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時風俗

四월 초파일

如岡園 2017. 5. 1. 23:23

  음력 四월 八일은 곧 석가모니의 탄신일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이날 등불을 켜므로 등석(燈夕)이라 한다.

 며칠 전부터 인가에서는 각기 등간(燈竿)을 세우고 위쪽에 꿩의 꼬리를 장식하고 채색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어 단다. 작은 집에서는 깃대 꼭대기에 대개 노송(老松)을 붙들어 맨다. 그리고 각 집에서는 집안의 자녀들의 수대로 등을 매달고 그 밝은 것을 길하게 여긴다. 이러다가 九일에 가서야 그친다. 사치를 부리는 사람은 큰 대나무 수십 개를 이어 매고 오강(五江; 서울 근교의 긴요한 나루가 있던 한강, 용산, 마포, 玄湖, 西江 등 다섯 군데의 강)의 돛대를 실어다가 받침대를 만들어 놓는다. 혹은 일월권(日月圈; 사월 초파일에 세우는 등대 꼭대기의 장식)을 꽂아 놓아 바람에 따라 그것이 눈이 부시게 돈다. 혹은 회전등을 매달아 빙빙 도는 것이 마치 연달아 나가는 총알 같다. 혹 종이로 화약을 싸서 줄에다 매어 위로 솟구치게 하면 활을 떠난 화살 같아 화각(火脚; 아래로 내려오는 불길)이 흩어져 내려오는 것이 마치 비가 오는 것 같다. 혹은 종이 쪽을 수십 발이나 되게 이어 붙여 펄펄 날리면 마치 용의 모양과 같다. 혹은 광주리를 매달기도 하고 혹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옷을 입혀 줄에 붙들어 매어 놀리기도 한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게에서는 등대를 높이 세우느라고 받침대를 다투어 높이 만들고, 수십 개의 줄을 펼쳐 놓고 '어기어차'하며 세워 올린다. 그 때 키가 작은 이를 사람들은 모두 빈정거린다.

 생각컨대 <고려사>에 "왕궁이 있는 국도(國都)로부터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월 보름에, 이틀 저녁을 연등(燃燈)하던 것을 최이(崔怡)가 4월 8일로 연등을 옮겨 갔다."고 했다. 그러므로 정월 보름 연등 행사는 본디 중국의 제도요, 고려 풍속에는 이미 없어져버렸다. 또 생각컨대 <고려사>에 "우리나라 풍속에 4월 8일이 석가의 탄생일이므로 집집에서 연등을 한다. 이날이 되기 수십 일 전부터 여러 아이들은 종이를 잘라 등대에 매달아 깃발을 만들고 성 안의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쌀이나 돈을 구하여 비용으로 쓰니 이를 호기(呼旗)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금 풍속에 등대에 기를 다는 것은 '호기'의 풍속인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4월 8일에 행하는 것은 최이가 시작해 낸 것이다. 

 등의 이름에는 수박등, 마늘등, 연꽃등, 칠성등, 오행등, 일월등, 공등[毬燈], 배등, 종등(鐘燈), 북등, 누각등, 난간등, 화분등, 가마등, 머루등, 병등, 항아리등, 방울등, 알등, 용등, 봉등, 학등, 잉어등, 거북등, 자라등, 수복등(壽福燈), 태평등(太平燈), 만세등, 남산등(南山燈) 등이 있는데 모두 그 모양을 상징하고 있다.

 등을 만들 때 종이로 바르기도 하고, 붉고 푸른 비단으로 바르기도 한다. 운모(雲母)를 끼워 비선(飛仙)과 화조(花鳥)를 그리기도 하고 평편한 면마다, 모가 진 곳마다 삼색의 돌돌 만 종이나 길쭉한 쪽지 종이를 붙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펄럭이는 모습이 매우 멋이 있다. 북등[鼓燈]에는 장군이 말을 탄 모양이나 삼국의 고사(故事)를 그렸다. 또 영등(影燈)안에는 선기(鏇機, 갈이틀)를 만들어 놓고 종이를 잘라 말 타고 사냥하는 모습이나 매, 개, 호랑이, 이리, 사슴, 노루, 꿩, 토끼, 모양을 그려 그 선기에 붙인다. 그러면 바람에 의하여 빙빙 도는데, 밖에서 거기에서 비쳐나오는 그림자를 본다.

 생각컨대 동파(東坡 蘇軾)의 <與吳君采書>에 "영등(影燈)을 아직껏 보지 못하다가 이에 보니 어떠한가, 한 번 보매 <삼국지>같은가"하였으니 여기서도 삼국의 고사를 그림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또 생각컨대 범석호(笵石湖; 成大)의 <上元紀吳中節物俳諧體詩>에 "그림자를 회전하니 탄 말이 종횡으로 달리누나"라 하고, 그 주(註)에는 '마기등(馬騎燈)'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대체로 송나라 때부터 이미 이런 제도가 있었다.

 시내의 등 파는 집에서 파는 등은 천태만상으로 오색이 찬란하고 값이 비싸며 기이함을 자랑한다. 종가(鐘街;현 종로)에는 이 등들을 보려고 사람들이 담벼락같이 몰려선다. 또 난조(鸞鳥), 학, 사자, 호랑이, 거북, 사슴, 잉어, 자라 모양의 등과 선관(仙官) 선녀가 말 탄 형상의 등을 만들어 팔면 여러 아이들은 다투어 사 가지고 장난하며 논다. 연등회 날 저녁에는 전례에 따라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된다. 온 장안의 남녀들은 초저녁에 남북의 산기슭에 올라가 등 달아 놓은 광경을 구경한다. 혹 어떤 이는 악기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며 논다. 그리하여 서울 장안은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불의 성을 만든다. 그렇게 떠들썩하기를 밤을 새워서 한다.

 장안 밖의 시골 노파들은 서로 붙들고 다투어 와서 반드시 남산의 잠두봉(蠶頭峰; 남산 서쪽에 있는 봉우리. 바위로 되었는데 누에 머리와 같으므로 蠶頭란 명칭이 생겼다. 속칭 加乙頭 또는 龍頭峰이라고도 하였음)에 올라가 이 장관을 구경한다. 

 아이들은 각각 등대 밑에 석남(石南)의 잎을 넣어서 만든 증편과 볶은 검은콩과 삶은 미나리나물을 벌여 놓는다. 이것은 석가 탄신일에 간소한 음식으로 손님을 맞이해다가 즐기는 뜻이라 한다. 

 또 물동이에다가 바가지를 엎어 놓고 빗자루로 두드리면서 진실하고 솔직한 소리를 내는 것을 수부희(水缶戱;물장구)라 한다.

 생각컨대 장원의 <隩志>에 "서울 풍속에 부처의 이름을 외는 사람은 문득 콩으로써 그 수를 헤아린다. 그랬다가 4월 8일 석가모니 탄신일에 이르러 그 콩을 볶는데 소금을 약간 쳐서 길에서 사람을 맞이해다가 먹여서 인연을 맺게 한다."고 하였다. 지금 풍속에 콩을 볶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생각컨대 <帝京景物略>에, "음력 정월 보름날 밤, 저녁부터 새벽까지 아이들이 북을 치며 보내는 것을 태평고(太平鼓)라 한다."고 했다. 지금 풍속의 물장구가 태평고의 뜻이요, 부처의 탄일이 등석(燈夕)이므로 정월 보름에서 4월 8일로 옮겨진 것이다.   ......<東國歲時記> 참조


東國歲時記: <동국세시기>는 우리나라 연중 행사 및 풍속을 설명한 책으로 저자는 홍석모다. 그는 조선조 정조 순조 때 학자로 중국 종늠의 <荊楚歲時記>를 모방하여 동국세시기를 지었는데 정월부터 12월까지 1년간의 행사, 풍속을 23항목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어느 날의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은 月內라 하여 그 달 안의 끝에 몰아서 설명했다. 그리고 맨 끝에 윤달에 관계되는 것도 실었다. 이왕의 민속을 해설한 책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세밀하나 당시의 추세가 그렇했듯이 慕華思想에 젖어 우리 민속의 기원을 중국의 풍속에서 찾고 있는 것이라든지 저작 당시(1849년) 이미 없어진 민속도 마구잡이로 실어놓았다는 흠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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