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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無常(붓다의 후반 이후)-<1> 夏安居의 노래/名利는 나를 파멸시킨다

如岡園 2022. 10. 18. 22:13

          # 夏安居의 노래

 

붓다가 사위성 교외의 鹿子母精舍에 있을 때였다. 마침 그날이 夏安居(Vassa의 譯. 雨安居라고도 한다. 비구들이 4월 15부터 7월 15일까지 雨期동안 외출을 않고 靜坐修行하는 규정을 일컫는 말)최후의 날인 7월 15일이어서 그날 밤은 성대한 自恣의 의식이 행해졌다. 自恣란 3개월에 걸친 安居의 생활 끝에, 안거를 함께 한 비구들이 모여 각자 스스로 자신의 죄라든가 잘못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동료들에게 청하는 단순하나마 아름다운 의식이다.  먼저 붓다가 비구들 앞에 합장하고 自恣의 격식을 행했다.

 "비구들아, 나는 지금 스스로 나아와 청하노니 그대들은 나의 행위와 언어에 무언가 비난할게 있으면 지적해 주게."

 모두들 가만히 있었다. 舍利佛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세존아, 아무도 세존에게 비난할만한 점을 찾아낸 자가 없읍니다."

 그리하여 다음은 사리불의  차례, 그도 역시 붓다와 같이 自恣의 말을 외운다. 역시 아무도 그의 과오를 지적하는 이가 없다. 붓다가 일어나 그의 결백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이렇게 하여 500인의 비구가 차례차례 自恣를 행했지만, 누구 하나 비난을 받은 이가 없었다.

 그때 봔기사(婆耆沙)라는 속세에 있을 때에 시를 잘 한 비구가 감개 어린 얼굴로 붓다 앞으로 나아왔다.   "세존아, 저에게 詩想이 떠올랐습니다."

 "봔기사여, 그렇다면 그걸 발표하게나."

 그때 그가 읊은 偈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 이 밤 十五夜,

身口意(인간의 행위를 불가에서는 신체적인 행위 뿐 아니라 입으로 하는 언어, 마음으로하는 思考까지 포함시켜 생각한다. 이것을 三業이라 한다.)의 맑음을 위해,

지금까지 500의 비구 모였나니.

모든 번뇌의 미혹을 떨치고 다시는 어리석은 삶을 되풀이 않는 聖者되었네.

그들은 모두 世尊의 아들, 法의 嗣子, 여기에 無用의 辯을 쓰는 자는 없네.

이제 渴愛의 화살을 뽑아낸 이들. 여기에 붓다인 世尊을 敬稱하노라."

 

          # 名利는 나를 파멸시킨다

 

  提婆達多(데바닷다)의 반역은 붓다의 생애에 있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는 붓다와 같은 釋伽族으로 붓다의 從弟라고도 한다. 붓다의 盛名을 듣고 阿郡律(아누룻타)나 阿難(아난타), 優婆離(우파리)등, 나중에 유명한 제자가 된 사람들과 같이 출가하여 붓다에게 몸을 던졌지만 후에 마가다國의 阿0世왕자의 귀의를 얻고서는, 붓다의 후계자로서 불교교단을 이끌려는 야심을 품게 되었다.

 그 무렵, 붓다는 잠시 서쪽의 코오산비, 고시다園에 가 있다가 오랜만에 왕사성으로 돌아와 죽림원에 들어갔다. 많은 제자들이 붓다를 뵈러 와서는 이런 말을 일러 바쳤다.

 "大德아, 저 阿0世왕자는 아침저녁으로 5백채의 수레에 음식을 싣고 와 提婆達多를 供養하고 있습니다." "비구들아, 제파달다의 명성이나 利養을 부러워해서는 안된다. 그가 얻은 명성이나 利養이란 결국은 그를 해치고 파멸로 이끌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파초는 열매를 맺으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한다고 한다. 또 대나무는 열매가 나면 시든다고 한다. 그리고 노새는 새끼를 배면 죽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와 같이 제파달다는 명성과 利養을 얻어서 자신의 轉落을 초래할런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얼마 뒤 붓다가 많은 會衆에 둘러싸여 설법을 하고 있을 때 제파달다가 나서서 말했다.

 "세존아, 이제는 연세가 높으셔서 몸도 쇠약해지셨습니다. 이제는 여생을 즐기시고 敎團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요."

 붓다는 그 말을 거부했다. 제파달다는 두번 세번 강청했다. 붓다는 마침내 날카로운 말로서 그를 물리쳤다. 그로부터 제파달다는 반역의 마음을 품게 되었고 그의 轉落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