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時風俗

설, 설날의 풍속

如岡園 2020. 1. 17. 22:34

 설날을 歲首(세수), 年首(연수), 元旦(원단)이라고도 하는데 한해의 첫날이라는 뜻이다. 근신하여 경거망동한 언행을 삼가야 되는 날이라 하여 愼日(신일)이라고도 한다. 새해의 첫날부터 잘못되면 그 해의 운수가 불길하기 때문에, 정결한 몸가짐과 근신하는 자세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설날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설빔을 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는 일이다. 차례는 원근의 자손들이 宗家(종가)에 모여 사대조까지 지내며, 그 순서는 윗대부터이다. 祭需(제수)는 일반 忌祭(기제)와 다를 바 없으나, 다만 '메'는 짓지 않고 떡국을 올리는 것이 원칙이다. 설날에 차례를 지낸다는 것은 조상을 섬기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이다.

 차례가 끝나면, 제사에 참례한 사람의 항렬 순으로 새해 인사를 하는데, 이를 歲拜(세배)라 한다. 절을 하면서 서로 축복하는 인사말도 주고 받는데, 이를 德談(덕담)이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歲饌(세찬)을 먹는다. 북부지방에서는 만두국을 먹는 풍습이 있지만, 주로 떡국을 먹는 것이 예사이다. 세찬과 더불어 祭酒(제주)로 사용한 청주나 탁주 등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를 歲酒(세주)라 한다.

 다음 차례가 省墓(성묘)이다. 이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로 조상의 묘에 가서 알리는 행위이다. 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설 당일에 성묘를 하지 못할 경우 초닷새까지 하면 된다. 

 성묘가 끝나면 동네 이웃 어른에게 세배를 드린다. 祠堂(사당)이나 殯所(빈소)가 있는 집인 경우 먼저 그 곳부터 인사를 한 다음 웃 어른에게 세배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편, 앞으로 한 해 동안 무병 건강하고 집안의 액운을 쫓기 위한 여러 형태의 주술적 의식이 설날에 많이 행해진다. 

 옛날 대궐에서는 한 장수는 도끼를 들고 한 장수는 節(절)을 들게 한 金(김), 甲(갑) 二將軍像(이장군상)이나, 붉은 도포와 검은 紗帽(사모)를 한 형상을 圖畵署(도화서)에서 그려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가 하면, 鐘馗(종규)라는 귀신이 疫疾(역질) 귀신을 잡는 형상이나 귀신의 머리 형상을 그려 대문에 붙이기도 하였다. 이를 門排(문배)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액운과 질병이 물러간다고 한다. 속설에 의하면 金將軍(김장군)은 당나라의 蔚遲公(울지공)이고 甲將軍(갑장군)은 秦(진)의 叔賓(숙빈)이며, 검은 사모를 한 사람은 당나라의 魏徵(위징)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일반 민가에서는 닭이나 호랑이의 그림을 벽 위에 붙여 액이 물러가게 하였다고 한다. 닭을 그린 것은 중국 풍속의 영향이고, 호랑이를 그리는 것은 정월이 호랑이 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이기 때문에 닭이 울면 잡귀들이 사라진다는 관념에서, 그리고 호랑이는 陽性(양성)을 가진 동물로 逐鬼(축귀)의 의미뿐만 아니라  무서운 맹수로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악귀들이 무서워할 것이라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남녀가 일년 동안 빗질하다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설날 밤 문 밖에서 불에 태우는 풍속이 있다. 머리카락이 타는 臭氣(취기)는 지독한 것으로, 사람이 싫어하는 냄새는 귀신도 싫어할 것이라는 관념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 하겠다. 이는 禳鬼法(양기법) 중 五感法(오감법)에 드는 풍속이다. 오감법이란 鬼(귀)의 性情(성정)을 이용하여 귀가 싫어하는 色彩(색채), 香臭味(향취미), 觸感(촉감), 光明(광명) 등으로 잡귀를 쫓는 嫌忌的(혐기적) 방법을 말한다.

 설날 밤이 되면 집안 식구의 모든 신발을 감추는 습속이 있다. 이는 신을 夜光鬼(야광귀)에게 도둑맞지 않기 위함이다. 설날 밤에 하늘의 夜光鬼(야광귀)가 내려와서 人家(인가)에 들어와 신발을 보고 자기 발에 맞는 것이 있으면 신고 가는데, 이때 신발을 야광귀에게 도둑맞은 사람은 그 해의 운수가 나쁘다고 한다. 이에 참대나 말총 등으로 만든 체를 마루 벽이나 뜰에 걸어 두기도 한다. 이는 귀신이 와서 체 구멍을 헤아리느라고 아이들 신 훔칠 생각을 못하고  첫 닭이 울면 도망가 버린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설날에는 사람 중에 三災(삼재)를 당할 운명이 있을 경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주술적 행위를 한다. 三災(삼재)란 水災(수재), 火災(화재), 風災(풍재) 또는 兵亂(병란), 疾病(질병), 饑饉(기근)을 가리킨다.

 삼재법이란 己(기), 酉(유), 丑(축)의 사람은 亥(해), 子(자), 丑(축)에 해당되는 해에, 申(신), 子(자), 辰(진)생의 사람은 寅(인), 卯(묘), 辰(술) 난 사람은 申(신), 酉(유), 戌(술)이 되는 해에 삼재가 든다는 것이다.

 9년마다 삼재가 삼년 동안 계속하여 드는데 三災運(삼재운)이 든 첫 해를 들삼재, 둘째 해를 누울삼재, 세째 해를 날삼재라 하며, 가장 불길한 것은 들삼재이다.

 삼재가 드는 삼년 간은 매사에 근신하여야 하며, 卜說風俗(복설풍속)을 믿는 사람은 세 마리의 매를 그려 재앙을 막는다고 한다. 경남지방에서는 큰방의 문 위 벽에 삼부주(朱墨으로 머리가 셋인 매를 그린 것)를 붙여 재앙을 예방한다는 풍습이 있다. 매를 그려 붙이는 것은 매가 猛禽(맹금)이고 북방계 shaman bird의 하나인 데서 僻邪力(벽사력)을 인정한 주술인 것 같다.

 부산 두구동지역에서는 삼재가 든 사람이 정월에 한 해의 액을 막기 위하여 절에 가 불공을 드리거나 그 사람의 옷을 가져다가 태우기도 하는데, 이때 옷 속에 삼재가 든 사람의 나이만큼 동전을 넣기도 한다. 그리고 마른 북어의 입에 10원짜리 동전을 물려 실로 꽁꽁 묶은 뒤에 불에 태우는 풍습도 있다. 

 설날에는 여러 가지 占法(점법)으로 그 해의 운을 알아보는 풍습이 많다. 섣달 그믐 저녁에 수숫대를 반으로 쪼개어 그 한 쪽 안에 콩이 들어갈 만한 자리를 오목하게 파서 콩을 넣고 두 쪽의 수숫대를 합쳐서 실을 동여맨다. 이때 미리 정월부터 섣달까지의 콩을 정해 둔다. 이를 방안에 두었다가 설날 아침에 내어 콩의 불은 정도를 보고 每月(매월)의 강수량을 점치기도 하였다. 벼를 가마니마다 일정한 모양으로 똑 같이 떠내서 섣달 그믐날 물에 담갔다가 큰방의 祖靈(조령)을 모시는 윗목에 두었다가 설날 아침에 각각 무게를 달아서 가장 중량이 많은 것의 가마니에 든 벼를 그 해의 씨나락으로 뿌린다고 한다. 정초에 복조리 장수가 오면 吉兆(길조)이고, 엿장수가 오면 凶兆(흉조)라 여겨, 복조리 장수가 다른 마을보다 먼저 와야 그 마을이 무시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한다. 설날 아침에 楸子(추자)를 깨물어서 그 속이 썩지 아니하였으면 그 해의 운수가 좋다는 속신도 있다. (정상진. '우리 民俗과 傳統文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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