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멋/皮千得

如岡園 2014. 4. 15. 20:07

 골프채를 휘두른 채 떠가는 볼을 멀리 바라다보는 포즈, 바람에 날리는 스커트, 이것은 멋진 모습이다.

 변두리를 툭툭 건드리며 오래 얼러보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두들기는 북채, 직성을 풀고는 마음 갈아앉히며 미끄러지는 장삼자락, 이것도 멋진 장면이다.

 그러나 진정한 멋은 시적(詩的) 윤리성(倫理性)을 내포하고 있다. 멋 속에는 스포츠맨십 또는 페어 플레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어떤 테니스 시합에서 A선수가 받아야 할 인사이드 볼이 심판의 오심으로 아웃으로 판정되었었다. 관중들은 자기네 눈을 의심하였다. 잇따라 A선수가 서브를 들이게 되었다. 그는 일부러 그러나 아주 자연스럽게 더블 아웃을 내었다. 그때 그의 태도는 참으로 멋있는 것이었다.

 저속한 교태를 연장시키느라고 춘향을 옥에서 하룻밤 더 재운 이몽룡은 멋없는 사나이였다.

 무력(武力)으로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루이즈를 아내로 삼은 나폴레옹도 멋없는 속물이었다.

 비록 많은 여자를 사랑했다 해서 비난을 받지만 1823년 이탈리아의 애국자들이 분열되었을 때, "나는 이탈리아 독립을 위하여 피를 흘리려 하였으나, 이제 눈물을 흘리며 떠난다"는 스테이트먼트를 발표하고 희랍으로 건너가 남의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재산과 목숨을 바친 영국 시인 바이런은 참으로 멋진 사나이였다.

 멋있는 사람은 가난하여도 궁상맞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 폐포 파립(弊袍破笠)을 걸치더라도 마음이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으면 곧 멋이다.

 멋은 허심(虛心)하고 관대(寬大)하며 여백(餘白)의 미(美)가 있다. 받는 것이 멋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이 멋이다. 천금을 주고도 중국 소저(小姐)의 정조를 범하지 아니한 통사(通事) 홍순언(洪淳彦)은 우리나라의 멋있는 사나이였다.

 논개(論介)와 계월향(桂月香)은 멋진 여성이었다. 자유와 민족을 위하여 청춘을 버리는 것은 멋있는 일이다.  그러나 황진이도 멋있는 여자다.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하여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였다. 키가 크고 늘씬한 젊은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바른손으로 물동이 전면에서 흐르는 물을 휘뿌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또 하나의 젊은 여인이 저편 지름길로부터 나오더니 또아리를 머리에 얹으며 물동이를 받아 이려 하였다. 물동이를 인 먼저 여인은 마중 나온 여인의 머리에 놓인 또아리를 얼른 집어던지고 다시 손으로 동이에 흐르는 물을 쓸며 뒤도 아니 돌아보고 지름길로 걸어들어갔다. 마중 나왔던 여자는 웃으면서 또아리를 집어들고 뒤를 따랐다. 이 두 여인은 동서가 아니면 아마 시누 올케였을 것이다. 그들은 비너스와 사이키보다 멋이 있었다.

 멋이 있는 사람은 멋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작고 이름지을 수 없는 멋 때문에 각박한 세상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광경을 바라다보고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