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사족/ 화룡점정/ 마이동풍/ 군계일학

如岡園 2011. 3. 13. 21:57

          # 사족(蛇足)

 뱀에는 본래 발이 없는데 뱀을 그리면서 발을 그렸다는 것이니, 부질없는 물건을 곁들임을 말한다.

 초나라의 재상 소양(昭陽)이 위나라를 쳐서 이기더니 제(齊)나라를 또한 침공하려고 들었다. 제나라의 민왕은 이것을 염려하여 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으로 와 있는 진진(陳軫)에게 어쩌면 좋겠느냐고 의논하였다.

 "염려마십시오 폐하! 소인이 곧 초군의 진지를 찾아가 침공을 않도록 하겠습니다."

 진진은 황급히 초군을 찾아가 진중에서 소양과 회견하였다.

 "초나라의 법을 여쭤 보겠습니다. 적군을 무찌르고 적장을 죽인 자에게는 어떤 포상이 베풀어지나요?"

 "상주국(上柱國)이라는 벼슬이 주어지며 규(珪)라고 하는 작위가 베풀어지오."

 "그러시면 그보다 웃질가는 벼슬자리는 없나요?"

 "그야, 재상 자리가 있을 뿐이오."

 "대감께서는 이미 재상이시고 보면 인제 제나라를 침공하신들 생색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며 진진은 얘기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여러 하인들에게 커다란 술잔 하나에다 가득히 술을 베풀었다. 그런데 하인들은 그걸 나누어 마시자니 감질이 나겠기에 땅바닥에다 맨 먼저 뱀을 그려 내는 사람이 혼자 마시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맨먼저 그려 낸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뱀에다 발을 그렸던 까닭에 실격하고 두번째로 그린 사람이 술잔을 마셨다- 는 얘기였다.

 "어떻습니까, 대감? 위나라를 쳐서 적장을 죽이셨는데 이제 또 제나라를 침공하신다면 승리하신들 무슨 보람이겠습니까? 불행히도 지시는 경우라면 그야말로 뱀에다 발을 그리는 격이올시다."

 소양은 그 말이 옳다고 여겨 군사를 거두어가지고 돌아갔다. <史記>

 

          # 화룡점정(畵龍點睛)

 사물의 요점 혹은 마지막 손질을 말한다.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남조인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이가 있었다. 관료로서도 상당한 지위에 올랐으나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화필(畵筆)이었다. 그는 온갖 것을 살아 있는 양으로 그려냈다는 중국의 전설적인 대화가이다.

 그가 금릉(金陵, 南京) 안락사(安樂寺)에다 한쌍의 용을 그렸을 때, 뭉게치는 먹구름을 박차고 금시라도 하늘로 날아갈듯한  두 마리의 용...... 그 비늘 하나 하나에도 날카롭게 펼친 발톱에도 강한 생명력이 충만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동자는 하나도 그려 넣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집요하게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였다.

 "눈동자를 그려 넣는 날이면 용이 벽을 뚫고 하늘로 날아 가버릴 것이오."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 눈동자를 그려 넣어 보라고 졸라댔다. 장승요는 마침내 눈동자를 그릴 양으로 먹물이 흥건한 붓을 눈에다 내려 놓았다. 순간 벽 속에서 번개가 번뜩이며 벽을 박차고 날아가는 용...... 무서운 순간이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벽을 보았다. 아직 눈동자가 그려지지 않은 용만이 그냥 벽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리하여 '畵龍點睛'이란 말이 생겼거니와 반대로 '畵龍點睛을 缺했다'고 하면 전체적으로 잘 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요긴한 점을 빠뜨렸다는 말이다.

 한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입안(入眼)이라 한다.

 

          # 마이동풍(馬耳東風)

 남의 의견이나 비평이나 충고를 전혀 개의치 않음을 말한다.

 이태백의 친구에 왕십이(王十二)라는 이가 있어 "차가운 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느껴움이 있노라" 는 시를 지어 보냈다. 이태백은 그에 답하는 장시를 지어 보냈거니와, 자네처럼 고결하고 뛰어난 인물이 지금 세상에 용납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위로하며 세대를 개탄해 마지 않았다.

 "시속(時俗)을 보아하니 닭싸움 솜씨가 뛰어나야지만 천자의 총애를 받아 대로를 활보하며, 오랑캐의 침공을 막는데 사소한 공이라도 세워야지만 최고의 충신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자네나 나나 그런 짓은 못하며 북창(北窓)에 기대어서 시를 읊을 뿐이니 제 아무런 걸작을 써 본들 한 잔의 물만도 못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듣고 모두 머리를 저으며, "마치 동풍이 말의 귀에 불어치는(馬耳東風) 격이데그려" 했다.

 

          # 군계일학(群鷄一鶴)

 수많은 범인(凡人) 중에서 뛰어난 인물을 가리키는 말로서, <진서(晉書)>의 계소전(稽紹傳)에서 나온 말이다.

 계소(?~304)는 죽림칠현 중의 일인으로 열 살 때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사형을 당하자 어머니를 모시고 쓸쓸히 지내던 중, 선친의 친구인 칠현 중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가 무제에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부자 간에는 죄를 나누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계소는 계강(稽康)의 자식이오나, 슬기롭기가 춘추 진나라의 대부 극결(극缺)보다 나을망정 못하진 않습니다. 아무쪼록 비서랑(秘書郞)으로 기용토록 하소서".

 하고 아뢰니 무제는,

 "경이 그토록 천거한다면 굳이 낭(郎)으로 쓸 것이 아니라 승(丞)을 삼아도 좋겠소". 

 이리하여 계소는 비서랑보다 한층 위인 비서승으로 등용되었다.

 계소가 처음으로 낙양에 올 무렵 어떤 사람이 칠현 중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에게,

 "어제 인파 속에서 계소를 처음 봤는데, 의기양양한 품이 마치 무리진 닭 중의 학 같습니다(群鷄一鶴)그려"

 하자, 왕융은 대답하기를,

 "자네는 아직 그 사람의 선친을 못봐서 그래".

 이리하여 '群鷄一鶴'이란 말이 나왔거니와 그리고 보면, 계소의 아버지 계강은 더욱 잘났던가 보다.

 아무튼 계소는 벼슬이 차츰 높아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