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지붕 위의 바이올린

如岡園 2015. 10. 8. 10:57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날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사상,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 또는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을 전통이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역사적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서 현재의 생활에 의미와 효용이 있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전통은 그나름의 입각 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방해당하는 것을 단연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러한 전통이 변질 소멸되고 있는 현상은 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다.

 전통의 문제를 생각하다가 보면, 노르만 주이슨 감독의 뮤지컬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이 대뜸 떠오른다.

 닭들이 울고 언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경사진 지붕 위에서 한 사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주인공 테비에의 입을 빌려 전통이 삶의 균형을 잡아감을 이야기로 노래로 엮어가는 오프닝 타이틀 때의 면장면, 해가 지고 촛불을 하나씩 든 사람들이 아나테프카 마을에 모여 치르는 큰딸의 유대인 전통혼례식 장면 등의 동영상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전통을 지켜 살아가는 유대인 유목민의 가난한 생활에서 엄격한 아버지와 세 딸의 결혼 문제로 빚어지는 갈등을 중심으로, 설 땅을 잃고 유랑하는 유대 민족의 애환을 그린 감동적인 뮤지컬이면서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수준 높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 바이올린 연주는 생존에 대한 은유이며 미래에 대한 상징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경사가 급한 지붕 위에서이다. 그것은 불안하고 고된 삶의 상징이며,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균형을 유지하며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통의 힘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주인공 테비에는 관객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네듯이 마을에 대해 설명하며 전통에 대해 노래한다.

 

 전통!

 우리들의 전통 때문에 우린 오랜 세월, 삶의 균형을 유지해 왔어요.

 여기 아나테프카 마을엔 모든 것에 대한 전통이 있죠.

 자는 것과 먹는 것이 전통, 일하는것에 대해서, 복장에 대해서 말이죠.

 우리는 머리에 모자를 쓰죠.

 여자들은 기도용 덮개를 걸치고 다니고요

 신께 대한 우리의 진심을 표현하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전통이 시작됐는지 궁금하다고요? 말해드리죠.

 나도 몰라요, 아무튼 전통이지요.

 또 이러한 전통 때문에 모두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신이 자신에게 뭘 바라는지도 알게 되지요

 밤낮으로 생계를 위해 뛰는 사람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집안 가장으로서의 권한을 가지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버지!

 (이하 생략)

 

 떠돌이 이방인의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신앙과 자부심으로 형성된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지금 우리는 격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리고 그 힘이 너무 커서 수많은 전통이 사태처럼 무너져 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겪는 불안, 갈등, 그리고 여기서 비롯되는 모든 사회적 문제들이 전통의 붕괴와 관계되는 것은 아닌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통이란 고착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 바로 변화의 뿌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기존 전통의 맹목적 수용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에 입각한 새로운 전통의 수립이 바람직한 것이다.

 전통에는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변해야 할 것과 변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런데 관점 여하에 따라서는 지켜야 할 것이 버려지고 변해서는 안될 것이 변해버리는 역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니, 관점의 경직에서 오는 분별력의 상실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전통의 수립 보존에는 필수적인 사항이 아닌가.

 집단이나 공동체의 표본이 되는 실체는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일 것이다. 이 중에서도 전통과 관련하여 직접 피부에 와 닿는 공동체는 가정이고, 가정에서의 일이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전통의 핵심을 이루는 관혼상제의 의식에서 부딪치는 갈등은 급변하는 시대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할 중대 과제다.

 관례라면 이미 전통에서 벗어나 존재 가치가 상실되고 이렇다 할 의식마저 치르지지 않으면서 성인의 자리로 들어서는 모양이지만, 혼례 의식은 신구 의식이 잡다하게 뒤섞여 경제적 낭비를 촉발하면서, 막상 백년가약의 신성한 약속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의식의 이행이 필수적이면서 그럴듯하고 확고한 전통의 수립이 아쉬운 것이 바로 이 혼례의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상례와 제례에 관련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더 절실한 문제디.

 효의 실행에 너무 철두철미했던 우리 사회에서 상례와 제례의 전통은 후세 사람들이 추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 복잡하다. 현실적으로 따를 수 없는 것은 과감하게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는 것은 반드시 고쳐가야 할 것이 상을 치르고 제사를 지내는 일일 것이다.

 전통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삶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전통은 안정된 삶의 기반이기에 전통의 붕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러나 삶의 양식이 변하면서 전통도 새로운 도전을 받게 마련이며 세대의 교체처럼 전통은 언제까지나 같은 방법으로 고수될 수가 없다.

 

 전통을 지키려 애쓰는 아버지와 세 딸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변화의 과정을 전통보다도 우선되는 인간 본연의 사랑을 통해 극복한다는 점이 남다르다. 여기서 바이올린의 연주는 그들의 삶을 암시한다. 위험천만인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으려면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이 균형을 유지해 주는 것이 바로 전통이라는 것이다.

 세 딸을 시집보내고 타지로 강제 이주하면서 달구지에 짐을 싣고 눈 내리는 진창길에 달구지를 끌고 떠나는 테비에의 마음에는 회한이 서린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는 이번에도 이 길을 따라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뒤따르는데 이것 또한 변혁을 암시하는 여운을 남긴다.

 전통이 자연스럽게 세로운 전통으로 변하는 과정은 감동을 준다. 전통은 변혁해야 할 낡은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정신적 소산인 것이다.

 새로운 전통의 수립에 대한 확고한 대책이나 의지도 없이 기존의 것을 거부하는 것이 혁신으로 착각하는 무지, 제 밥그릇에 담긴 콩보다 남의 밥에 있는 콩이 더 굵어 보이는 단세포적인 착시현상이 아름다운 전통을 망가뜨리지나 않는지?     (2015. 8. 15. 동인지<길> 제16호. 여강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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