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순사반친(巡使反櫬)/오비장전(吾扉將顚)

如岡園 2024. 1. 18. 17:00

          # 순사반친(巡使反櫬, 순찰사의 면례 금장)

 

 한 순찰사가 장차 道內의 大村의 뒷산에 아비 무덤을 쓰려 하거늘 촌민이 걱정치 않는 자 없으니, 위세를 겁내어 입을 열어 말하는 자 없고, 나날이 으슥한 곳에 모여 앉아 함께 의논하기를,

 "순찰사또께서 만약 이 곳에 入葬하시면, 우리 대촌이 스스로 敗洞이 될 것이오. 누가 수백명이 양식을 싸 짊어지고 임금께 직소하거나 備局에 等狀하는 것이 어떠냐?"하고 紛紜(분운)할 때에 이웃에서 술 파는 노파가 이 소리를 듣고 웃으면서, 

 "여러분이 사또로 하여금 禁葬케 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니, 무엇이 그리 근심할 게 있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앞에 한 냥씩만 돈을 거두어 늙은 저를 주신다면, 제가 마땅히 죽음을 걸고 금장케 하리이다." 하니,

 여러 사람이

 "만약 능히 금하지 못한다면 어찌 하겠는가?"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원망치 않겠나이다." 하여,

 촌민 오륙백 명이 각각 한냥 씩을 거두어 주니, 그 돈이 수천 냥이었다.

 노파가 사람을 시켜 그 遷葬하는 날을 더듬어 알고 미리 한 단지의 술과 한 마리의 닭을 안주로 하여 길가에서 앉아 기다리다가, 감사가 산으로 오를 제 옆에서 합장 부복하여,

 "쇤네는 이미 죽은 옛 地官 아무개의 처 올시다. 곧 사또께서 大地를 구하여 바로 緬禮를 잡숫는단 말씀을 듣자옵고, 간략히 주효를 작만하여 하례를 드리고자 왔습니다."

 이때 前導下人이 禁逐할쌔 감사 펀뜻 地師의 아내란 소리를 듣고,

 "너는 어인 연고로 여기가 좋은 데라고 생각했느냐? 한즉 노파가,

 "쇤네의 남편이 살아 있을 때 항상 저에게 말씀하기를 이곳에 입장하기만 하면, 그 아들이 당대에 반드시 王侯가 되리라 하는 고로, 쇤네가 나이 비록 늙었으나 어찌 그 말을 잊으리오. 매양 이곳을 지날 때면 그저 빈산만 우러러 뵈었더니, 이제 사또께서 능히 이렇게 좋은 땅을 아시고 쓰시는 바에 어찌 또한 장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이른바 복많은 분이라야 吉地를 만난다 하였으니 이로써 하례 차로 왔습니다. 쇤네가 마침 늦게 자식이라고 하나 둔게 있사오니, 엎드려 원컨댄 일후에 거두어 써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이를 듣고 크게 놀라 사람으로 하여금 노파의 입을 막아서 보내며, 드디어 그 곳에 면례할 것을 단념하고 돌아갔다.

                  <禦睡錄>

 

          # 오비장전(吾扉將顚, 우리집 문짝도 장차 무너질까 두렵다)

 

 어느 고을 사또가 그 남편의 면상에 상처를 낸 여인을 잡아다가 볼기를 치면서 그 연유를 물은즉, 그 여인의 변명 가운데,

 "남편이 처를 돌보지 아니하고 기생첩에게 혹하여 가업을 파산지경에 빠뜨린 고로, 분함을 참지 못하고 설왕설래에 서로 싸우다가 잘못하여 그 면상을 좀 다쳤소이다."

 "여자로서 남편에게 항거치 못하는 것은 법에 정한 바어늘 네가 감히 그럴 수 있단 말이냐/"

 하고 사또가 꾸짖으며, 곧 명령하여 엄형으로 다스리거늘, 그 남편이 본즉 도리어 불쌍한 생각이 나서 庭下에 나아가 엎드려 가로되,

 "소인의 면상 상처는 소인의 집문짝이 넘어지면서 다친 것이오니, 그만 봐 주시옵소서." 

 이때 사또의 부인이 마침 창틈으로부터 이 일을 엿듣고 있다가,

 "그 남편이 妓妾에 혹하여 처를 버렸은즉 그 처가 남편을 때린 것이 무엇이 잘못이오. 이른바 官長이란 사람이 이와 같이 그릇 송사를 처리하니, 이게 통탄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분한 겨를에 큰 소리가 밖에 나온지라, 사또가 이를 듣고 곧 형리로 하여금 양인을 밀어내치게 하며,

 "만약 이 송사를 들어 엄히 여인을 다스린다면 우리집의 문짝도 또한 장차 거꾸러질 것이매 그것이 가히 두려운 바라."

하였다. 

               <禦睡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