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뻐꾸기 소리/문일평

如岡園 2010. 6. 23. 22:16

 여름 동산의 유적(幽寂)을 때때로 깨뜨리는 참새의 짹짹거리는 소리에 게으른 사람의 낮잠이 깨었다. 해는 바야흐로 낮이 되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인데 미풍이 이따금 불어오며 여름 날 치고선 기분이 매우 상쾌하였다.

 오래간만에 단장(短杖)을 끌고 나 혼자서 산보로 떠났다. 번잡한 인연(人煙)을 피하여 인왕산 기슭에 있는 송석원 동구(洞口)를 찾았다. 청산에 은둔하여 백운을 이열(怡悅)하던 당년 불우의 시인은 간 곳이 없고 다만 그 유허에 현대식 홍루벽각(紅樓碧閣)이 외연(巍然)히 동천(洞天)에 용출(聳出)함을 볼 뿐이다.

 동구(洞口)로 흐르는 군데군데 석간(石澗)에는 발벗은 여자들의 빨래하는 것도 일종 운치같이 보였었고 으슥한 수림 속에서 조그만 아해들이 초충(草蟲)을 잡는 것도 재미스러이 생각했다.

 좀 더 들어가니 골짜기는 차츰 유수(幽邃)해지고 인적은 점점 희소한데 안계(眼界)를 막는 것은 암석이 아니면 수림뿐이다.

 땀이 흐르고 숨이 차서 이른 바 수보일정(數步一停), 십보일게(十步一憩)하여 샘소리에 귀를 씻고 풀 향기에 코를 맑게 하니 계곡소요의 정취도 아주 버릴 것은 아니다.

 비비배배하는 이름 모르는 산새소리, 꾀꼴꾀꼴하는 꾀꼬리 소리, 이따금 화드덕 깩깩 활개를 치며 우는 꿩의 소리, 그리고 먼 골짜기로 날아 가며 우는 뻐꾸기 소리는 처량하게도 뻐꾹 뻐꾹 뻐뻐꾹 한다. 이들의 새소리를 들을 때 나는 이 인왕산 계곡의 유수함을 새삼스러이 느끼게 되었다. 뻐꾸기 소리는 언제 듣던지 쇄락(灑落)하지만 봄 산에서 보다도 여름 산에서 듣는 것이 더욱 흉금이 쇄락해진다.

 내가 일찍 송도중학에서 설경(舌耕)할 때 춘하(春夏)이면 흔히 만월대에 가서 산보할새 그 때 송악산 기슭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를 듣는 것으로써 일락(一樂)을 삼았었다. 내 고향 뒷산 송림 속엔 봄으로부터 여름까지는 산비둘기와 뻐꾸기가 가끔 울었었다. 고향 산의 뻐꾸기와 송악산의 뻐꾸기는 나에게 깊은 인상이 박혀 있어 언제나 뻐꾸기 소리를 듣게 될 때는 반드시 추억을 새롭게 하여 많은 감회를 자아낸다. 인왕산의 뻐꾸기 소리를 들을 때도 고향과 송악의 뻐꾸기를 연상하고 그것을 그리워하여 그런지는 모르나 어쨌든 인왕산의 뻐꾸기 소리가 각별히 처량하고 쇄락하게 들렸다. 마찬가지 새라도 야작(野雀)이나 수금(水禽)보다도 산조(山鳥)가 유취(幽趣)를 더 많이 띠었고 산조(山鳥) 중에도 뻐꾸기가 선미(禪味)를 더 많이 가졌다.           (文一平의 '永晝漫筆'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