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쓰지 않는다는 것으로 남에게 의심받을 짓을 안한다는 말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위왕(威王)은 왕위에 오른지 9년이 되었으나 나라는 잘 다스려지지 않았다. 국정을 간신 주파호(周破胡)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호는 유능한 즉묵대부(卽墨大夫)를 비방하고 무능한 아대부(阿大夫)를 치켜 세웠다. 그래 위왕의 후궁인 우희(虞姬)가 파호의 소행을 위왕에게 고했던 바 그 말이 파호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우희는 원죄를 쓰게 되었다. 위왕은 그 처사가 미심하여 몸소 우희를 신문하니 우희는 아뢰었다.
"저의 결백함은 명백하오나 혹시 저에게 죄가 있다면 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으며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매만지지 않는다(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는 말마따나 남에게 의심을 살 짓을 피하지 않았다는 점이겠죠. 저는 비록 죽음을 당하여도 앙탈하지 않겠사오나 꼭 한가지 여쭙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우희는 파호의 횡포를 아뢰니 위왕은 불현듯 깨닫는 바 되어 즉묵대부에게 만호(萬戶) 벼슬을 주고 아대부와 주파호를 쪄 죽이고 내정을 정돈하자 제나라는 잘 다스려졌다.
참외밭에 들어갔다가 신이 벗겨져 다시 신노라고 구부리면 참외를 따는 양으로 의심받게 될 것이요,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매만지면 오얏을 따는 양으로 의심받을 것이니 그런 의심받을 짓을 삼간다는 말.
권력층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깊이 새겨들을 만한 고사이다.
# 오합지중(烏合之衆)
까마귀떼들 같이 통제되지 않은 군중.
전한말(前漢末)에 외척인 왕망(王莽)이 스스로 황제라 일컬으며 국호를 신(新)이라 한 것은 서력기원 9년이었다. 그러나 정치에 실패하여 각지에 반란이 횡행하고 개중에서도 녹림(祿林)과 적미(赤眉)의 무리는 크게 천하를 어지럽혔다. 이 때 일어선 것이 나중에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된 유수(劉秀)의 군사로서, 여러 곳에서 왕망의 군사를 무찌르고 유현(劉玄)을 황제로 삼으니 왕망은 멸망하고 다시금 한(漢)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천하가 대번에 평온해진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한단(한鄲)을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킨 왕랑(王郞)은 스스로 천자라 일컬으니 유수는 그를 무찌르러 나섰다. 이때 하북성의 태수의 아들 경감(耿감)은 21세 난 준재였던 아버지 경황(耿況)의 분부로 기꺼이 유수의 휘하로 달려갔다. 그러자 도중에 손창(孫倉)과 위포(衛包) 두 부하가 왕랑이 사칭(詐稱)하는 바 성제(成帝)의 아들이라는 말을 곧이 여기고 그의 휘하로 가려고 나섰다. 경감은 크게 노하여 칼을 뽑아들고 외쳤다.
"왕랑은 이름도 없는 도적이니 내가 장안에 갔다 와서는 군세를 몰아 왕랑의 군사를 무찌를 것인 바 그따위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짓밟기는 시들은 나무를 꺾는 짓이나 같은 것이요 왕랑을 사로잡을 것은 뻔하다. 너희 둘이 사리를 분간치 못하고 도적과 얼린다면 대번에 패망하여 멸족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두 부하는 기어이 왕랑에게로 도망치니 경감은 굳이 만류하지 않고 유수에게로 갔다. 그후 경감은 유수를 도와 수많은 무훈을 세우고 훗날 건의대장군(建義大將軍)이 되었다.
# 국척(국蹠)
국천척지(국天蹠地)의 준말이니 머리가 하늘에 닿지 않도록 굽히고 땅이 꺼질까봐 조심스럽게 걷는다...... 다시말하면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형용이다.
육조시대(六朝時代) 송나라의 범엽(范曄)이 지은 <後漢書>의 진팽전(秦彭傳)에 보면
- 공정한 진팽을 맞이하니 부도의한 관리들은 국척(국蹠)하여 잔꾀를 부릴 여지가 없어졌다. - 고 하였고,
또한 육조의 양나라 무제의 강자인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엮은 문선(文選)에 보면, 장형(張衡)의 동경부(東京賦)에
-어찌 국천척지(국天蹠地)함에 그치랴, 더욱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 하였다.
# 방약무인(傍若無人)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제멋대로 행동함을 말한다. 어떤 일에 열중해서 그러는 경우와 성품이 당돌해서 그러는 경우가 있겠다.
-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진압해 낸 무렵 위(衛)나라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독서와 검술을 즐기고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나라에 용납이 안되자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현인 호걸들과 사귀었다.
그런데 그가 연나라에 갔을 적이다. 거기서는 한 개백정과 축(筑;대조각으로 타는 거문고의 일종)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 두 사람과 사귀었는데 형가는 그들과 함께 시중에 나가 술을 마시고는 취하면 축에 맞추어 노래하였고 감상(感傷)에 겨워 함께 울기도 했는데 그것이 마치 아무도 없는 데서 하는 짓 같더라. -
사기(史記)의 자객전(刺客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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