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이런 TV 드라마 제명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시청을 하지 않아 내용을 잘 모른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제목 이름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러구러 6년 전 발리를 여행했던 이력이 있었던 인연 때문인 것 같다.
또 우리 여행팀이 그 해 해외여행 목적지를 동남아로 잡아놓고, 굳이 발리를 포함 시키자는 의견에 적극 찬동을 한 것도, 청춘 시절에 본, 발리를 무대로 한 뮤지컬 영화 <남태평양>에서 느낀 낭만적 인상 때문이었다.
여행은 인생의 한 즐거운 예술이다. 그날그날의 생활이 인생의 사업이라고 한다면, 그 인생의 무거운 의무에서 잠시 해방되는 자유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여행인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생활과 여행을 문학에 비유하여, 생활이 인생의 산문이라면 여행은 인생의 시라고 하지 않았는가!
아름다움에 취하여 생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에는 방황하는 즐거운 모험심과 탐험에 대한 유혹이 있다. 거기에는 의무도 없고 일상의 생활에서 오는 시간의 제약도 없다. 인생의 무거운 의무에서 잠시 해방되는 기쁨이 있을 따름이다.
여행의 혼은 자유이다. 제 좋은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완전한 자유인 것이다.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하고 관용을 가르친다.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깨닫게 한다. 무언가 신선한 새로운 느낌을 마음에 심어주고,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놀라운 일에 대한 견문과 새로운 도시, 새로운 세계를 보는 신비가 있고, 생소한 풍경, 낯선 사람, 이질의 문화를 만나는 경이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여행이 좋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문제다. 여러 나라를 그저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마음에 집히는 무엇을 찾아 여운을 남기는 여행이 아니면 안된다.
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하지만 세상에서는 여행에 의하여 배우는 것이 독서를 통하여 배우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독서의 경우에는 저자에 의하여 그 정신이 이끌림을 당하지만 여행에 있어서는 자기 스스로 볼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잘 관찰하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행에 대한 정보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시대이니 그것의 사전 독파이면 족하겠지만 그런 경우일지라도 사전 독파를 바탕으로 한 현장 확인, 그리고 여행이 끝난 뒤의 정리가 뒤따라야 여행의 소득은 있는 것이다.
여행의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기록으로 남겨둔다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억이나 감동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게 마련이어서, 그때 즉시 기록으로 남겨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즉시 글로 써서 남겨둔다는 것은 힘도 들고 졸속하기가 쉽다. 글이라는 게 본래 뜸을 들인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 이런 경우에 좋은 무기가 캠코더였다. 여행의 요소요소마다 캠코더를 무한정 돌려대고 그 생생한 기록을 걸러내어 음미하는 즐거움이 내 여행의 방법이다.
내가 발리를 여행한 것은 2001년 7월이었다. 홍콩 마카오 발리를 함께 묶은 5박 6일 일정의 패키지 여행이었는데,그 중에서 발리의 일정은 2박 3일이었다.
적도 아래 남태평양에 떠 있는 작은 섬, 산호초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를 찾은 것이다. 이슬람교 신자가 90 퍼센트인 인도네시아에서, 유독 힌두교 신이 지배하는 섬, 신의 나라 발리! 성스러운 아궁산 기슭에 펼쳐진 전원 풍경, 독특한 문화와 훌륭한 조각예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유히 흐르는 시간에 용해된 발리인들의 미소를 접하게 된 것은 7월 1일 저녁 무렵이었다. 지금은 직항로가 있어 사정이 다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 홍콩에서 발리 행 비행기를 바꿔 타고, 발리 웅구라라이 공항까지 무려 8시간 가까이 걸린 긴 여정이었다.
열대 꽃 특유의 코를 찌르는 듯한 진한 꽃향기가 황홀한 화환을 목에 걸어주는 환대를 받으며, 발리에서 가장 비싼 리조트 지역인 누사두아(Nusa Dua)의 셰라튼 누사인다(Sheraton Nusa Indah)호텔에 투숙, 발리의 하늘 바다 사람 속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3S, 바다(Sea), 모래(Sand), 태양(Sun)이 고루 갖춰진 곳, 눈이 모자라게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에는 산호초에 부딪혀 좋은 파도가 지속적으로 생긴다.
4-9월의 건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적도 아래 열대우림지역이라는 상식을 깨고, 하늘은 맑고 푸르고 태양이 작열하여 따끈하게 화끈거렸지만 끈적거리는 땀방울 하나 맺히지 않는 특이한 기후였다. 태풍도 허리케인도 상상할 수 없는 적도하의 기후, 그래서 발리는 열대의 낙원이다. 마자빠힛 왕국의 수준높은 문화, 아름다운 산과 해변, 작지만 붐비는 도시, 흥미 있는 타운, 그리고 대부분의 발리 사람들이 사는 수백 개의 마을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종교는 발리인들의 생활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힌두교 사원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발리의 마을들에는 최소 3개의 토속 사원이 있는데,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푸라푸세(Pura Puseh), 마을의 절 푸라데사(Pura Desa), 죽은 이들의 절 푸라달렘(Pura Dalem)이 그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의 사원과는 별도로 집집마다 이런 영혼들을 모시는 사원 형태의 조형물을 건조하여 두고 하루 세 번을 빠뜨리지 않고 제사를 올린다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런 토속신앙의 사원 출입구는 사람 하나만 겨우 드나들 정도로 좁게 만들어 체형이 큰 잡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니 관광객의 입장으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발리 섬은 섬의 중앙부에 5152 미터의 아궁산을 정점으로 하여 화산맥이 달리고 2000 미터급 산들이 잇달아 있는데 그 화산지대를 가고 오는 과정에서 회화마을 우부드, 무용의 펠리아탄, 조각마을 마스, 은세공의 첼루크는 둘러보면 되었다.
관광객을 위한 민속공연장에서 성스러운 짐승 바론과 마녀 란다의 싸움을 묘사한 '바론 댄스'를 관람하고, 마스에서 목공예작품을 관광하고 휴화산 상태인 구눙바뚜르(Gunung Batur)로 향했다.
바뚜르 호수와 화산추인 구눙바뚜르는 거대한 사발 모양의 칼테라로, 발리의 자연경관 중 해변과는 또 달리 뛰어난 경관이라고 하는데 1963년에 이어 최근 1992년 바뚜르산의 화산 폭발로 화산재를 시꺼멓게 뒤집어쓰고 있었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칼테라 능선의 가장 큰 마을이라고 하는 낀따마니에서 본 발리의 장례 행렬이었다. 발리에서의 힌두축제나 큰 장례식은 꼭 한번 봐 둘만한 볼거리라고 했는데, 사원에서 벌이는 힌두축제는 못보았어도 운 좋게도 장례행사 관람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불로소득이었다. 소 모양으로 짠 관에 시신을 담아 칠팔십 명이 운구하는 대형 상여채에 얹혀가 화장을 하고 천국으로 가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힌두교에 있어서 소는 신성한 동물이며 그 소에 타야지만 천국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죽음은 딩동댕동 즐거운 음악 소리에, 환호작약은 아니지만 웃고 즐거운 표정으로 맞이하고 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온 마을의 어른 아이, 늙은이 젊은이, 남녀가 모두 동원이 되어......
그림이 있고 음악, 춤이 있는 비옥한 계단식 논으로 둘러싸인 우부드(Ubud)는 차창 너머로 관망하고 전통가옥 한 채를 샅샅이 뒤지는 것으로 것으로 발리인의 전통생활을 읽고는 덴빠사르 시역에 있는 회교사원 하나를 관광하였다. 뿌라마오스빠잇(PuraMaospahit)인가 하는 14세기의 회교사원이었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붉고 푸르고 노란 원색의 치마 같은 것을 두르고서야 입장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웃겼다. 문 하나는 마음을 열고 들어가라는 문이요, 두번째의 문은 제물이 들어가는 문이요, 마지막 문은 가신(家神)이 들어가는 문이라고, 힌두신과 민속신으로서의 가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가까스로 한국말을 터득한 원주민 가이더의 설명이라 답답한 점이 많았다.
발리 여행의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작열하는 태양, 눈이 모자라도록 아득하게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모래, 부서지는 파도, 그것과 더불어 엮어가는 여행자 자신들의 역사다.
불규칙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의 다양한 종류의 바틱을 진열한 포목점이 즐비한 덴파사르의 거리를 지나 해안가를 향해 달렸다. 일몰전의 석양을 보면서 해변가 해산물 요리로 저녁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던 것이다. 쿠타 비치(Kuta Beach)에 연한 짐바란 만(Jimbaran Bay)의 아름다운 백사장과 형형색색의 어선들이 있는 해변에서 즐기는 바다가재 바닷게 새우 등등 해산물 요리도 요리였지만 수평선으로 잠겨가는 웅대한 인도양의 석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별천지의 세계로 마음을 유인한다. 정적 속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섬 그림자 하나 없는 불꽃같은 바다에 도취되어 붉은 색이 사그라들 때까지 정신없이 캠코더의 샷터를 눌러댔다.
3일째 일정으로는 바다거북의 산란지로 유명한 터틀 아일랜드와 원숭이 숲엘 가고 싶었지만 이동거리가 마땅치 않고 별로 볼거리도 없다고 하여, 울루와뚜(Ulu Watu)사원을 관광하기로 했다. 짐바란에서 길을 따라 차를 타고 남쪽으로 한참을 간, 부킷반도의 끝자락 절벽 위에 울루와뚜 사원이 있었다. 천길 만길 절벽 아래 푸른 바다 흰 파도는 산호초에 부닥쳐 포말을 일으키고 눈을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면 바다인지 하늘인지 아득하기만 한 곳의 이끼 낀 암반 위에 옹립한 고색창연한 그림같은 회교 사원 하나! 원숭이 숲이 아니라도 원숭이 떼들은 어찌 그리 관광객을 희롱하며 물고 늘어지는지!
발리에서의 2박 3일의 관광을 마치고 다음 관광지인 홍콩 마카오를 향해 웅구라라이 공항을 이륙하는 날, 발리의 하늘은 어찌 그리도 맑은지...... 발리 섬 상공을 날으면서 내려다 본 지상은 유리를 통해 물밑을 보듯 선명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2007. 5. 25 )
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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