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달래 시집보내기

如岡園 2007. 3. 7. 00:18

 '달래'는 얼마 전까지 내가 기르던 강아지의 이름이다. Cocker Spanial 영국계 순종이었는데 수렵을 겸한 애완견으로 영화 '벤지'에 등장한 벤지와 같은 계통이었지만, 나는 굳이 '달래'라는 한국식 이름을 붙여 불렀다. 달래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보니 한국에 귀화한 느낌까지 들어 친근감이 들기도 하던 것이었다.

 애완견은 고사하고 똥개마저도 사육에 문외한일 뿐더러 애시당초 개를 싫어하였던 우리 부부는 어쩔 수 없는 연유로 기르게 된 달래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중생을 제도하는 불교적 관점에서가 아니더라도 한 식구가 되어버린 이상, 생령(生靈)을 결코 소홀하게 다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2003년 4월 20일 생의 암컷이었으니 출생 1년을 넘기면서부터 생리와 발정의 기미까지 있고 보니, 그 때부터 이것을 기른다는 것이 짐스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서양에서는 이미 개의 위상이 사냥의 보조물이나 도둑을 지키는 일을 넘어서 인간의 고독을 지키는 존재로 격상되었으니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두 부부만 호젓하게 사는 형편에 강아지 한 마리쯤 기른다고 하여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았고, 그 동안 정도 들고 하여 계속하여 기르고도 싶었지만 강아지의 출산 산후 조리까지는 엄두도 낼 수 없어 더 정들기 전에 인연을 끊어버리자는 쪽으로 작심을 하고 말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하였지만 사람이건 짐승이건 만나기는 쉬워도 헤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우리 사람의 정조(情調)다. 그 동안 맺어온 정을 한순간에 끊는다는 게 어찌 그리 쉬운 일인가!

 감관적(感觀的) 감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처분하는 방법도 문제였다. 길러 온 개를 처분하는 방법은 병들어 죽어 없어지는 일 아니면 개 장사에게 파는 일이지만, 최상의 방법은 애완견을 좋아하고 나보다 더 잘 기를 수 있는 집으로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지도 않은 것이 그 동안 길러 온 정이었다.

 그러자니 상대를 찾는데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너무도 가까운 지인(知人)을 권유하여 달래를 인계시키기로 하고 개 주인 손주놈에게 동의를 구하였더니 남을 주기가 아까웠던지 선뜻 승낙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기어코 시집을 보내기로 하고 나니 또 새로운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혹시 이놈이 남의 집에 가서 누를 끼치지나 않을가 하는 생각이... 딸자식을 길러 남의 집에 시집보내는 심정 그것이었다. 말하자면 친구 사이에 사돈을 맺는 경우와 같았다고나 할까.

 달래를 시집보내는 날, 목줄을 새로 갈아매어 주고 할인점에 가서 8천7백 원짜리 고급 스테인리스 개밥 그릇을 새로 사서 그 동안 달래가 거처하던 개집에 넣어 보냈으니, 사람의 일로 치면  아파트 한 채에 솥단지와 몸에 걸칠 입을 거리를 장만 해 준거나 다름이 없다 싶어 실소를 머금기까지 하였다.

 그러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는데 텃밭에서 손수 가꾼 상추 등속의 야채와 꿀 한 병, 양파 한 포대를 달래와 함께 보내고, 천연 재래 돌김 선물 세트를 예물로 받았다. 개사돈 사이의 예물교환이 된 셈이었다. 이것도 소박한 사람의 심성에서 우러나온 그럴듯한 풍정이라면 풍정이었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있지만 달래를 시집보낸 뒤끝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니 허전함 그것이었다. 현관 문을 나설 때마다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던 그놈이 눈에 삼삼하여 한동안 가슴이 찌잉하였다.  추석맞이로 내려온 손자놈이 달래가 시집간 곳에 한 번 가 볼 수 없느냐고 청하는 것도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고 말았다. 정이라는 것도 마음에 품고 살아야지 쉬 풀어버리면 허망한 것이 되고 마는 경우가 많음으로 해서이다.

 딸 하나를 시집보내고서도 무덤덤하던 내가 하찮은 개 한 마리를 남의 집에 보내고 너스레를 떠는 것이 짜잖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은 혹시 늙어가면서 외로워지고 감성을 통어하는 자제력이 약해진 탓이 아닐지!

 아니면 내 딸아이 시집보낸 심정을 달래 시집보내기에 투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10년 전 딸아이를 시집보내면서 내자와 시집가는 딸과 마지막 짐을 승용차에 담아 싣고 연산동 우리 집에서 안락동 딸네 시집으로 운전하여 연산교차로를 돌아가는 순간 가슴에서 울먹 차오르던 감성의 응어리가 달래의 빈 자리에서 되살아나는 심상(心想)은 같은 맥락일시 분명하다. 달래에게 굳이 개집을 딸려 보낸 심상의 저변도,시집가는 딸에게 아파트 전셋돈 한 푼 보태어 주지 못한 일에 대한 보상 심리가 아니었던지!

 사귐이 깊어감에 따라 더해 가는 친근한 마음인 정은 지나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고도 하였고, 때로는 미혹(迷惑)으로 몰아가는 신의 형벌이라고까지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일도 있지만, 천지의 기운은 따뜻하면 생(生)하고 차가우면 시들어 죽게 마련이니 사람의 마음일수록 정이 담뿍한 사람이라야 복이 두텁고 그 은택이 오래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 것을 실감케 한 것이 달래와의 이별이었다.

 아무튼 달래는 좋은 집으로 시집을 갔다. 달래 말고도 수종의 애완견을 사육하는 넓은 집이니 더욱 그렇다. 풍문에 들으니 이웃에 동종의 수컷 코카를 사육하는 집이 있어 늘상 그 집에 가서 살다시피 한다고 하니 그것 역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외한의 애견 사육' 참조)

 

                                                                                        如     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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