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는 데는 그 나름대로의 목적과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외국 여행에 있어서는 더 큰 목적과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그 여행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새로운 풍경에 접하며 문화와 풍습을 배우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역사를 익히며 식생활에 접하고 싶은 것이 여행에서 찾을 수 있는 주된 의미일 것이다. 상상도 못할 장엄한 풍경에 가슴 떨며 아연해지는 것도 여행에서 맛보는 묘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행의 목적에서 풍경은 풍경일 뿐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첫번째 중국 여행에서 계림의 풍경을 보지 못하여 안달하였었는데 그 후의 여행에서 그게 별게 아니었음을 느낀 것도 나의 이러한 여행관 때문이다. 요즈음 와서 장가계가 패키지 여행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에게는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 나름대로 장가계와 맺은 어쭙잖은 인연 때문이다.
내가 장가계에 가게 된 것은 한 중 국교 수교 이듬해인 1993년 7월이었다. 중국 비교문학회 제4차 연회 및 국제 토론회가 그해 7월 12일부터 19일까지 중국 호남성 대용시 장가계에서 개최되어 우리 나라 고소설연구회 측에 초청장이 온 것을 계기로 그 기회에 중국 일원이나 여행하고자 동행했던 것이 내가 장가계에 가게 된 동기였다.
지금처럼 직항로가 없었던 시절이라 부산에서 서울로 홍콩으로 廣州로 해서 호남성의 省都, 長沙에 도착한 것이 7월 14일이었다. 장사에서 1박을 하고 아침 6시에 전용차로 출발하면서부터 고생길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우리를 안내하는 북경대학 교수도 장사에서 대회장인 장가계까지가 4시간으로 알고 있었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니 4시간인 '쓰거시아오스'와 10시간인 '스거시아오스'의 혼동에서 온 착각이었던 모양으로 장장 10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소요시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교통편에 있었다.
10시간의 소요시간이라면 6시에 출발하여 오후 4시까지는 그래도 도착할 수 있으니 저녁때 쯤 도착할 셈치고 가는 도중에 동정호나 구경하고 가도 되지 않겠느냐 싶어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을 했는데, 출발 당초부터 자동차가 말썽을 부렸다. 에어컨도 없는 10인승 고물 승합 전용차에 13명이나 타고 털털거리며 달리던 차가 미처 장사 시내를 모두 벗어나기도 전에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두 세 시간을 낑낑거리며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었지만 그것도 헛일에 그치고 여러 경로를 거쳐 가까스로 자동차가 교체되었을 때는 12시가 훨씬 넘었다. 덕분에 장사 시가지 외각 빈민촌의 한족 서민의 생활모습을 낱낱이 비디오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소득은 있었지만 짜증은 그 때부터 일기 시작했다. 교체된 차량이라고는 해도 고물 자동차이긴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도 없었다. 동정호에나 들러 시심을 북돋우자던 생각은 엄두도 못내었다. 정원을 3명씩이나 초과한 고물 자동차는 소음을 내면서, 무한정으로 뻗어 있는 평야지대의 포장도 덜 된 도로를 무한정으로 달렸다. 益陽, 常德, 石門을 지나는 동안 고물 승합자동차는 몇 번이나 시동이 꺼지고 고치고 하면서 또 달렸다. 휴식 시간도 없이 묵묵부답으로 짜증 한마디 없이 직무에 충실하는 운전기사가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慈利, 大庸을 거쳐 張家界國家森林公園 내의 대회장이자 숙소에 들었을 때는 밤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10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여정을 장장 18시간을 걸려 도달한 것이다.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은 비교문학회 발표회에 참석하였다. 마침 한국고소설연구회 측에서 고려대의 J교수가 우리 고소설 <구운몽>을 중국소설과 비교한 논문을 발표하여 헛된 걸음은 아니었다. 설악산 유스호스텔 규모의 숙소 주변 풍광은 그런대로 기암괴석으로 이룩된 바위산으로 둘러쳐 있어 장관을 이루었다.
장가계관광의 포인트가 되는 국가삼림공원 내에는 입장료가 부가되었다. 외국인에게는 입장료가 내국인의 열 배에 가까워 실랑이를 벌였지만 별 수 없었다. 대회 등록비 70달러에 현지 호텔비 40달러를 내고도 고물 승합차에 시달리고 비싼 입장료까지 물어 입장한 장가계국가삼림공원은 별 게 아니라는 게 그때의 내 생각이었다. 여행의 목적을 자연풍경의 장관에 두질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기암괴석이 하늘에 닿을듯 천장만장한 거대한 돌산 수백 수천이 죽순처럼 열립한 장가계의 장관은, 풍광에 촛점을 맞춘 여행객에게는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 하긴 했다. 통대나무를 얽어 만든 들것같은 가마를 타고 산등성을 올라 선 곳에 펼쳐진 계곡 호수의 수면과 어울어진 기암괴석의 풍광은 거대한 동양 산수화 바로 그것이었는데, 93년 당시 교통사정에서 고생한 전력 때문에 장가계국가삼림공원에 대한 인상은 늘 별로라는 생각으로 남아 있다.
장가계 여행 일정은 돌아오는 차중에서 또 1박을 한 셈으로 2박 3일을 채워 長沙로 돌아왔다. 장사에서의 볼거리는 무어라 해도 五里牌에 있는 馬王堆漢墓와 湖南省博物館이었다. 높이 10미터, 직경 30미터의 마왕퇴한묘 고분은 5대 後唐의 楚王馬殿의 묘라고 믿어 馬王堆라고 하였으나, 1972-1974년의 발굴에서 2천년 이상 이전의 前漢長沙國의 재상 丞相대候利倉과 그의 처자묘로 판명되었다. 특히 대후의 부인의 유해는 발굴 당시 유해의 사지 관절이 움직여질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이것을 호남성박물관에 진열해 놓고 있었다.
아무래도 외국관광의 압권은 풍경에서 찾기보다는 역사적 유물이나 문화 및 생활풍습에서 찾아져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2003)
'旅行落穗'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춘의 마지막 황제 부의 (0) | 2007.07.27 |
---|---|
심양의 포장마차집 (0) | 2007.07.03 |
발리의 하늘 바다 사람 (0) | 2007.05.25 |
일송정 푸른 솔은... (0) | 2006.11.27 |
나의 백두산 탐방기 (0) | 2006.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