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김성한의 우화소설 <개구리>

如岡園 2007. 8. 24. 10:28

     梗槪

 아늑한 산골짜기 잔잔한 연못에 개구리들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다. 화초가 우거진 물가에서 노래부르고, 피곤하면 푸른 하늘 아래 바윗등에서 마음 놓고 낮잠을 잤다. 해가 기울어 출출하게 되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벌레와 송사리 떼는 아무리 잡아먹어도 줄어들 줄을 몰랐다. 아득한 옛날 그들의 조상이 땅 위에 삶을 시작한 이래, 이 연못가에는 일찌기 이렇다 할 풍파조차 일어난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날짐승들이 하늘을 까맣게 뒤덮고 개구리들이 사는 연못가로 내려왔다. 한층 높은 바위에는 엄청나게 큰 검은 독수리가 소리를 냅다 지르니 뭇새들은 국궁재배하고 엎드린다. 큼직한 매가, 엎드리지 않고 곁눈질을 하던 까투리를 잡아 독수리 왕 앞에 대령을 한다.

 독수리를 왕으로 하여 일사불란하게 질서가 유지되어 있는 날짐승들의 세계를 부러워한 얼룩개구리가 은근히 왕이 되고 싶은 욕심으로, 개구리 사회에서도 지도자를 모셔 무질서를 타파하고 정돈을 하자고 제의를 했지만 무시를 당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늘과 땅이 한꺼번에 뒤집히는 듯한 소리에 놀라 잠을 깬 개구리들이, 사자를 선두로 하여 질서정연한 짐승들의 행렬을 보고는 간담이 서늘했다.

 약삭빠른 얼룩개구리가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개구리 군중을 선동하여 지도자를 모시기로 하고 제우스 신을 찾아 가 지도자를 내려달라고 간청을 한다. 반대를 한 초록개구리만 홀로 되어 깊은 탄식을 뱉았다.

 사자는 사자, 독수리는 독수리, 개구리는 개구리의 질서가 있기 마련인데 애써 멍에를 쓰고자 덤비는 노예근성을 딱하게 여긴 제우스는 의식의 비극을 탓하면서 큼직한 통나무를 내려준다.

 제우스가 내려준 통나무가 자기들의 임금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얼룩개구리를 비롯한 개구리들은 통나무 앞에 정렬해 대령하지만, 당초부터 자유 그대로의 삶이 좋다고 생각했던 초록개구리만은 통나무를 업고 출세하려는 얼룩개구리를 비웃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편의라고 하면서 통나무에 올라타고 낮잠까지 즐긴다.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겁을 낸 얼룩개구리들은 통나무가 있는 물을 떠나 뭍으로 갔지만 물을 떠나 살 수는 없었다.

 제우스가 내려준 통나무는 천벌을 내리기는 커녕 무골호인으로 개구리들의 놀이터가 되어 연못의 문명을 한걸음 더 나아지게 한 꼴만 되었다.

 지배자를 모셔 재상 감투나 하나 얻고 권세를 누리려던 얼룩개구리는 통나무 왕에 불만을 품고 개구리 족의 총의를 조작하여 단신으로 올림퍼스 산에 올라 제우스 신 앞에 새로운 왕을 내려달라고 간청을 한다. 마지 못한 제우스는 황새를 왕으로 내려준다.

 연못가에 황새가 내리자 얼룩개구리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이때부터 연못 왕국에는 공포정치가 자행된다. 초록개구리는 역적으로 몰려 망명생활을 하게 되고 개구리들은 차례차례로 황새왕의 먹이가 된다. 그 찌꺼기는 얼룩개구리의 먹이이다. 희생을 강요하는 새로운 윤리가 선전되지만 먹이는 고갈되고 평화롭던 연못은 졸지에 아수라장이 된다.

 참다 못한 초록개구리가 검둥개구리와 동행하여 제우스 신에게 가서 포악한 황새를 불러 올리고 통나무 왕을 복위하여 달라고 간청을 하지만 제우스는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스스로 원하고 행동하고 이룬 것은 어찌할 수 없다고 한다. 섬기지 않고는, 굽신거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노예근성을 탓한다.   

 이어서 제우스는 초록개구리에게 자기중심의 망상, 의식의 조작, 간악도 힘이며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이기는 것은 대자연의 법칙, 만물의 운명, 비극의 근원은 의식, 의식에 뿌리박은 노예근성의 조작을 말하며 의식의 세계에 돋은 독버섯에 불과한 자기를 물어뜯어 없애라고 말한다. 제우스는 죽었다.

 도달할 끝이 없는 망망한 하늘 아래 시초도 종말도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초록개구리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評說

 위의 것은 김성한의 창작 동물우화소설 <개구리>의 줄거리다. <제우스의 자살>이란 原題로 1955년 그가 思想界사 주간에 취임하면서 발표한 작품으로, 이 소설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는 의식이, 인간의 불행을 자초한다는 것을, 개구리라는 동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동물우화소설이고, 인간성의 과오와 무지를 풍자한 일종의 문명 비평 소설이다.

 인간의 비극은 스스로 조작된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의식에서 해방될 때 완전한 자유, 완전한 해방을 얻을 수 있다는 주제를 깔고 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향유할 줄 모르고 스스로 멍에를 쓰고자 자청하는 인간의 악행, 권능을 업고 대중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邪惡이 자행되는 인간 세상을 동물우화적 수법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 <개구리>이다.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제우스를 의식 속에 가상하여 놓고, 통치 권력을 누리고 싶은 얼룩개구리와 자유 그대로의 삶이 좋다고 하는 초록개구리와의 대립 갈등으로 사건을 진행시켜 결국은 제우스의 나무람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아주 그럴듯한 동물의 세계이면서 숨김없는 인간세계의 양태이기도 하다.

 권위와 위엄을 바탕으로 한 일사불란의 질서를 흠모하고 권세를 탐한 얼룩개구리가 우리도 한시바삐 위대한 지도자를 골라 모시고 강철같이 단결하자고 주장했을 때, 초록개구리는 탄식을 하였고, 파랑개구리를 비롯한 동족 개구리들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초록개구리의 반발은 진지하고 진실한 데가 있었지만 설득력을 잃었다.

 사자를 선두로 하여 위풍당당한 짐승들의 행렬을 목도한 것을 계기로 하여 얼룩개구리의 주장은 확고부동한 것이 되었고, 올림푸스 산을 찾아 제우스 신으로부터 통나무를 내려받았지만, 통나무를 의식하는 얼룩개구리와 초록개구리의 시각은 너무나 상반된 것이었다.

 개구리 제국에서 재상이라도 하겠다는 꿈을 가진 얼룩개구리에게 있어서 통나무는 우상이었고,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초록개구리에게는 삶의 편의였다.

 개구리들의 총의를 조작하여 얼룩개구리가 제우스에게 재간청을 해서 황새라는 폭군을 왕으로 모셔옴으로 해서 개구리의 세계에는 미증유의 갈등과 혼란이 조성된다.

 왕국 최고의 역적으로 철저한 망명생활을 하던 초록개구리가 포악한 황새를 도로 불러 올리고 통나무 왕을 복위하여 주든지 아주 왕을 없이하여 달라고 제우스 신에게 호소했을 때 제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비극의 근원은 의식에 있다. 내가 어찌 전지전능의 신일 수 있겠느냐? 나는 오히려 의식의 세계에 돋은 독버섯이다. 의식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다."

 여기에서 김성한의 '意識'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원래 의식이란 논리를 형성하고 응용력을 배양시키는 긍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의식이 잘못되면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직된 의식은 노예근성이나 조장하고 존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기존의 의식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의식을 갖는 것이다.

 6. 25라는 처참한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들이 착종한 현실에서 김성한은 풍자와 냉소적인 태도로 沒意識의 세계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의식 비판의 결과는 허무지향일 수밖에 없는데, <개구리>에 나타난 사상은 결국 신을 부정하고 조직을 필요없는 것으로 여기고, 통치자를 거부하는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개구리>가 쓰여졌던 시점은 전쟁의 폐허를 복원하고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야 할 시기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혼란의 와중에서 민의를 조작한 권력이 횡행하고,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가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김성한은 극한 상황에서 좌절하는 인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인간을 그리려 하였다.

 소극적이며 순응적인 인간상을 배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수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간형을 창조하려고 노력하였다.

 의지를 펴고 현실문제를 고발함에 있어서 김성한이 동물우화의 수법을 활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레고리와 풍자, 아이러니를 지향한 작품세계의 폭을 한층 넓혀준 결과가 되기도 한다.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면서도 더욱 신랄하게 사회 현상을 비판함에 있어서 동물우화의 수법을 활용한 것은 이미 전대의 우리 동물우화소설에서 흔히 쓰여왔던 방법이었던 것이다.   ('金在煥 著. <寓話小說의 世界>. 도서출판 박이정. 1999.12' 에서 발췌)

 

김성한의 <개구리>는 이솝 우화 '왕을 바라는 개구리들'을 창작 모티프로 하였다. 내용을 확인하려면 '여강'의 블로그, 카테고리 '우화의 세계'(새 카테고리 우화의 세계를 열면서/왕을 바라는 개구리들, 2010.8.20)를 열어보길 바람. 

 

                                                            如  岡    金    在    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