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희수(喜壽)의 나이를 살아왔으니 머릿속이 자못 혼란스럽다. 꼭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할 것은 기억을 해야하고 기억을 아니 해도 될 것은 몰라야 하는데, 이것이 뒤죽박죽이 되는 일이 있어 잘못 난처한 일이라도 생길까 봐서 조심스럽기도 하다.
혼자되기 연습으로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셈이지만 엉뚱하게도 아주 오랜, 어떤 것은 유년시절의 기억들까지도 생생히 되살아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데는 대책이 없다.
현재에서 가까운 것일수록 깡그리 잊어버리고 오랜 것 중에서 무의식에 각인된 인상 깊은 사건들이 추억되는 것은 통상의 현상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쳐도, 그 증세가 심하면 퇴행심리에 빠져 발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뇌세포가 노쇠하여 죽어가고 있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지난 것과 지금 것을 불문하고 이왕이면 나쁜 것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여 마음이라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좋은 기억력은 놀랍지만, 망각하는 능력은 더욱 위대하다고 했다. "지나간 기쁨은 지금의 고뇌를 깊이하고 슬픔은 후회와 뒤엉킨다. 후회도 그리움도 다 같이 보람이 없다면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망각뿐"이라고 바이런은 말했지만 망각이 어찌 그렇게 자유자재한 것일까? 설령 잊을 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만은, 자기의 본질만은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의식의 저 밑바닥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일생을 떠받쳐 온 자신만의 본질, 그것이 통제없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것은 망발이다.
망발(妄發), 망령(妄靈)이 노망(老妄)으로 이어져 주변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 경우를 예상한다면 차라리 추억, 특히 작금의 현실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하찮은 기억 같은 것은 망각이라는 무덤 속에 묻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앞을 내다보고 살기보다 뒤를 되돌아보고 추억하기를 좋아한다. 노년이 회고적이고 추억을 희구하는 것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나가버린 생활을 즐기는 것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이라 하니 노년이 추억을 희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화려한 미래가 없어 어차피 추억이나 들추어 자아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려면, 불필요한 지난 일, 불쾌한 기억을 말하거나 머릿속에 불러들이거나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쓸데없는 과거사를 화제에 올리거나, 굳이 기분 나빴던 일을 꼬장꼬장 생각하는 것은, 화근이 되고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아주 나쁠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 본능, 특히 에로스 본능의 에너지인 리비도(libido,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의 심층에서 나오는 인간 행동의 바탕이 되는 근원적인 욕구)와 연관된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지나가버린 사랑의 추억은, 그것이 강하게 기억에 머물러 있을 때는, 연애를 하고 있었을 때와 다를 바 없이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한다. 에로스의 감성은 인생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이는 마력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노년의 최상 과제는 특별한 자리가 아니라면 추억의 문은 닫아버리고 소음을 피하여 침묵과 망각에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꿈에 관한 문제라면 누가 뭐랄 것인가. 아이들 꿈이 개꿈이라면 어른 꿈은 용꿈이고 늙은이 꿈은 대왕님 꿈일까.
여기서 말하는 꿈은 어떤 것에 대한 바람이나 희망의 꿈이 아니라, 잠자는 동안에 생시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런 꿈을 말한다.
동화같이 느껴지는 유년기, 인식에 모든 것을 바쳤던 청소년기, 사회와 첫 대면한 이래의 가지가지의 괴로움, 아픔, 그리움들이 시시 때때로 꿈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
덧없는 바람이나 희망의 꿈이 아니라, 잠자는 동안에 생시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런 꿈을 이야기하여 보자.
꿈에는 오경(五境)이 있어, 영경(靈境), 보경(寶境), 과거경(過去境), 현재경(現在境), 미래경(未來境)이 그것이라지만, 미래가 없는 노령에게는 과거경이 중심을 이루고 예견되는 일이 미리 떠오르는 현재경이 심심찮게 자리를 차지한다.
의식의 전면이 들쭉날쭉 대중이 없으니 심층에 가라앉은 무의식 세계의 반영인 꿈도 노쇠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의외로 꿈은, 자주 안 꾸는 일은 있어도 꾸었다 하면 신통하게도 초롱초롱 생생하게 꾸어진다.
늙은이가 되면 거꾸로 어린애가 되어간다더니 꿈에서도 그런가. 본래 어린애의 꿈은 짧고도 선명하고 앞뒤의 맥락이 통하는 것이며 이해하기 쉬운 그러면서도 애매하지 않고 진지한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하였다.
순탄한 직업, 평범한 인생여정을 살아오면서 특별히 몹쓸 짓을 한 일이 없어서인지 악몽을 꾼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각을 할 것 같아 안달하던 꿈을 자주 꾸어 초조해 하던 경지를 벗어나는가 했더니, 출제나 성적처리의 기간, 논문제출 마감이 도래했는데도 실마리도 찾아내지 못하여 진땀을 빼는 꿈, 신분이 하강하여 교수 신분에서 당초의 중등학교 교사, 그것도 모자라 발령 대기 상태로 되돌아가는 엉뚱한 꿈을 자주 꾸었다.
그러한 것에 대한 초조감이 꿈으로 나타난 것은 어쩌면 역으로 나의 일생을 이끌어 준 추동력(推動力)의 심저(心底)일 수도 있다. 꿈속의 무의식적인 것은 의식상에 나타내는 일을 돕는 작용을 하고, 이상과 꿈이 우리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착오(錯誤)와 왜곡(歪曲)이 수반되기는 하지만 예정된 일이 미리 앞질러 꿈으로 형상화되어 기대하고 있는 바를 충족시키는 꿈은 신기한 데가 있어 좋고, 단순한 사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환각적 경험의 형식으로 충족된 소원으로 나타난 꿈도 꿈이라서 즐겁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이후 많은 정신의학의 학파에 의해 꿈은 인간의 정신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정신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꿈은 신체현상이 아니라 정신현상이다. 또한 꿈은 꿈을 꾸는 사람 자신의 성취이며 표현이다.
일평생을 통해 강제적으로 나타나는 신체적인 욕구, 즉 기아, 갈증, 성욕에 의하여 야기되는 내적인 육체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원망충족의 꿈은 접을 나이가 되었다. 어린이의 꿈과 같이 쉽게 원망 충족을 인정할 수 있는 왜곡이 없는 꿈을 꾸고 싶다.
꿈속에서 무슨 짓을 하건 타인에게는 무슨 상관이랴. 원망(願望)이 꿈을 야기하고 이 원망 충족이 꿈의 내용이라는 점이 꿈의 특질의 하나이다. 꿈은 유감, 동경, 충족되지 못한 원망의 반응이다. 그중에서도 공상형성을 본질로 하는 백일몽은 야심이나 성적 욕망의 충족이다.
이렇게 꿈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소망이다. '돼지는 도토리 꿈을 꾸고, 거위는 옥수수 꿈, 닭은 좁쌀 꿈을 꾼다.'는 말이 생긴 것도 꿈이 소망의 반응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꿈같이 아름답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꿈속에서 무슨 짓을 하건 타인에게는 무슨 상관이랴.
나이가 들어 할 일이 없어지니까 쓰잘데없는 기억이나 들추어내어 문제를 야기하고 속상해 한들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 무엇 있겠나. 그런 기억들이란 망각 속으로 집어던지고 같은 기억이라도 추억이라는 말로 미화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것을 윤색하여 다듬어 곱씹고 꿈속으로까지 가져가 즐긴다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백일몽이면 어떠랴. 의식 세계의 것이건 무의식 세계의 것이건 나 하나만의 정신세계에서 아무런 간섭없이 꿈의 경지를 즐긴다면 그 아니 즐거울 것인가.
(2014. 8.15 동인지 <길>제15호. 如岡 金在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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