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유기선납(柳器善納) /시인자벽(詩人字癖)

如岡園 2024. 3. 5. 19:48

                 # 유기선납(柳器善納, 유기그릇을 잘 납품하다)

 

 금재 이장곤이 연산조에 문과 교리였더니, 연산의 의심을 입어 다시 붙잡히게 된고로 도망하여 함흥에 들어갈쌔 행로에서 심히 갈증이 나는데 우물가에 물을 긷는 처녀가 있거늘, 한 표주박의 물을 구한즉, 그 여인이 바가지를 들어 물을 담은 후에 버드나무 잎을 따서 물 위에 띄워 주거늘, 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으니, 여인이 가로되, 

 "갈증이 심하여 급히 마시오면 체하실까 하여 그리 하였습니다."

 장곤이 놀래어 물어 가로되,

 '네가 뉘집 딸이뇨?"

 대해 가로되,

 "건너편의 유기장이 집 딸입니다."

 따라가 그 집에 가서 사위가 되어 몸을 의탁하니, 서울의 귀한 객으로 어찌 유기를 만들줄 알리오.

 다뭇 나날이 낮잠자기로 일을 삼거늘 유기장이의 부처가 노하여 꾸짖어 가로되,

 "내가 사위를 맞이함은 유기 만드는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다뭇 아침 저녁으로 밥만 축내고 주야로 잠만 자니, 곧 그야말로 밥주머니가 분명하도다."

 하고 이로부터 조석의 밥을 반밖에 주지 아니하였다. 그 처는 불쌍히 여겨 매양 솥 밑의 누룽지로써 더 먹게 하며, 이와 같이 수년의 세월이 흘러 갔었다. 중종이 반정하면서 조정에서 억울하게 죄얻은 사람들을 아울러 용서하며, 이 장곤의 관직을 복직시켜서, 팔도 방백에게 찾아라 하시니, 전하는 말이 자자하였다. 장곤이 약간 풍문을 듣고, 장인 장모에게 물어 가로되,

 "이번 관가에 다달이 바치는 유기는 제가 마땅히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하니, 장인이 가로되,

 "너와같은 낮잠만 자는 위인이 동서를 아지 못하고 어찌 관가에 상납하리오. 내가 친히 가서 드리더라도 매양 툇자를 당하는 처지에 얼토당토 않은 말은 하지도 말라."

 장모가 가로되,

 "한 번 시험삼아 보내 봅시다!"

 하여, 장인이 비로소 허락하더니, 장곤이 등에 유기를 지고 바로 관정에 들어간 후에 높은 소리로 가로되,

 "아무 곳 유기장이가 상납차 왔습니다.'

 한즉, 본관은 장곤과 일찍 상종해서 친하던 武辨이라, 그의 용모를 보고 크게 놀래 섬뜰 아래로 내려가 손을 잡고, 자리에 오르게 한 다음 가로되, 

 "공은 어느 곳에 자취를 숨기셨다가 이러한 모양으로써 오십니까? 조정이 찾는 지 이미 오랩니다."

 하여 술과 찬수와 및 의관을 주니, 장곤이 가로되,

 '죄를 입은 사람이 몸을 유기장이의 집에 의탁하여 삶을 도모하여 목숨을 이어오다가 뜻아니하게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되었도다."

 본관이 급히 巡營에 보고하여 곧 말을 하고 상경할 것을 재촉하니, 장곤이 가로되, 

 "유기장이 집에 삼 년 동안 主客을 정했으니, 마땅히 가히 돌아보지 아니치 못할 것이오. 겸하여 조강의 의가 있는지라. 이제 나가서  고별하리니, 바라건댄 그대는 내일 아침에 나를 찾아 달라."

 하고 장곤이 곧 유기장이 집에 돌아가서 말해 가로되,

 "이번 유기를 무사히 상납했습니다."

 하니, 장인이 가로되,

 "이상하도다. 옛말에 솔개미가 늙어 천년이 되면 능히 꿩 한 마리를 잡는다더니, 이것이 헛된 말이 아니로다. 오늘 저녁 밥은 한 숟갈 더 주어라."

 하거늘, 이튿날 아침 해뜰녘에 장곤이 일찍 일어나 낯씻고 뜰을 쓰니, 장인이 가로되, 

 "우리 사위가 유기상납을 잘 하고 오늘은 마당을 다 쓰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한데,

장곤이 뜰에 깔 멍석을 달라 하니, 장인이 가로되,

 "어째서 멍석을 까느뇨?"

 가로되,

 "오늘 사또가 우리집에 행차하리다."

 한즉, 장인이 냉소하여 가로되,

 "너는 꿈속의 소리를 하지 말라. 사또께서 어찌 우리집에 행차하신단 말이냐. 이제 생각해 보니 어제 유기를 잘 바쳤다는 것도 반드시 길가에 버리고 와서 헛되이 흰소리만 한 게 아니냐?"

하고 말할 때 그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본부의 上吏가 꽃자리를 가지고 헐떡거리며, 방에 들어와 펴면서 가로되, 

 "사또 행차가 방금 일어납니다."

 하니 유기장이 부처가 창황실색하여 울타리 사이에 숨어 피하였더니, 얼마 후에 길잡이의 "물럿거라'는 소리가 문가에 들리고, 본관이 당도하여 인사를 나눈 후에 이에 물어 가로되,

 "아주머니가 어디 계시오. 청컨댄 상견레로써 행하고자 하노라."

 장곤이 처를 불러 절하게 하니, 옷은 비록 남루하나 거동과 모양이 심히 안한하여, 상스러운 천한 여인의 모습이 없는지라, 본관이 공경하여 이르되,

 "이학사께서 궁도(窮途)에 계실 때 아주머니의 힘으로 이에 삶을 얻었으니, 비록 의기남아라도 이에 지남이 없겠도다."

 하여 유기장이를 명하여 불러 술을 내리고, 이웃 읍의 수령들이 연이어 와서 보매, 감사가 막객을 보내어 전갈하니, 유기장이의 문밖에 인마가 떠들썩하며 , 이를 구경하는 자가 인산인해라. 장곤이 본관에게 일러 가로되,

 "저가 비록 상사람이고 천하나 내가 이미 그에게 장가갔으니 버리지 못할지라. 원컨댄 한 개의 교자를 빌려 주면 함께 가겠노라." 

 본관이 그 말대로 한데, 장곤이 상경하여 임금께 사은하니, 임금께서 유리 걸객하던 전말을 들어시거늘, 장곤이 갖추어 그 일을 상주하니 임금께서 재삼 찬탄하시면서  가로되

 "이와 같은 여인은 가이 천첩으로 대우하지 못할지니라."

하시고 특히 후부인(後夫人)으로 승차시켰다.

 

                                                                      <蓂葉志諧>

 

 

            # 시인자벽(詩人字癖, 시인의 글자벽)

 

 尹潔은 시인인데 젊어서부터 질병이 없이 매양 시를 지을 적에 능히 病이란 글자를 붙여 보지 못하더니, 하루는 학질에 걸리매 이불을 끌어안고 오한에 떨면서 가로되,

 "이제로부터 나의 시에 가히 病 字를 두리니 다행이로다."

 한데, 듣는 자 이를 드러내 놓고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옛말에 이르되, 흰털은 꽃숲에 꺼리는 바이어서 , 詩에 들면 새롭고, 부귀는 世情에 기쁜 일이나 詩에 들면 더럽다 하니, 두 말이 믿을 만하도다. 病 字가 시에 들어가게 되매 무슨 신기함이 있으리오.

  杜詩에 가로되

 <학려삼추숙가인(瘧癘三秋孰可忍)/열병 삼년을 누가 있어 참으리오> 함은 子美(杜氏)의 괴로와한 바이라, 윤씨는 이를 즐거워하고, 병으로 다행함을 삼으니 이는 지나친 癖詩의 허물이라 할 것이다.   

 

                                                      <蓂葉志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