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의 명상록/우주의 지배적 이성에 대하여

如岡園 2014. 5. 2. 20:41

 악덕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모든 일에 "이것은 내가 자주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라. 결국 천상 천하 어디서나 동일한 것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사나 중세사에도 동일한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오늘날의 도시들과 집들에도 동일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예전부터 동일하고 속절없는 것들이다.

 

 신조(信條)는 사멸되는 일이 없다. 이에 대응하는 관념이 소멸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사멸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관념을 끊임없이 새로운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나는 사물에 대하여 자신의 정당한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마음을 괴롭힐 수 있겠는가? 나의 마음과 떨어져 있는 것은 나와 관계가 없다.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한 당신은 의연할 수 있다.

 당신은 새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사물을 전과 같이 다시 보라. 새로운 삶은 여기서 비롯된다.

 

 헛된 영화의 꿈, 무대에서의 연극, 양 떼와 소 떼, 창(槍) 연습, 강아지에게 던져 준 뼈, 어항 속의 빵 조각, 개미의 노고와 무거운 짐, 겁먹은 쥐의 도주, 실로 조종되는 인형 - 당신은 어떤 것들에 둘러싸여 거드름을 부리지 말고 선한 태도를 취하라. 인간의 가치는 그가 열심히 추구하는 대상의 가치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들과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모든 행동에 있어서 그 결과에 유의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 행동이 어떤 목적과 관련되어 있는가를 처음에 간파하고, 전자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주의해야 한다.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나의 지능은 충분한가? 만일 충분하다면 나는 이 능력을 우주의 본성이 부여한 도구로써 그 일에 사용한다. 그러나 충분치 못하면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내가 물러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없는 한, 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거나 혹은 나의 지배적인 원리의 도움을 받아 사회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조수로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대해 일을 처리한다. 혼자서 하든 다른 사람의 힘을 빌든 어쨌든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사회에 유익하고 적합한 것이라야 한다.

 

 남에게서 도움을 받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말라. 왜냐하면 당신은 마치 병사가 싸워서 성채(城砦)를 빼앗는 것처럼, 주어진 일을 마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절름발이여서 혼자서는 성벽을 기어오를 수 없고 남의 도움을 얻어야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미래의 일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 필요하다면 당신은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 그 이성으로 미래의 일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연(毅然)하라. 아니면 남의 힘을 빌어서라도 의연해지라.

 

 사지(四肢)와 동체(胴體)가 하나의 육신을 형성하듯이 이와 같은 원리가 이성적 존재에게도 적용된다. 그들은 각자 다른 개성을 갖고 있으나 서로 협력하게끔 되어 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도 이성적인 존재에 의해 형성되는 유기체의 한 지체(肢體, melos)다" 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관계는 더욱 분명하게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l 대신 r을 사용하여 단지 " 한 부분(meros)이다" 라고 자기를 가리켜 말한다면 당신은 아직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은 아직 선한 일을 하는 것을 그다지 기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아직 하나의 의무로써 선심을 쓸 뿐 자기 자신에게 선을 행하고 있지는 않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 뭐라고 말하든, 나는 선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금이나 에메랄드나 자패(紫貝)가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 뭐라고 말하든 나는 에메랄드(또는 금 혹은 자패)라야 한다. 나는 본래의 색깔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지배적인 이성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예컨대 자기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만일 누가 지배적인 이성을 두렵게 하고 슬프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음대로 해보라. 지배적인 이성은 자기의 신념으로 말미암아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육체는 가능하면 아무 해도 입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하고, 해를 입었을 때에는 이를 말하도록 하라. 그런데 영혼 자체는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실은 아무 고통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혼은 습관적으로 이와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완전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이성은 스스로 어떤 요구를 하지 않는 한, 그 자신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 자기를 괴롭히거나 속박하지 않는 한, 무엇에 의해서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속박받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그러나 변화없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우주의 자연에 이보다 더 사랑스럽고 친밀한 것이 있을까? 장작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운 목욕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만일 음식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겠는가? 그밖에도 변화가 없이 긴요한 일이 이루어진 것이 있는가? 당신 자신이 변하는 것도 동일한 경우에 속하며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연에 있어서도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는가?

 

 오직 한 가지 일이 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내가 인간의 본성이 허용하지 않는 일을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멀지 않아서 당신은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멀지 않아서 모든 사람이 당신을 잊어버릴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조차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다. 여기까지 도달하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너와 동포이며 무지로 말미암아 부지중에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얼마 안 가서 그들도 나도 죽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너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의 지배적인 이성을 전보다 나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굴에 분노를 나타내는 것은 자연에 몹시 위배되는 일이며, 자주 얼굴을 찡그리면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결국은 완전히 없어져서 다시는 아름다와질 수 없다.

 이런 사실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것은 이성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고 있는 듯이 생각하지 말라. 그보다도 현재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골라 내고, 만일 이것마저 없었더라면 얼마나 갈망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라. 그러나 너무 기쁜 나머지 이것을 습관적으로 지나치게 중요시하여 이것을 잃으면 괴로와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상상력을 버려라. 인형처럼 남의 조종을 받지 말라. 현재에 충실하라. 당신과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이해하라. 당신의 눈앞에 있는 대상을 원인과 소재로 나누어 분류하라. 최후[임종]의 시간을 생각하라. 누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 잘못은 이것을 범한 사람에게 국한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