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덕적 삶에 대하여

如岡園 2013. 1. 1. 16:05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하더라도 당신이 이를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도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만 모든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섭리에 맡겨 둔 채 경건하고 정의롭게 오직 현실에만 충실하라.

 당신에게 주어진 운명-자연은 당신을 위해 운명을 정하고, 그 운명을 위해 당신을 탄생시켰다-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경건해야 하고 당신이 자유롭고 숨김없이 진리를 말하며, 법칙에 따라 자기의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와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사악(邪惡), 어떤 의견이나 평판, 그리고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보잘것 없는 육체의 감각에 매이지 말라. 그것은 그 감각을 느끼는 기관이 관여할 일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언제 세상을 떠나든 다만 당신의 지배적 이성과 당신 안에 깃들여 있는 신성(神性)만을 존중하고 그 밖의 일은 모두 무시한다면, 또한 언젠가는 죽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본성에 따라 사는 생활을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면, 당신은 자기를 탄생시킨 우주에 알맞는 인간이 될 것이고 조국에 대해서는 이방인이 되지 않을 것이며,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마치 예상치 못했던 것처럼 놀라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신은 육체, 입김[생명], 이성의 세 가지로 되어 있다. 그 중에서 처음 두 가지는 당신이 돌봐줘야 한다는 의미에서 당신의 것이다. 그러나 참의미에서는 오직 세 번째 것만이 당신의 소유물이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언행과 당신의 과거의 언행과 미래의 일로써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육체 및 육체와 결부되어 있는 입김[생명]에서 생겨나서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당신에게 부속되어 있는 것들, 소용돌이치면서 맴도는 외부의 혼란 등을 모조리 제거해 버린 결과 당신의 지성이 운명에서 해방되어 깨끗해질 것이다.

 또한 무엇에 의해서도 속박되지 않고 스스로 올바른 일을 행하며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의 지배적 능력으로부터 육정(肉情)에서 비롯되는 부가물이나 미래와 과거에 속한 것을 추방하고 엠페도클레스가 말하는 '완전한 구형(球形)의 그 가없는 모습을 즐기는'것처럼 자기를 형성하며, 당신이 살아있을 때 즉 현실에 충실하는 수련을 쌓는다면, 남은 생애를 마음의 동요없이 고귀한 당신 자신의 신에게 순종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다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으면서 자기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남의 의견보다 존중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고 나는 때때로 이상하게 생각한다.

 만일 신이나 현명한 스승이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서 생각하자마자 말로 떳떳이 나타낼 수 없는 것은 머리 속에 떠올리지 말라고 명령한다면, 그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을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보다 존중한단 말인가.

 

 죽음이 닥쳐왔을 때 육체와 영혼은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짧은 인생, 과거와 미래로 뻗은 시간의 심연, 모든 물질의 취약함을 생각하라.

 

 겉껍데기를 벗겨 내고 적나라한 사물의 형상인(形相因)을 바라보라. 그리고 모든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검토해 보라. 

 고통이란 무엇이며, 쾌락, 죽음, 명예란 무엇인가? 인간은 누구 때문에 불안해 하는가? 아무도 남의 속박을 받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주관(主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라.

 

 우리는 신념을 실천에 옮길 때, 검객(劍客)이 아니라 역사(力士)처럼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그가 사용하는 것을 떨어뜨리게 되면 죽음을 당하게 되지만, 후자는 언제나 자기 손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깜짝 놀라는 자는 얼마나 우습고 이상한 사람인가!

 

 올바른 일이 아니면 행하지 말라. 진리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그 결단은 어디까지나 당신에게 달려 있다.

 

 당신의 마음 속에는 정욕을 일으켜 당신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고 훨씬 신령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내 마음속에 지금 무엇이 있는가? 공포인가? 의혹인가? 욕망인가?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인가?

 

 멀지 않아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을 생각해 보라. 또한 현재 당신의 눈앞에 있는 사물도, 현재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만물은 변화하고 변형되며 소멸되게 마련이다. 그 밖의 다른 것이 뒤를 이어 태어나기 위해서다. 

 

 모든 것은 주관(主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 주관은 당신의 힘으로 자유롭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이 원한다면 뜻대로 주관을 취소하라. 그러면 당신은 곶[岬]을 돌아선 매처럼 온화하고 고요하고 파도가 없는 항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행동이든 적절할 때 그만두면 그것 때문에 해를 입는 일은 없다. 또한 이 행동을 한 사람도 그 행동을 그만두었다고 해서 해를 입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행동의 총계인 이 인생도 적당한 시기에 끝내면 그 때문에 해를 입지 않는다. 그리고 일련의 행동을 적시에 그만둔 사람도 해를 입지 않는다. 그 시기와 기한은 자연이 정한다. 그것은 때로 어느 개인의 내부의 자연이다. 예컨대 노령(老齡)의 경우처럼.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우주의 자연이며, 그 자연의 각 부분이 변화됨으로써 우주는 언제나 젊고 싱싱하게 유지된다.

 그런데 우주의 자연에 유익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또 언제나 시기가 적절하다.

 그러므로 인생의 종말도 각 개인에게 나쁜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자유 의사의 테두리 밖의 일이며, 또한 공익을 위해서도 해가 되지 않는 이상 그 장본인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 전체에 시의(時宜) 적절한 일이고 유익한 일이며, 우주 전체의 움직임에 적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신과 같은 길을 가고 충심으로 신과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은 신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당신이 어떤 일에 불만을 느낀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즉 모든 일은 우주의 본성에 따라 일어나며 남의 잘못은 당신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또한 이 세상에 일어난 일은 이와같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지금도 곳곳에서 이와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개인과 전인류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를 잊어버리고 있다.

 인류는 보잘것없는 피나 씨앗의 공동체가 아니라 이성(理性)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은 인간의 이성이 바로 신이며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잊고 있다.

 또한 당신 자신의 소유물은 하나도 없고, 당신의 자녀도 당신의 육신도 당신의 영혼까지도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잊고 있다.

 끝으로 모든 것은 주관에 달려 있으며, 각자가 사는 것은 현재이고 잃는 것도 현재라는 것도 잊고 있다.

 

 인생의 구원은 모든 사물을 철저히 통찰하고 그것이 무엇인가, 그 소재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인가를 검토하는 데서 비롯된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 바르게 행하고 진실을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밖에 남아 있는 일은, 좋은 일을 다른 좋은 일과 연결시켜서 그 사이에 조그마한 틈도 생기지 않도록 인생을 즐기는 일이다.

 

 무한이라는 시간과 비교해 보면 각자에게 할당되는 시간은 순식간에 영원의 심연 속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또한 물질 전체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이 우리에게 할당되고, 생명 전체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이 우리에게 할당되는가?

 또한 전체 지면에서 얼마나 작은 흙덩어리 위를 당신은 기어다니고 있는가?

 이것을 상기하면서 당신 속의 본성이 인도하는 대로 행동하고 우주의 본성이 부여하는 것을 참고 견뎌라.

 

 당신의 지배적 이성이 당신을 어떻게 인도하고 있는가에 모든 일은 달려 있다. 그 밖의 일은 당신의 자유 의사 밑에 있든 없든 죽음과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적시에 일어난 일만을 선이라고 생각하고 올바른 이성에 따르기만 하면 성취한 일이 많든 적든 결국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도 그만 짧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여, 당신은 이 큰 국가[세계]의 한 시민으로 살아왔다. 그렇다면 그 기간이 5년 동안이든 100년 동안이든 당신에게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주의 원칙에 맞는 일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을 이 국가에서 몰아내는 자가 폭군이나 부정한 재판관이 아니라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자연이라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마치 집정관이 배우를 채용했다가 무대에서 떠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나는 5막까지 연출하지 못했어요. 겨우 3막만 연출했어요."

 좋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3막까지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연극이다. 왜냐하면 언제 연극을 끝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는 일찌기 이 연극을 구성했다가 지금은 중단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극의 구성이나 완료에 대한 책임이 없다. 따라서 흡족한 마음으로 떠나가라. 그러면 당신을 해고시킨 자도 흡족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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