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세렌디피티/김정자

如岡園 2013. 5. 10. 22:22

          세렌티피티

 

 어떤 우연에서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세렌디피티(serendipiity)라고 지칭한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다가 책갈피 속에서 어린 시절 친구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사진은 늘 한 번 만나고 싶어했지만 살아오면서 한 번도 만나지지 않았던 옛 친구의 사진이었을 때, 그것은 깊은 감동과 추억의 아릿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서랍 구석에서 오래 전에 잃어 버렸다고 애석해 했던 거액의 수표를 발견했을 때, 그것 제법 황당한 행복감이 아니겠는가.

 세렌디피의 예를 더 상상해 보면 공연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동창모임에 가려다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아 모임을 포기하고 씁쓸하게 돌아나오다가 길 모퉁이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만나게 되었을 때, 꼭 행복하지만은 않겠지만 그 얼마나 가슴 떨리는 충격으로 우리 삶을 신선하게 할 것인가.

 아날로그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오래 전의 LP판이 희귀품종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창고 속에서 선풍기 날개를 찾다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LP판 하나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혹여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의 LP판이기라도 했으면, 그 얼마나 가슴 떨리는 행운이 될까.

 무심히 쓴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갖게 된다면 그야말로 행복해질 것인가.

 무심히 산길을 걷다가 잉크빛 날개를 가진 작은 새를 발견하였을 때, 새는 가슴을 팔락거리며 수풀 속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오월의 살랑거리는 바람마저도 조심조심 새의 날개를 쓰다듬고 간다. 이 정밀한 산의 고요는 산숲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우연이 아닐까.

 

 세렌디피티의 결과는 반드시 행운을 가져오는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우연히 얻은 큰 결과나 행운이 자신의 운명과 때로는 인류의 운명에 큰 피해를 가져오게 되는 일도 있으리라 믿는다. 행운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들이 우주의 큰 논리로 볼 때 반드시 긍정과 부정의 이원논리로 나뉘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나도 무심히 나무숲길을 걸어가다가 그리운 사람 한 사람쯤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는 없을까. 얼굴을 잘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옛사랑 한 사람쯤 만나서, 인생이란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또 오는 강물에 불과한 것이라고, 소란과 흥분에 가득 차 있지만 무대 위에서 제 차례가 지나고 나면 어디론지 사라져야 할 가엾은 배우에 불과하다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라도 조용히 반추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날 수는 없을까.

 그것이 비록 쓸쓸한 운명과의 만남이라 할지라도 이 아름다운 5월에, 그리운 사람 한 사람쯤 만나 가슴이 뛰는 슬픔을 견뎌내었으면 어떨까.

 이 부질없는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세렌디피티'는, 휘어졌어도 아름다운 운명이며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며 5월의 눈부신 햇살에 감사한다.    (김정자/수필동인지<길>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