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젊은날의 비망록에서(22)

如岡園 2020. 7. 20. 15:14

1963年 7月 10日, 비

 또 짖꿎은 비가 내린다. 쓸데없는 비다. 아무튼 금년은 비가 흔하고 民生苦도 그 極을 달리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天災의 變은 人力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고 이것을 인간의 노력으로써 최소한의 피해로 모면해 가는 데에 注力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오늘은 俸給날! 허나, 大部分이 俸給額이 훨씬 넘는 외상값이 당구장에서, 주보에서, 구매권에서 넘어왔다. 타당한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단하루 외출비도 안 되는 봉급을 가지고 한 달의 生活費를 써 가자니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단체생활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기율을 세워가기 위해서는 무제한의 방임은 禁物이다.

  반장, 반부, 선임자로부터의 혹독한 주의가 있었다. 다음 달부터는 一切의 외상거래가 없을 것을 다짐하곤 좋게 해산되었지만, 위에서의 제재가 가해지기에 앞서 우리들 스스로의 自肅이 있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원진이가 와서, 같이 BX에 가 봉급날의 기분을 十分 살렸다. 흥성한 식품판매부의 거래광경이 어쩜 병영생활의 어느 一端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야릇한 感懷가 어려왔다.

 취침시간이 지났는데도 일찍 잠이 오질 않아 관물통 안에 호롱불을 밝혀놓고 思念을 달린다.

  창밖은 궂은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무엇이 그리 바쁜지 군용 G.M.C의 엔진소리가 비소리에 섞여 내닫는다. 이런 시간 조용히 周熙의 편지를 음미해 본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변명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純粹한 友情이 빚어낸 야릇한 결과인 듯도 하다. 그렇지만 그걸로 해서 그와 나의 오랜 友情을 흐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여동생 관계의 일은 모두 白紙로 돌려버리고 더욱 親交를 투터이 하는 것이 나의 道理이다.

  그들의 희망을 들어주지 못하는 나에게도 友情에 忠實치 못하는 잘못이 있는 것이고 그녀의 애탄 希願이 여지없이 무시당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것은 값싼 同情으로, 그로 인해 내 人生을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는 없는 것.

  좀 더 생각해 보고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결정을 지우자. 그 동안에 다른 길을 그녀대로 찾아서 간대도 나는 뉘우치기 보담은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코 깨끗이 머릿속에서 잊을 것이다.

 

1963年 7月 11日. 갬

 욕망으로 가득차 흐려진 동공을 응시한다. 너무 보잘 것 없는 인간이다. 平凡해서도 안된다. 나는 좀  더 偉大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애써보지도 않고서 주저앉아버린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권태롭다는 것은 너무 화사로운 소리다. 그런 無價値한 여유스런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끊임없이 진전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는 倦怠란 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만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채 强하게 무엇을 欲求한다는 것. 정말 망칙스런 마음뽀다.

  허욕에 들떠 안달하기 전에 위선 성실해질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1963年 7月 12日. 金曜日 맑음

 밝은 태양, 맑고 푸른 하늘. 싱그런 녹음이 좋다. 그 속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여울져 흐른다면 더욱 좋다.

 

1963年 7月 14日. 日曜日 맑음

 軍隊生活의 年輪이 쌓여가고 좀더 세련된 군인이 되어갈수록 社會와는 동딴  個性의 自己를 發見한다. 이런 自身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멸감과 비굴감으로 큰소리도 못하고 자기 자신을 가늠하지도 못하는 일그러진 모습의 自身이 얼마나 처량하게 느껴졌는지!

 일푼이라도 남의 혜택을 입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人情으로 糊塗된 것이라도 그렇다.

  見性寺! 나는 人情이란 달콤한 미끼에 걸려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도 나의 一方的 엉뚱한 생각일까? 차라리 외면적으로라도 매정해진다면 아무리 약한 자기일망정 거길 기어들지는 않을텐데......

  아무래도 인박힌 의뢰의 마음을 버리고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겠다. 분명코 나의 本意가 아니면서도 현실의 자신을 가늠하질 못하겠다는 말이다.

 

1963年 7月 19日. 金曜日 맑음

 13 日 間의 휴가를 얻었다. 직장인도 아닌 군인의 신분으로, 고향에도 자주 찾아드니 면구스럽고 재미도 적다. 쪼들리는 집안 살림살이를 눈앞에 볼 때마다 초조감이 앞을 선다. 병역의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는 것이 시급한 일인데...

 

1963年 7月 22日 月曜日 맑음

 밭에 토마토가 한창 익어 따 내었다. 굵고 탐스러워 품질이 좋은 편이었지만 묘종을 잘못 길러서인지 시드럼병에 걸려 죽는 나무가 있고, 열매째로 썩어 떨어지는 게 많다. 아버지는 농삿일에 너무 무관해서 탈이다.

 오후엔 유호연이 낚싯대를 들고 와서 고기 잡으러 가자길래 같이 弄月亭엘 갔다.

 나는 낚시질엔 門外漢이어서 목욕이나 할 셈으로 막내동생 경환이를 데리고 땀을 찍찍흘려가며 그 먼 길을 걸어서 올라갔던 것인데, 막상 가서 보니 맑은 물, 싱그런 산바람, 하얀 돌멩이, 너럭바위가 정녕 좋았다.

  오래 고향산천을 떠나 있다가 모처럼 찾아와서 그 아름다움을 대할 때, 새삼 그 가치를 높이 인정할 수 있었고 재삼 탄복을 할 지경이었다.

  강물에 목욕하고 따스한 반석에 등을 대고 사방이 산에 둘러싸인 파아란 하늘에 눈을 두어 사색을 달리곤 하면 실로 마음이 살찌는 것만 같다. 

 

1993年 7月 23日. 火曜日 맑음

 닭들이, 덥고 물벌레가 많은 닭장을 싫어하고 감나무에 올라가서 잠자리를 보고는 하여 水稻用 二化螟蟲 殺蟲劑 E.P.N을 살포했다. 방이랑 변소랑 소 외양간이랑 골고루 약을 치고 나니 위선 마음부터 거뜬한 것 같다. 웅덩이와 풀숲이 많은 이 마을은 유별히 밤마다 날벌레가 많았다.

  휴가를 나온 터라 몹시 한가하다. 소설책을 뒤적이며 오전을 보냈다. 그대신 오늘은 집을 찾아온 손님이 많다. 감나말 할아버지가 오셨고, 정섭이 형이 왔다. 영보랑 경호가 와서 토마토를 포식하고 갔고.

 저녁엔 바람이 시원하다. 조각달이 잠간 서녘 하늘에 비치다 지고, 밤하늘엔 온통 별이 쏟아질듯 총총하다. 밭에를 갔던 것 뿐 하루종일 집울타리 안에서 맴돌은 처지이니 갑갑하다.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도 신통한 수가 없을 것 같아, 읍내 누님집엘 갔다가 영은이와 어울려 라디오를 몸살나게 틀어댔다. 공회당에선 '주유천지'란 영화를 상영 중이고, 또 숱한 영화팬들이 자리를 메꾸고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T의 姉妹를 만났다. 별 신통한 이야기거리가 없었는데도 추억어린 옛 感懷가 서려들었다. 속절없이 쫓아가는 歲月의 威勢 앞에서 지난날을 아쉬워하는 한 人生의 情感이란 무엇인가!

 밤이 깊었다. 1時 15分 前, 앞 논 개구리가 밤을 새워가며 귀따갑게 울어대고, 주무시다가 나의 인기척에 잠을 깨신 어머니가 토마토를 내어다 주신다. 어머니의 姿情이 눈물겹다.

 나의 人間像을 종잡을 수가 없다. 무엇이 되어야 할까?

 

1963年 7月 25日. 木

 밤- 천둥, 번개, 호우. 잠이 깨었다. 까닭 모를 切迫感이 업습해 와, 千崖 萬崖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되어진다.

 

1963年 7월 26日. 金

 執念을 잃은 텅 빈 마음. 룸팬을 닮아가는 한심스런 自我. 나를 큰 希望으로 알고 살아온 父母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정녕 하나의 큰 反省이 있어야 될 것만 같다. 

 

1963년 7月 30日.

 밤 2時 15分. 못다한 젊은 청춘의 몸부림이 있다.

 

1963年 7月 31日.

 離鄕. 微笑. 肉情. 歸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