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欲의 七諭
붓다가 阿惒那(아파나)라는 마을에 들렀다. 그때, 哺多利(포다리야)라는 居士(집에 있는 남자의 칭호. 長子 등을 부르는 호칭. 在俗의 信者를 일컬음)가 소요하다가 붓다가 휴식하고 있는 숲에까지 왔다.
포다리아는 벌써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 세상사를 버린 隱者의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붓다는 그에게 참으로 속세를 떠나는 길이 무엇인가를 說破하여 歸依 시켰다.
그 설법 중에서 붓다는 욕망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했다.
"居士여, 그것은 흡사 乾草로 만든 홰를 가지고 바람을 향해 나가는 것과 같다. 居士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에 그 사람이 곧 그 횃불을 내던지지 않으면 그 불길은 그 사람의 손을 태우고 그 사람의 팔을 태울 것이다.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신체마저 태워, 그 삶은 죽을 고생을 치루어야 할 것이다." "世尊아, 말씀대로 그럴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제자들은 늘 이렇게 생각는다. <욕망은 乾草로 된 홰에 비유된다. 苦 됨이 많고, 번뇌가 많다고 世尊이 말씀하셨다>고. 이와같이 그들은 욕망의 眞相을 있는대로 바로 보고 세존의 利得에 대한 집착을 남김 없이 버리는 것이다."
붓다는 다시 이와같은 비유를 했다.
"거사여, 어느 마을 변두리에 무성한 숲이 있고, 거기에 한 그루 과수엔 잘 익은 과일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런데 거기에 어떤 사내가 와서 그 나무를 바라본다. 그러나 아직 열매는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딴다. 그곳에 두번째의 사내가 나타나 그 사내 역시 과일을 따고자 한다. 그러나 두번째의 사내는 나무를 탈 수가 그것을 베어서 과일을 가지려 한다. 자, 거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첫번째의 사내는 재빨리 나무를 내려오지 않는다면 과수가 베어지는 바람에 심한 봉변을 당하지 않을 수 없겠지."
"세존아, 말씀대로입니다."
"그래서 나의 제자들은 언제나 <욕망은 과수에 비유된다. 고됨이 많고 번뇌가 많다고 세존이 말씀하셨다.>고 뇌이면서 欲望의 모습을 관찰하고 世俗의 利得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와같은 욕망의 비유가 哺茶利經에는 일곱 번이나 설파되어 있는데, 이것을 '欲의 七喩'라고 해서 예로부터 유명하다.
# 三毒
사위성 교외엔 유명한 祇園精舍 외에도 몇 개의 精舍(절)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위성 동쪽 녹자모(미가라마아다)가 특히 유명했다. 붓다가 녹자모에 있을 때, 여늬날처럼 아침 일찍 위의를 갖추고 城內로 들어가 托鉢을 했다. 그때 한 파라문이 붓다에게 다가왔다. 舊敎의 파라문들이 신흥종교인 불가의 僧伽들을 멸시하는 모습은 佛經의 도처에 보이는 바지만, 이때의 파라문도 붓다를 모멸하기 위해 다가온 것만은 사실이다.
다가온 파라문은 목청을 다하여 붓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지만 붓다는 平然히 托鉢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를 보자 그는 더욱 성이 나서 부근의 흙을 줏어 붓다에게 내어 던졌다.
그때, 一陣의 바람이 붓다쪽으로부터 그에게 불었다. 내던진 흙은 도루 파라문의 면전으로 날라왔다.
당황하여 허둥대는 그를 이윽히 바라보며 붓다는 말했다.
"만일에 사람이 까닭없이,
惡語를 내뱉고 怒罵를 퍼부어
淸淨無垢한 者를 더럽히려 하면
그 惡이 도리어 자기에게 돌아가나니
흙을 쥐고 남에게 던지면
바람에 날려 도리어 자신을 더럽히노라."
붓다의 이 말씀을 듣자 그는 문득 자신으로 돌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세존아, 제가 지나쳤습니다. 세존의 면전에 이와 같은 惡語를 던지다니 저의 어리석음을 꾸짖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붓다의 가르침을 받고 기꺼이 돌아갔다.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이것은 貪, 瞋, 癡의 三毒이라고 해서 불교도의 일상생활에서는 이것을 떨치기 위해 주야로 노력했다.
이 중에서도 노여움을 버리기(瞋恚)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한번 노여움에 빠지면 積年의 功德도 일거에 무산되고 만다.
# 노여움의 敎訓
붓다가 王舍城 교외의 竹林精舍에 있을 때였다. 그곳에 한 파라문이 격노하여 달려왔다. 그의 同族 중의 한 사람이 붓다에게 출가하였다 해서 격노한 것이다.
붓다는 그가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금 가라앉는 기미를 보자 그에게 물었다.
"파라문아, 그대 집에도 때로는 내방하는 손이 있을 테지."
"물론이다. 瞿曇아."
"파라문아, 그때엔 음식을 대접할 때도 있을 터이지."
"구담아, 물론이다."
"파라문아, 만일 그 때 손님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먹지 않고 둔다면, 그것은 아직 나의 것이 될 수 밖에 없지."
붓다는 이에 그를 이윽히 쳐다보고 말했다.
"파라문아, 오늘 그대는 내 앞에서 가진 욕설을 퍼부었지만 나는 그것을 바라지 않아. 그러니까, 그것은 아직 그대의 것이 될 수 밖에 없어. 파라문아, 만일에 내가 욕을 먹고 욕을 도루 한다면 그것은 주인과 손님이 식사를 함께 하는 것과 같아. 그렇지만 나는 그런 음식은 싫다네."
이리하여 붓다는 그를 위해 다음과 같은 偈를 불렀다.
노하는 사람에게 노여워하는 것은
나쁜 일임을 알아야 하느니.
노하는 사람에게 노여워하지 않는 사람은
두 개의 승리를 얻느니라.
他人의 노여움을 알고
정념으로 자신을 진정하는 자는
훌륭히 자신에게 이길 뿐 아니라
또한 타인에게도 이기는 것이니라
이렇게 가르침을 받은 파라문은 그 역시 붓다에게로 出家해서 마침내는 阿羅漢(Arahant의 音譯. 공양을 받을 만한 者의 뜻. 聖者을 일컫는 말.)의 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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