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해서 나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이 있는가?" 대개 고통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당치 않은 생각이다. 도리어, "왜 나는 이만큼 평안하게 살 수 있는가?" 그것을 의심하는 것이 좋다. 사람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다 고통이 있다. 당신의 고통은 인류가 힘을 합쳐서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 속에서 당신에게 배당된 극히 조그마한 몫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자기만 특별 대우를 받고 괴로움이란 세금을 모면하기를 바라는가! 당신은 천국에 세금을 면제 받을 어떠한 자격이 있단 말인가! <아그네스 고왈즈>
사람은 죽은 뒤에 비로소 평등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부터 이미 괴로움에 대하여 평등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괴로움은 우툴두툴한 땅을 평평하게 미는 롤러와 같이 이 세상의 높고 낮은 것을 이미 밀어 놓고 있다.
돈 있는 사람이 언제나 괴로움이 없다면, 가난한 사람은 하늘에 대해서 크게 원망을 할 일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돈 있는 사람이 모르는 괴로움이 있듯이, 돈 있는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이 모르는 괴로움이 있다.
똘스또이는 자기의 얘기를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아내는 성품이 좋은 미인이었고, 아이들은 다 좋은 아이들이었고, 재산은 충분하여 저절로 늘어가고, 내 자신은 뛰어난 재주와 건강한 체력을 가졌으며, 사람들에게서 다대한 존경과 칭찬을 받고 명성은 천하에 떨쳐 있다......"
세상에 이만큼 행복한 조건을 갖춘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똘스또이는 언제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고심참담(苦心慘憺)하며 스스로 억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아그네스 고왈즈>
괴로움을 모르고서는 어떤 사람도 숭고한 인물이 될 수 없다. 괴로움은 숭고한 영혼을 만든다.
괴로움에 견딜수록 인격의 얕고 천한 것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사상과 감정과 의지가 순화(醇化)되어 고상하고 의연(毅然)한 자세를 갖게 된다. <세네카>
사람에게 가장 나쁘게 생각되는 고통은, 어느 의미에선 가장 좋은 것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고통이야말로 사람을 참다운 행복으로 인도해 주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고통을 건너서만 사람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빠스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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