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름
씨름은 남성을 위한 체육경기적 민중오락이며 가장 서민적인 놀이의 하나이다.
<동국세시기>의 씨름에 관한 기술에 의하면, 서울에서는 젊은이들이 남산의 왜성대(倭城臺)나 삼각산 아래 신무문(神武門) 뒤에 모여 성대히 씨름경기를 벌였으며, 비단 서울뿐 아니라 경향 각지에서도 거행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금산에서는 단오일에 청년들이 직지사에 모여서 씨름을 하는데, 이때 이 경기를 구경하기 위하여 수천 명이 모여들었고, 호서지방에서는 8월 16일(음력)에 씨름대회를 여는데 이때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즐겁게 논다는 것이다.
씨름을 하는 방식은 샅바를 매고 한쪽 무릎을 꿇어 서로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를 잡아쥔 다음, 동시에 일어나서 힘과 손발의 기술을 발휘하여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이기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쥐고 왼손으로는 상대방의 샅바(살태라고 하는 지방도 있다)를 잡는 것이 보통이며, 이것을 바른 씨름이라 하고 손 잡는 것이 반대인 경우를 왼 씨름이라 한다. 또 어린이들의 씨름은 아기씨름이라고 하며, 아기씨름에는 샅바를 쓰지 않는다.
경기의 기술로서는 안걸이, 밭걸이, 배지기, 둘러치기, 무릎치기, 꼭뒤잡이 등 여러가지가 있다. 안걸이는 상대편의 가랑이 안으로 발을 넣어 걸어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이것은 안기니라고도 하는데 이쪽의 힘이 약하면 되려 넘어지고 만다. 밭걸이는 상대의 두 다리 밖으로 걸어 넘어뜨리는 재주이며, 이를 밭기니 또는 덧걸이라고도 한다. 배지기는 이쪽 배를 상대편 배에 바짝 붙이면서 상대방을 반짝 들어서 메어치는 것이며 배치기라고도 한다. 둘러치기는 상대방을 빙빙 돌리다가 메어치는 것이며, 무릎치기는 무릎 힘이 없어보이는 순간을 타서 무릎을 쳐서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꼭뒤잡이라는 것은 상대편의 머리를 이쪽 겨드랑이 밑으로 집어넣고 꼭뒤를 잡아 쓰러뜨리는 기술을 말한다. 이와같은 여러가지 기술을 재치있게 구사하면서 승부를 겨루는 것인데, 우승자를 판막음[都結局]이라고 한다.
씨름은 개천가의 백사장에서 행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그 장소를 씨름판이라고 한다. 씨름판의 규격은 일정하지 않고 적당한 넓이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씨름은 단오절에도 많이 벌어지고 추석 전후나 중양일(重陽日) 또는 상원일(上元日)에도 거행되지만, 가장 성대하기는 음력 7월15일 즉, 백중일(百中日)이다. 백중(백종이라고도 한다)은 고용인층, 즉 노동자의 명절이며 씨름은 주로 이들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천대받던 무명의 청년이 이 경기를 통하여 용맹을 떨치는 일이 종종 있어 이야기 거리가 되기도 한다. 근래에 이르기까지 우승자에게는 황소를 상으로 주는 것이 관례였으며, 상으로 받은 황소의 수로써 그 실력이 평가되었다.
씨름은 그 경기하는 방식에 차이는 있을망정 세계 여러 민족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운동경기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각저(角抵), 각력(角力) 등으로 표현하였는데, 경기 방법이 한국의 씨름과 흡사한 것으로 몽고 민족의 씨름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씨름은 고려시대에 원나라로부터 전래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기법의 씨름이 고려시대에 수입되었을지라도, 그 이전부터 이 땅에 씨름경기가 있었던 것은 유명한 통구(通溝)의 무용총 벽화(舞踊塚璧畵)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씨름장면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농악(農樂)
농촌의 가장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오락은 농악 놀이이며,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나 특히 중부 이남이 성하다. 농악은 상고시대 전쟁시의 진군악(進軍樂)으로서 사기를 고무하기 위한 것이라는 속전(俗傳)도 있으나 대개 농작(農作)에 따른 노고를 덜고 작업의 능률을 올리기 위함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농악은 제초, 이앙(移秧) 등 노역시(勞役時)에만 베풀어질 뿐 아니라 정초, 단오, 백중, 추석 기타의 명절에도 거행되며, 농민 스스로는 농악을 풍악, 풍장, 풍물, 두레(중부 이남) 또는 농상계(중부 이북)라고도 하며, 전남지방에서는 매굿, 매기굿이라고도 한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에는 꽹과리(쇠), 징, 장구, 북, 소고(법고), 호적(태평소) 등이 있고, 악곡으로는 행진악, 무용악, 답중악(畓中樂), 축악(祝樂), 제신악(祭神樂) 등이 있으며, 가락은 주로 자진머리를 쓴다.
농악대의 구성을 보면, 위에 든 악기를 치는 사람들과 부락의 상징인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묵서(墨書)한 농기(農旗), '令'자를 쓴 영기(令旗) 한 쌍, 그리고 무동(舞童, 호남지방에서는 꽃나비라고 한다)과 대포수(大砲手), 말뚜기 등, 흥을 돋우는 일단을 더하기도 하여 적어서 10여명, 많으면 20명을 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꽹과리를 치는 사람이 농악대의 지휘자가 되는데 이를 상쇠라고 한다. 상쇠는 항상 대열의 선두에 서서 악대의 진형을 일렬종대, 원형 기타 여러 형태로 변형시키며, 악곡의 변화도 그의 손에 달렸다. 상쇠는 머리에 전립(氈笠)을 쓴다. 전립의 정상에는 끈을 달고 그 끝에 털뭉치를 장식한다. 이것을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뱅뱅 돌리기도 하여 재주를 부리며 춤을 춘다. 이것을 상쇠놀음이라고 한다.
소고수(小鼓手)는 4,5명에서 10명에 이르며 역시 전립을 쓰고 그 정상에는 긴 종이조각을 달아 손에 든 소고를 치며 머리를 흔들면 긴 종이끈이 멋지게 원을 그린다.
징, 장구, 북을 치는 사람과 호적수, 그리고 농기, 영기를 든 사람들은 조화(造花)로 장식한 종이고깔을 쓴다.
농악은 농작에 따른 노고를 잊고 작업능률을 높이는 구실을 하지만 명절에는 다시없는 농촌오락이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각가지 신앙적 행사의 구실도 겸하는 바, 지방에 따라 농악을 매굿 또는 매기굿이라고 부르는 바와 같이 정초에 집집을 돌아다니며 지신밟기 따위의 액막이굿을 하며, 우물을 도는 이른바 샘굿 같은 것도 한다.
이렇듯 농악은 농촌에 있어서는 부락민의 오락과 신앙 기타 모든 공동생활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고 하여 지나친 말은 아니며, 농기(農旗)는 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어 부락마다 소중히 간수한다.
(梁在淵 외 3인 共編, <韓國風俗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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