 인간의 임무를 다하기를 싫어하는가? 당신에게 적합한 일을 하기 위해 나서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휴식도 취해야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은 거기에도 한계를 정해 놓았다.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는 일에도 한계를 정해 놓았다. 그런데 당신은 그 한계를 넘고 정도를 지나쳤다. 먹고 마시는 경우와는 달라서 행동에 있어서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있다.

 결국 당신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반드시 자신의 본질과 그 의지를 존중했을 것이다. 자기의 기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목욕이나 식사도 잊고 지치도록 일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녹로공이 녹로 기술을, 무용가가 무용을, 수전노가 돈을, 허세가가 하찮은 명성을 존중하는 만큼도 자기의 본질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은 자기 일에 열중하게 되면 침식을 잊어버리고 몰두한다. 당신에게는 사회 공익에 유용한 활동은 가치 없는 것으로 보여 열심히 힘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가?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생각이나 귀찮은 생각을 몰아내고, 곧 온전한 평안을 누린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자연에 따르는 말과 행동이 당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라. 그 결과로 일어나는 남의 비평이나 손가락질 때문에 곁길로 접어들지 말라. 만일 말이나 행동이 옳다고 생각되면, 그것이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타인은 각각 자기 자신의 지도 원리를 갖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욕구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런 일에는 곁눈질도 하지 말고 똑바로 당신의 길을 가면서 자기 자신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에 따르라. 이 두 가지 길은 곧 하나다.

 

 나는 자연에 따르는 길을 가다가, 마침내 때가 되면 쓰러져 휴식에 들어가려고 한다. 날마다 숨쉬던 공기 속에 마지막 숨결을 토해 내고, 아버지가 씨를 제공하고, 어머니가 피를 제공하고, 유모가 젖을 제공한 땅 위에 쓰러질 것이다. 그 땅 위에서 나는 오랫동안 날마다 음식을 공급받아 왔다. 그리고 나는 그 땅 위를 걸으면서 여러 가지로 땅을 이용해 왔다. 그런 나를 땅은 받아 주었다.

 

 당신의 머리는 남들이 감탄할 만큼은 예리하지 못하다. 좋다. 그러나 당신은 "나는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라고 말할 수 없는 다른 장점을 많이 갖고 있다. 그것을 발휘하라. 그것은 당신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예를 들면 성실, 근엄, 인내, 절제, 만족, 선의, 친절, 자유, 순박, 정직, 고매한 정신 등.

 당신은 지금 당장 많은 덕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가? 당신은 이런 덕에 대해서 본래 그런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거나, 그런 덕을 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발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 저속하게 살아가려고 하는가? 아니면 당신은 그런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투덜거리거나, 인색하게 굴거나, 아첨을 하거나, 자신의 연약한 육신을 탓하거나, 인기를 탐내거나, 허풍을 떨면서 불안하게 살아가려고 하는가?

 아니다, 신들에게 맹세코 그래서는 안된다. 벌써 옛날에 당신은 이런 악벽(惡癖)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무딘 이해력을 탓하기만 했더라도 자신을 개선하는 데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러한 능력을 무시하고 오히려 자신의 우매함을 즐기고 있다.

 

 아테네 사람들의 기도. "비를, 비를 내려 주소서! 자비로우신 제우스여, 아테네 사람들의 들과 밭 위에 비를 내려 주소서!" 전혀 기도를 하지 말거나, 아니면 이렇게 단순하고 솔직하게 기도하라.

 

 "지금 나의 영혼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매사에 이 물음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고 다음과 같이 자기 자신을 살펴보라.

 지배적인 원리라 불리는 내 내면의 존재는 나와 지금 어떤 관계에 있는가? 어린이의 영혼인가, 아니면 청년, 연약한 여자, 폭군, 가축, 혹은 야수의 영혼인가?

 

 나는 형상인(形相因)과 물질로 되어 있다. 그 어느 것도 소멸되어 무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무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나의 모든 부분은 각각 변화하여 우주의 어떤 부분으로 분배되고, 다음에 그것이 다시 우주의 다른 부분으로 변화되어 무한히 계속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이와 같은 변화에 의한 것이며 나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출생은 무한히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우주가 일정한 주기를 갖고 순환된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한 말은 사실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소임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을 인간의 본분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인간에게 요구되어 있지 않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본성은 이것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 본성의 완성도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목표는 그런 것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 목표를 완성하는 것 즉 선도 그 속에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면, 이를 경멸하거나 이에 반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불필요하게 여기는 것도 별로 칭찬할 일이 못 될 것이다. 또한 이런 것들이 선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치 않으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것들이나 이와 비슷한 것들을 제거해 버리면 제거해 버릴수록, 혹은 이런 것들 중의 어떤 것이 없을 때 잘 견디어 내면 견디어 낼수록 그는 훌륭한 사람이다.

 

 당신의 정신은 당신의 사상과 보조를 같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사상에 물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상에 당신의 영혼이 물들게 하라. 예를 들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서는 바르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궁전에서 살 경우도 있으므로 그곳에서도 바르게 살아야 한다. 또한 모든 사물은 그것이 만들어진 목적에 이끌리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사물이 이끌리는 것 속에 그 목적이 있고 목적이 있는 곳에 각각의 이익과 선이 있다.

 그런데 이성적인 동물에게 있어서 선은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도록 태어났다는 것은 훨씬 앞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약자는 강자를 위해 존재하고 강자는 서로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생명이 있는 것 중에서도 이성을 가진 자가 가장 우월하다.

 

 사물 자체는 우리의 영혼과 직접 접촉하는 일이 없다. 또한 영혼에 접근할 수도 없고 그 방향을 바꾸거나 움직이게 할 수도 없다. 오직 영혼만이 자기 자신의 방향을 바꾸고 자신을 움직이며, 자신의 판단에 따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기에게 합당하게 처리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우리와 가장 관계가 깊은 존재다. 우리가 인간에게 친절을 베풀고 또 참고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는 우리의 고유한 활동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태양이나 바람, 들짐승만도 못할 만큼 나와는 관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인간에 의해 나의 활동은 어느 정도 속박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자발성과 의도는 속박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제약을 받아도 활동할 수 있고, 또 장애물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들 자신은 그 활동에 방해가 되는 것을 물리치고 그것을 목적 달성에 유용한 것으로 바꿔버린다. 그리하여 활동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 오히려 활동을 돕게 되고, 길을 가로막던 것이 오히려 길을 평탄하게 한다.

 

 존재하는 것과 생성되는 것이 얼마나 빨리 스쳐 지나가다가 사라져버리는가를 가끔 생각해 보라.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같아서 그 활동은 끊임없이 변하고, 여러가지 원인은 무한한 변화를 일으키므로 정지하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의 바로 곁에는 과거의 무한과 미래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속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간다. 이런 것들 속에서 의기양양해 한다든지 비참해 한다든지 또는 오랫동안 시달림을 받는 자처럼 불평을 터뜨린다든지 하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가.

 

 우주의 실체를 생각하라. 그 극히 작은 한 부분이 당신이다. 그리고 보편적인 시각을 생각하라. 극히 짧은 한 순간이 당신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운명에 의해 정해진 것들을 생각하라. 당신은 그 운명의 작은 부분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신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가? 부모 형제나 처자 그리고 친구와 친지 및 하인에 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가? 오늘날까지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말과 행동에서 결코 부정을 저지른 적이 없다." 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해 왔는지 반성해 보라.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을 경험하고 얼마나 많은 일을 참아 왔는지를 상기해 보라. 그리고 당신의 인생의 이야기가 이제 완전히 끝났고 당신의 봉사도 끝났다는 것을 상기하라. 또한 당신은 아름다운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고, 얼마나 많은 쾌락과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남들이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얼마나 무시하고, 불친절한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해 왔는가를 상기하라.

 

 어찌하여 재주도 지식도 없는 자의 영혼이 재주와 지식이 있는 자의 영혼을 들볶는가? 대체 재주와 기술이 있는 영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처음과 나중을 아는 영혼, 모든 존재에 침투하여 일정한 주기 아래 우주를 영원히 지배하는 이성을 아는 영혼이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당신은 재와 뼈로 변하여 단지 이름만 남거나 그 이름조차 잊혀질 것이다. 이름이란 단지 음향이나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에서 귀히 여기는 것은 모두가 공허하고 썩어버릴 것이며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물어뜯으며 장난하는 강아지나, 웃는가 했더니 금세 우는 짖꿎은 어린애와 같다. 신앙과 겸손과 정의와 진실은 '넓은 길이 뚫린 지상에서 올림푸스 산 저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당신을 이곳에 붙잡아 두고 있는가? 감정적인 것은 모두 변하기 쉽고 동요되기 쉬우며, 우리의 감각 기능도 둔해서 속기 쉽다. 영혼 자체도 피에서 나오는 증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인간들 사이에서는 명예를 얻어도 공허한 일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소멸이든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것이든 간에 종말을 평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가 돌아오기까지 어떻게 하면 좋은가? 신들을 공경하고 찬양하며 인간에게 적선을 하고 '참고 견디는 것' 이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의 연약한 육체와 입김이 닿는 곳에 있는 것은 당신의 것도 아니고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바른 길을 가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일생을 언제나 바르게 보낼 수 있다. 신과 인간의 영혼, 그리고 모든 이성적인 동물의 영혼에는 다음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즉 남에게 속박을 받지 않는 것, 올바른 태도와 행동에 깃들여 있는 선으로써 다른 모든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는 고대 로마 황제(재위161-180) 로 5현제 가운데 최후의 황제이다. 그는 대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다망한 공무에 시달리면서도 후기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언제나 깊은 철학적 사색을 생명으로 삼고 살았다. 그는 체계적인 철학 연구나 저술을 할 틈이 없었으나 수시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감회나 상념의 조각들을 단편적이나마 그리스 어로 기록해 두곤 하였다. 그것이 오늘날 <명상록> 또는 <자성록>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이 수기다. 그 <명상록>의 극히 일 부분을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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