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落穗

나의 백두산 탐방기

如岡園 2006. 11. 23. 10:23

 장춘을 출발한 기차가 밤을 새워 달린 끝에 멎은 이른 아침, 플랫홈의 표지판에 낯익은 한글 문자를 발견하는 순간 필자는 일시 환각을 보지 않았나 하는 착각 속으로 빠져 들었다. 벌써 여러 날에 걸려 거대한 중국대륙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이국 풍정에 익숙하여 있었던 나의 눈에 비친 우리글 간판은 그만큼 충격적이고 감격적이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중국 속의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에 들어섰던 것이다.

 중국에 살고 있는 2백여 만의 동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0만 이상이 살고. 공식적으로도 우리말 우리글을 제1의 문자로 쓰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광활한 중국대륙에 우리 문화를 화석처럼 순수하게 보전하고서, 이국 속 배달민족의 생활터전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외국여행에서 얻어지는 소득보다는 낭비가 더 많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필자가 중국대륙만은 꼭 한 번 가고 싶은 충동이 발동한 것은 중국비교문학회가 한국고소설연구회 회원 앞으로 보낸 세계비교문학회 제4차 年會 및 국제토론회 참가 초청장을 받고 나서부터였다.

 한 번쯤 외국여행을 할 요량이면 내가 디디고 선 이 땅, 내가 숨쉬고 있는 이 문화 풍토와 맥이 닿아 있는 곳이어야 무슨 소득이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범위를 설정하고 있었던 필자의 외국여행 실행에 그 초청장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제막 중국과 국교가 정상화되긴 했지만 직항로가 없었던 1993년 7월 13일 홍콩에 기착, 심천 광주 장사를 거쳐 동정호 저 멀리 호남성 대용시 장가계국가삼림공원의 호남비파계빈관에서 학회 행사를 끝내고 심양 장춘을 거쳐 연길에 도착한 것은 7월 19일 오전 5시 25분이었다. 

 한글간판 투성이의 거리를 지나 조선족 식당인 연하촌반점의 아침 밥상머리에 앉았을 때는 고향을 찾아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건너편 건물의 '虛心廳' 간판은 부산의 것이 먼저였는지 연길의 것이 먼저였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였다.

 망국의 한을 안고 두만강을 건너 버려진 땅을 일구고 가꾸어 온 슬프고도 굳센 민족의 역사를 생각케 하는 현장이다. 차조를 섞은 쌀밥에 된장찌개 김치깍두기가 돋보였던 아침밥을 먹고 곧장 일송정 푸른솔, 용두레 우물가, 한줄기 해란강..... 그런 노래말의 현장을 지나고 벼가 무성하게 자라가는 노두렁 길을 황소를 몬 동포의 농부가 지나가는 들판에 접어들었다.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낙이 금방이라도 사립문을 나설 것 같은 초가 마을, 독립군의 함성이 들릴 것 같은 청산리를 거쳐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의 물을 한눈에 내려다 보았을 때는 감회가 북받쳐 올라 말문이 막혔다.       

 하늘에 맞닿아 있는 태산의 정상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물을 담고 있는 불가사의의 거대한 화산호...... 이것이 天池의 장관이었다.

 연중 3개월밖에는 등정을 할 수가 없고 등정을 하고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확률은 30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백두천지의 위용을 확연히 볼 수 있었던 행운에 가슴이 저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목청껏 합창하는 것으로 天池의 讚德頌을 대신했다.

 예로부터 태산은 國祖神의 강림지였다. 이름하여 太白이었다. 五太白의 으뜸이 백두산이고 오태백 중의 남태백이 강원도의 태백산이다. 단군신화를 간직하여 온 우리로서는 백두산 천지 아래 펼쳐진 무변대지(無邊垈地)는 배달겨레의 터전으로 인식하여 왔다. 목전에 펼쳐진 천지의 푸른물을 보고 그 인식의 뿌리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민족정기 서린 해발 2,744미터 백두의 정상에서는 천지 물의 동북쪽이 지도상으로 구획되어지는 분단조국의 북한령이라는 의식도, 그리고 그 서남 서북쪽이 이제 겨우 우리와 국교를 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의식도 없었다. 주변은 온통 배달정신으로 살아가는 배달민족의 고장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도문강(圖們江)을 사이에 둔 한중 국경선 맞은편, '속도전'의 구호와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가 도사리고 있는 도문에서 느꼈던 분단의 현실을 이곳에서는 실감할 수 없었기에 마음이 평화로웠고 배달겨레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정겨웠다.

 국경의 의미가 달라지는 지구화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허구와 가면이 벗겨져 가고 있는 오늘에 있어서 우리 겨레가 살고, 우리 겨레의 문화가 있는 곳은 곧바로 우리의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렸다.

 백두산을 중심점으로 하여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중국땅의 연변, 분단의 아픔이 있긴 하나 역시 우리 동족이 살고 있는 북한 땅은 배달민족으로서의 공동체의식을 가진 우리의 문화 영토임에 한 치의 에누리도 없다.

 통일의 염원이 쉬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백두영봉의 맥을 따라 자리잡고, 짙푸른 천지의 물에 근원하여 누만대 삶을 누려 온 배달겨레를 갈라 놓을 인위적인 장벽은 영원할 수가 더욱 없다.

 통일에 대한 염원, 뿌리에 대한 향수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관광객의 발길로 몸살을 앓아야 하는 국조신 환웅(桓雄)이 하강한 신령한 산 白頭를 아쉬워 하며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달라는 일행에게 너무 많이 찍으면 백두산이 닳아 없어지겠다는 농담을 떨구며 북경으로 발길을 돌렸다.

 

                                                              如   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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