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동물을 빙자한 세상이야기- 메기장군고담

如岡園 2007. 4. 21. 15:19

      글머리에 부치는 말^^^^^^

                        '메기장군고담'의 줄거리와 간추린 평설입니다.

                         옛소설이지만 세팅을 바꾸어 놓기만 하면 우리 현실사회의 일이기도합니다. 

                         멸직장군이 꾼 꿈의 내용에 주목하여,

                         지금 세상에 그런 꿈을 꾼 사람은

                         고래장군의 해몽을 듣지 말고

                         가자미에게 가서 해몽을 요청하시오. ㅎㅎㅎㅎㅎㅎㅎㅎ

                              

 *      *      *

 

 숙종대왕 즉위 초, 북해 바다에 한 물고기가 있으되 성은 '메'요 이름은 '기'이니 자칭 호를 멸직장군이라 하였다.

 정월 상달 고명날에 거창한 꿈 하나를 꾸어놓고 이리저리 생각 중인데, 물속으로부터 방정맞은 가자미 한마리가 쪼르륵 나왔다.

 메기장군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꿈 해몽을 착실히 했는데 지금은 꿈 해몽할 이가 바히 없으니 네가 해몽을 좀 해달라." 하니 가자미가 대답하기를, "서해 고래장군이 의견이 넉넉하고 도량이 높아 해몽을 착실히 할 듯하니 고래장군을 청좌하여 해몽함이 어떠냐."고 하였다.

 "그러면 고래장군을 청좌하여 오라." 하고 메기가 노자돈 서푼을 주니 가자미가, "주면 주고 말면 말지 노자 서푼이 무엇이냐."고 투정을 부려 한두 푼을 더 주었다.

 가자미는 서푼짜리 짚세기를 둘메차고 남문 안 홍판손이 대부인 집에 가서 막걸리 한 잔에 밥 톡톡이 말아 먹고 발길을 재촉하여 수부(水府)에 다다르니, 문검(門檢)이 지엄하고 시속(時俗)이 고약하여 일체의 잡인을 들이지 않았다.

 조개 밑에 가만히 엎디어 있노라니, 도로묵과 발갱이(잉어의 새끼) 포도군사가 좌우로 순찰하여 다녔지만 눈먼 송사리 새끼 하나 잡지 못하다가 조개 밑을 들쳐 보았더니 가자미가 나왔다. "너 어찌하여 여기 왔느냐."고 물으니 가자미가 말하기를, "북해의 여러 천년묵은 도덕 높은 멸직장군 봉명(奉命)하고 서해 고래장군을 청하러 왔으니 한시바삐 아뢰라." 하고 엄포하였다.

 발갱이 포도군사가 즉시 들어가 여쭈니, 가자미를 불러 들이라는 전갈이 내려 술령수 고등어가 나온다.

 고등어를 따라 들어간 가자미가 전후좌우를 살펴보니, 새우를 비롯한 만조백관이 모여 고래장군의 거동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던 중, 처음으로 청하는 것을 아니갈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고래가 순식간에 멸직장군에게 다달아 예필좌정(禮畢座定)한 후에,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물으니 멸직장군이 말 하기를, "<하늘로 치친 듯하고, 용상(龍床)에 오른 듯하여 '야'자 금띠 띤 듯하고, 옥설(玉雪)이 뿌린 듯하고, 한출첨배(汗出沾背, 땀이 흘러 등을 적심)한 듯하고, 옥담을 넘어 붉은 고개 넘어 좁고 넓은 골목 휘돌아 돌문 밖에 뚝 떨어져 뵈는 형상이요.>" 하고 꿈 이야기를 하였다.

 고래장군이 해몽해 주기를, "그 꿈이 매우 좋은 꿈이며 수부(水府) 세계에는 처음 있는 꿈으로 용이될 꿈"이라고 하였다. 멸직장군이 크게 기뻐하여 "어찌 용이 되옵니까?" 하니, 고래장군이 답하기를, "<지금 북해의 용왕 자리가 비어 옥황상제께서 멸직장군으로 용왕을 삼으라 하옵시면, 하늘로도 올라가고 지하로도 내려오고, 남의 걸음 걷는 듯한 것은 용이 구름 타고 다니니 남의 걸음 걷는 격이요, 용이 용상에 앉지 다른 사람이 앉겠습니까.'야'자 금띠는 두 사람이 안 띠며, 옥설(玉雪)오는 날인들 아니 다니겠습니까. 한출첨배(汗出沾背)하는 것은 옥황상제 모시고 말씀하실 때 등에 땀인들 안나겠습니까. 하늘에 옥담도 있고 붉은 고개도 있고 좁은 길도 있고 너른 길도 있고, 돌문 밖에 떨어져 뵈는 것은 몇 해 용노릇 하다가 와룡(臥龍)되어 용궁을 아주 내려오는 격이오니 이런 좋은 꿈이 다시 없나이다.>" 하니, 멸직장군이 좋아하여 자가사리를 명하여 주안상을 차려 오게 하고 권커니 잡거니 하며 즐기다가 고래장군은 서해로 돌아갔다.

 이 때에 오랫동안 방자로 다니던 송사리 새끼가 돈 한푼으로 백지 한 장을 사 가지고 동네 서당에 가서 통문(通文)을 썼는데, 명일 보전(保錢)돈 5푼씩을 가지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 通文이 가자미에게도 왔거늘 가자미가 제 계집에게, 뒷집 金同知에게 가서 일수 5푼만 얻어오라 하여 줌치 구석에 넣어 두었다가 이튿날 식전에 갔더니, 座上이 다 모였는데 가자미는 방정맞다는 이유로 돈을 바쳐보지도 못하고 쫓겨나,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가자미는 할 일 없이 멸직장군에게 가서 해몽을 해주겠다고 요청하니, 멸직장군이 용에서 더 오를 줄 알고 가자미에게 꿈 해몽을 해보라고 하였다.

 가자미가 꿈 해몽을 하기 시작하는데 사설이 길다.

 "秋月秋風에 어부아니(漁夫干이=어부한이, 어부를 속되게 이르는 말)가 가을 망태 둘러메고 서울이 좋단 말을 풍편에 듣고 구경을 갑니다. 가다가 中路에서 친구 하나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어디 가느냐고 물어서, 서울 구경 간다고 하였더니 그 친구가, '아서라! 숭례문 들어서기만 하면 양푼에 술두르는 소리와 너비아니 굽는 냄새에 술 한잔 아니 먹을 수 없고, 그러다가 배자사령에게 뺨맞고 관가에 고하여 귀양 보내면 무슨 수 있느냐, 가지마라.' 해도, 그래도 기어이 가겠다 하니, '그러면 팔십먹은 노인의 호패를 빌려 차고 가라.' 하여, 그 친구를 작별하고 한 곳에 다달아 보니, 한 노인이 짚신을 삼다가 누워자길래 가만히 보니 호패를 가졌기로 가만히 내어 꽁무니에 차고 숭례문을 썩 들어섰것다. 너비아니를 안주하여 술을 한잔 먹고 소광교 대광교 넘어 종로에 나서니, 온갖 장삿군이 물건을 사라고 야단이다. 그들이 모두 갓창옷을 입었기로, 한성부 배자사령으로 안 어부아니는 깜짝놀라 까무라쳤다가, 정신을 차려 낚시를 장만해 잔잔한 벽계창파(碧溪蒼波), 만경창파(萬頃蒼波)의 물에 드리웠드랬는데, 멸직장군께서 엉큼한 마음에 밥알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바로 그 어부아니의 낚시를 덥석 물어버렸습니다그려. 그러니, 멸직장군께서 꾼 꿈은 바로 이렇습니다.

 '<어부아니가 낚시를 툭 채치니 하늘로 올라갔다가 땅에 떨어졌지요. 남의걸음 걷는다 하는 것은 장군같은 큼직한 고기를 잡았으니 어린 자식하고 끓여먹으려고 망태에 넣어졌으니, 어부아니가 걸어가지 장군님이 걸음 걷겠소. 용상에 오른듯한 것은, 네발 덩그렁한 도마 위에 놓았으니 용상같지 아니하며, '야'자 금띠 띤 듯 아니하겠습니까? 옥설이 뿌린 듯한 것은, 청동 화로 백탄 숯불 이글이글 피워놓고 장군님을 올려 놓으며 소금 뿌리는 것이요, 기름이 버글버글 끓어 나오니 한출첨배(汗出沾背)한 것 같지 않겠습니까? 옥담을 넘어 붉은 고개는, 사람의 이는 희니 옥담같고 목구멍은 붉은 고개같고, 좁은 길 너른 길은, 좁은 창자도 있고 너른 창자도 있으며, 돌문 밖에 뚝 떨어져 뵈는 것은 똥밖에 더 될게 있소?>'"

 가자미의 이런 해몽에 멸직장군은 크게 노하여, "이놈아! 고래장군은 용이 된다 하는데 똥이 무엇이냐?" 하며, 가자미의 이뺨저뺨을 한 오십 번이나 치니, 가자미 눈이 모로 박히고, 꼴뚝이는 겁을 내어 눈을 먼저 챙겨야 한다 하고 두 눈을 꽁무니에 차고, 통대구는 우스워 '허허' 하고 웃다가 입이 널러졌으니, 뱅어는 '호호' 하고 웃어 입이 작아지고, 새우는 층암절벽 위에서 구경하다가 떨어져 곱사등이 되었다.

   ('메기장군고담'의 줄거리 요약임. 원본 影印 및 校註本은 도서출판 박이정刊 <寓話小說의 世界-김재환 著>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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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 <메기장군고담>은 의인화(擬人化) 된 메기가 꾼 꿈을 두고, 고래와 가자미의 상반된 해몽의 양측면을 대비시켜, 사실과 거리가 멀면서도 비위나 맞추는 아첨이 오히려 대접을 받고, 진실을 밝혀주는 直言이 통하지 않는 아이러닉한 현실을 풍자한 동물우화소설이다.

 창작의식면에서 이 작품에 주목할 점은 조선조 후기 몇몇 대표적인 인간군상의 원형을 그려내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메기와 가자미는 서로 상반된 신분에 있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전형이다. 메기는 용이 될 꿈이라는 고래장군의 해몽에 신분 상승을 보장받은 듯 속없이 기뻐하는 허황한 벼슬아치의 면모를 드러내는가 하면, 노자돈 서푼으로 가자미 같은 하층민을 호령하고, 비위에 거슬리면 폭행을 일삼고 서슴없이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권력층의 표상인 반면, 가자미는 그야말로 붕새 앞의 새새끼같은 존재로서 직언을 해도 상사의 비위에 거슬리기만 하면 무자비하게 폭행 당하는 하층민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제3의 인물이면서 메기장군의 꿈을 좋은 것으로 해몽하여 대접을 받은 고래장군은, 허세를 부리지만 실제로는 아무 능력이 없고 비판적 안목도 가지지 못한 채, 실세를 가진 권력층의 주변에서 비위나 맞추며 무위도식하는 호부층(豪富層) 양반의 전형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면서도 의견이 넉넉하여 도량이 높은 존재로 떠받들림을 받아 대소사의 판가름에 청좌(請座)되는 고래장군으로 분장된 이런 인물의 전형 역시 조선조 후기 사회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불가결한 존재이다.

 메기와 가자미와 고래로 분장된 3가지 유형의 인물 중 창작 의식면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방정맞고 하찮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가자미이다. 가자미의 의식의 흐름이 곧 이 소설의 작가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메기장군의 해몽 요청에, 가자미는 의견이 넉넉하고 도량이 높은 고래장군을 청좌하여 해몽함이 낫다고 하여 스스로 사양함으로써, 섣불리 판단의 표면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대붕새 앞에 새새끼같은 자신이 무엇을 알겠느냐는 마음가짐이다. 그러면서도 노자돈에 인색한 메기장군에게 할 소리는 하는 자이요, 메기장군의 봉명(奉命)을 빙자하고 서해 고래장군 막하(幕下)의 부하들에게 호통깨나 칠 수 있는 오졸은 있는 자이다.

 보전돈 5푼을 바치기 위하여 일수돈까지 얻어왔는데 방정맞다는 이유로 돈을 바쳐 보지도 못하고 출방을 당하고 말았으니 인격적인 모독을 느낀 것이다.

 멸직장군의 꿈 해몽을 다시 하려고 결심한 것은 가자미의 이런 분노에 기인한다. 꿈이 무의식에 도사린 소망의 한 표현이라 볼 때, 그 소망이 무엇이냐에 따라 여러 형태로 꿈이 형성되고, 해석의 시각도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하늘로 치친 듯하고 남의 걸음 걷는 듯한 메기의 꿈은, 용이 되어 하늘을 오르는 것으로 해몽될 수도 있고, 낚시에 달려 올라가 어부의 망태에 담겨 가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판단하는 주관이 무엇이냐에 있다.

 가자미가 정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메기는 고래장군이 해몽한 대로 용이 되어도 가자미의 의식이 용납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자미가 인격적 모독을 받은 처지에 있어서 가자미의 의식은 메기가 용이 되기보다는 어부의 낚시에 걸려 잡아먹혀지는 신세로 전락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자미의 시각으로 촛점이 맞추어진 <메기장군고담>의 작가의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가자미가 메기로부터 노자돈 다섯 푼을 받아 서해 고래장군을 찾아갔을 때, 고래는 막하에 여러 물고기들을 신하로 거느린 위엄이 당당한 군왕이었다. 적어도 인간사회의 봉건 군주에 대비되는 위세가 있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자칭 멸직장군이라 일컫고 있는 메기의 꿈을 해몽하는 데는 그 정도의 인물이어야 했다.

 문제는 그런 인물들이 부리는 턱없는 위세와 위선적 행위를 희화화(戱畵化) 하자는 데 작자의 의식은 도사려 있다. 자기가 죽을 꿈을 꾸어 놓고도 헛된 욕심에 사로잡힌 멸직장군은 곧바로 과대망상증의 봉건 지배층을 투영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터무니없이 거짓된 꿈 해몽을 한 고래는 진수성찬의 주안상을 받고 환대를 받았던 데 비하여, 직언(直言)으로 옳은 꿈풀이를 한 가자미는 눈이 옆으로 돌아가도록 뺨을 맞는 현실이다.

 스스로에게 직면한 현실적 위험에 대한 충고는 귀에 거슬리고, 비위나 맞춰주는 아부에나 마음이 솔깃한, 포악하면서도 미욱한 지배층에 화살을 돌리려고 한 것이 <메기장군고담>의 작가의식이다.

 

     프롤로그

 필자가 고전문학을 전공하면서 한글 필사본 고소설 하나를 어렵게 구하여 논문으로도 썼던 것인데 <메기장군 고담>이라는 제목의 고담식 동물우화소설이다. 동물우화이니 만큼 등장 인물은 동물로 의인화 되어 있다.

 이것은 메기가 꾼 꿈을 두고 고래와 가자미의 상반된 해몽의 양 측면을 대비시켜, 사실과 거리가 멀면서도 비위나 맞추는 아첨이 오히려 대접을 받고, 진실을 밝혀주는 직언(直言)이 통하지 않는 아이러닉한 현실을 풍자한 고소설 작품에 대한 촌설(寸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