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川의 봄
춘천을 아는가.
춘천의 겨울은 그대로 쓰라림, 나는 언제나 혼자였었다. 마지막 사랑도 버리고 마지막 비틀거림도 버리고, 공지천 물 가로 나가보면 스산한 바람뿐, 사는 것은 언제나 부질없었다.
밤이면 우두벌판을 내달아 와 벽을 때리는 바람 소리. 가슴도 허전하게 비어 나가고, 커튼을 걷어 내고 하늘을 쳐다보면 거기 내 유년의 시린 눈물로 반짝이는 별들이 빙판같이 카랑카랑한 하늘에 박혀 있었다.
겨우내 나는 불면이었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참혹했었다. 그 무엇이든 내게는 참혹했었다. 내 의식은 앙상하게 말라 죽고 유리창의 하얀 성에만 백엽식물처럼 무성하게 가지를 뻗고 있었다. 영영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더러는 슈베르트의 슬픈 목소리로 눈이 내리고 또 더러는 지붕에서 풀썩풀썩 떨어지는 눈더미 소리. 나는 누구에게든 편지를 쓰고 싶었다. 여기는 춘천. 겨울 속에 갇혀 있음. 엽서라도 한 장 보내주기 바람.
그러나 아무에게도 편지를 쓸 수 없었다. 당연히 내게도 엽서 한 장 오지 않았다.
그러나 봄을 기다려 볼 것. 더 이상 절망하지는 말 것. 봄이 올 때까지는 버림받고 살기로. 그리고 나 또한 하나씩 버리면서 살기로. 사랑도 버리고 절망도 버리고 모든 부질없음까지 버리고, 나도 저 시리고 맑은 겨울 허공이 될 것. 잠결에도 나는 내 가슴밭에 꽃씨를 뿌리며 봄을 생각했었다.
그대, 춘천의 봄을 아는가.
문득 잠결에 들리는 황사바람, 싸르락싸르락 모래알 쓸려가는 소리, 그리고 몇 번의 시린 비가 다시 내리고, 이어 몇 번의 식은 금색 햇빛, 그 다음 마른 개나리 가지 끝에서도 움이 튼다.
공지천으로 나가 보라. 아직은 겨울의 싸아한 기운이 스며 있는 바람 한 가닥에 눈을 씻으며 제방비탈 돌틈에서 파릇한 풀잎이 돋고, 어느새 얼음은 모두 녹아 몇 척의 보트가 물 위에 떠 있다. 겨우내 문을 닫았던 목로 찻집도 문을 열었다. 헤어진 사람들이여, 다시 만나라.
봄은 겨우내 밤을 새우며 몇 번이고 찢어버렸던 편지 속 낱말들이 금색 햇빛 속에 다시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계절, 고통의 낱말들은 꽃으로 남고 어둠의 낱말들은 빛으로 남아 또다른 편지를 쓰게 만드는 계절이다.
까닭도 없이 가슴이 설레이고, 밖으로 나가면 누구든 한 사람쯤 정다운 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햇빛은 햇빛대로 화창하기 짝이 없다. 강 하나 건너 적당히 깨끗하고 아담한 주택가엔 하얀 옥양목 빨래들이 널려 있고, 그 뒤로는 나지막한 산비탈. 과수원엔 희디흰 배꽃이 눈부시게 피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열고 있다.
밤이면 가끔 속삭이는 비도 내린다. 내려서 병든 도시를 적시고 병든 가슴을 적신다. 비로소 우리는 더 이상 외로와하지 않기로 한다. 우리도 각자 비가 되어 공시천 물 위로 또는 꽃잎지는 배꽃나무 밑으로 속삭이며 스며들기도 한다. 그러면 세상은 오래도록 편안하고 우리는 영원히 신선하다.
싸우지 말라. 돈과 명예와 권력 때문에 싸우지 말라. 봄에 내리는 비, 봄에 피는 꽃, 그리고 봄에 새로이 눈뜨는 모든 모든 것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 자연 앞에서는 우리도 한낱 보잘것 없는 뼈와 살, 너무도 많은 것을 더럽혀 오지 않았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다. 마음까지를 더럽히려고 애쓰지 말라. 단 한 줄의 시도 외어보지 못한 채 봄을 훌쩍 보내어버린 사람이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는다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겠는가. 봄비 내리는 밤 한 시. 잠못 이루고 한 줄의 시를 쓰는 사람과 잠 못 이루고 몇 다발의 돈을 세는 사람들과를 한 번 비교해 보라. 누구의 손끝이 더 아름다운가.
어디선가 꿀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구름은 벚꽃처럼 화창하게 퍼져 있는데, 정원의 식탁 위에는 아름다운 햇빛 한 장이 순은처럼 빛나고 있다. 거기 새로 페인트를 칠한 아담하고 깨끗한 의자에 앉아 점백 내기 육백을 치면서, 치사하게 왜 이래요, 끗발에 지장 있다니까, 따위의 대화를 주고받는 부부와 통기타를 치면서 화음 맞추어, 그대는 이 나라 어느 언덕에 그리운 풀꽃으로 흔들리느냐, 오늘은 내 곁으로 바람이 불고...... 등의 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부르고 있는 부부를 비교해 보라. 어느 쪽이 더 아름다와 보이는가.
낭만이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낭만이 밥먹여 주냐, 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할 말이 없다. 밥을 먹기 위해 태어나서 밥을 먹고 살다가 결국은 밥을 그만 먹는 것으로 인생을 끝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같은 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다만 비참할 뿐이다. 밥 정도는 돼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낭만을 아는 돼지를 당신은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라. 그러나 낭만도 사랑하라. 애당초 사랑이라는 것은 낭만이라는 강변에 피어난 꽃이다. 낭만이 없는 사람은 사랑도 할 수 없다. 마른 모래 사막에서는 한 포기의 풀잎도 자랄 수 없듯이.
돈이나 명예나 권력으로는 결코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없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으로는 고작 사랑을 가장한 프라스틱 가화들이나 사들일 수 있을 뿐이다.
십원짜리 동전 하나를 전화통에다 집어 넣고 검지손가락 하나로 애인을 불러내는 조잠한 시대. 문화가 죽고 문명의 이빨만 번뜩거리는 이 살벌한 시대. 먼 새벽 강물 소리로 가슴을 자욱하게 설레이며 밤을 새워 자신의 순수하고 진실한 가슴을 편지에다 심어넣는 낭만을 이 봄에는 단 한 번만이라도 가져 보자. 우리 모두가 한 줄의 시가 되자. 우리 모두가 더 이상 때묻지 말기로 하자. 저 청량한 햇빛과 강물과 공기, 저 따스하고 화사한 벗꽃나무와 누님의 구름 곁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음악이 되자.
녹슨 서울. 해 하나 불그죽죽하게 떠서 시름시름 병을 앓고 있는 서울. 한강이 죽어가고 있는 서울. 그 서울에도 봄은 오는 것일까. 그 서울의 녹슨 가슴에도.
물론 온다. 봄은 어디에도 온다. 그러나 더러 사람들의 가슴에만은 봄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너무 외로왔기 때문에 지난 겨울 단 한 통의 편지도 써 보낼 수 없었던 이들이여, 이제 편지를 쓰자. 봄은 편지를 쓰는 계절. 다시금 묵은 비듬을 털고 수양버들도 먼 바다를 향해 머리를 빗고 있다. 지난 겨울 쥐불을 놓았던 자리, 검은 논두렁에도 민들레가 핀다.
이제 봄이다. 겨울을 쓰라리게 보낸 사람일수록 봄은 더욱 새롭다. 마치 고통을 심하게 받은 조개일수록 그 진주가 더욱 아름답듯이.
진달래의 뿌리를 본 적이 있는가. 그 고통으로 뒤틀린 형상을 본 적이 있는가. 진달래의 뿌리는 무엇인가를 몹시 고통스럽게 땅 속에서 찾아 헤매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형상이 징그러울 정도로 꾸불텅 휘어지고 뒤틀려 있다. 그 무엇인가를 고통스럽게 찾아 헤매던 끝에 봄이 되면 비로소 피어나는 꽃. 햇빛에 그 고운 연분홍 꽃잎을 투명하게 반사시키며 야산 여기저기에 피어 있는 진달래에 홀려서 하루종일을 헤매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문득 배가 고파 한 줌씩 꽃잎을 따먹으면 입안에 고이던 그 꽃물의 향기로움을. 그 애틋한 그리움의 즙 한 모금이 적신 세포의 빛깔을.
그렇다. 이제 완전히 겨울은 갔다. 그러나 그 겨울의 모든 쓰라림만은 잊지 말기로 하자.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쓰라림을 배우기 위해 잠시 한 순간의 봄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큰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춘천은 안개의 도시. 그러나 봄에는 개나리의 도시. 집집마다 개나리가 없는 집이 거의 없다. 개나리는 춘천의 시화로 지정된 꽃이다. 봄이면 집집마다 샛노란 개나리가 축제처럼 눈부시다. 나는 다시 편지를 쓸 것이다. 여기는 춘천. 지금은 봄입니다. 나는 이제 양지바른 벽에 기대어 앉아 그냥 하늘이나 바라보며 그대에게 뭉게구름 한아름을 만들어 보냅니다. 지금 당장 하늘을 한 번 쳐다보십시오. 안녕이라고. (이외수 에세이, '영혼의 변주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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