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落穗

심양의 포장마차집

如岡園 2007. 7. 3. 13:11

 장사에서 심양행 비행기를 탄 것은 장가계에서의 세계비교문학회 학회 참여에 이은 그야말로 중국 관광을 위한 관광코스로 잡은 일정 중, 중국 동북삼성 그 중에서도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탐방하기 위함에서였다.

 장가계 여행길에서 워낙 고물 전용차에 시달렸던 탓으로 항공기라는 교통수단의 편리함이 새삼 고마왔다. 저녁노을로 붉게 물든 환상적인 구름바다 위를 4시간 가까이 날은 끝에 도착한 곳이 심양이다. 이른바 봉천(奉天)이란 곳이다.

 '심양'이건 'SHENYANG'이건 '瀋陽'이건 간에 우리들 세대에 익은 말로는 뭐니뭐니 해도 봉천이라는 말이 귀에 빨리 와닿는다. 그리하여 봉천이라면 만주를 떠올리고 만주 하면 봉천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일제가 남긴 잔재라면 서글픈 생각도 들지만 만주 봉천에 왔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봉천에서 기찻길로 신의주를 거쳐 평양으로 경성(왜정 때의 서울)으로 부산으로 실려 온 콩깻묵을 식용으로 연명했던 일제 강점기 가난한 백성으로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가 이런 감회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해 북경 천진에 이어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심양은 지금은 동북지방 최대의 공업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우리의 큰 관심사는 이 곳이 근세에 와서 중국을 지배한 청나라의 발상지라는 사실에 있다. 물론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2천 3백년 쯤 전인 전국시대의 연나라에까지 이르지만 그런 것까지를 따질 필요는 없고 청의 태조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고 수도로 정한 사실은 기억해 둘 만하다.

 후금은 이내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지만 이 곳을 奉天이라 한 것도 역대의 황제들이 일이 있을 때마다 이곳으로 피신을 하거나 여가를 보냈던 곳이고, 고궁을 비롯하여 청나라 왕조와 관련이 있는 건축물이 많이 있었음으로 해서라  하니 역사적으로 무시할 곳은 아니란 생각에서 이번 여행의 경유지로 굳이 잡은 곳이기도 하다.

 

 여장을 풀고 나니 밤이 늦어 다른 곳은 갈 수가 없고, 청태조 누르하치의 무덤을 배알하는 것으로 전체 일정이 잡혔지만, 여행길에서 시종일관 룸메이트인 성신여대 K교수와 둘은 일행에서 벗어나 옆길로 새는 반란을 획책했다. 외국 여행에서 궤도를 벗어나 일행을 따돌리고 모험을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대포부터 한 잔 하자고 하여 호텔문을 나섰더니 홍등가도 있었지만 우리를 일본 사람으로 취급하는 바람에 배알이 뒤틀려 거절을 하고 굳이 포장마차집을 찾았다. 그 곳의 체취를 좀더 가까이서 느껴 보고 싶어서였다. 시간이 늦은 밤길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보니 숙소에서도 꽤나 벗어났지만 여권 단속만 잘하면 되겠지 하고 둘은 용기백배했다.

 구멍가게에 면한 도로변에 파라솔 몇개를 비치한 포장마차집을 찾아들었다. 험상궂은 중국 청년 여나문 사람이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중국어회화에서 가까스로 익힌 몇 마디 말로 비주(맥주)를 주문했다. 12시가 넘은 한밤중에 난데없이 나타난 이방인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눈길이 불량스러웠다. 한국 돈의 위세가 당당했던 때라 물건값에 어느 정도 바가지를 쓰는 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게 중국을 여행하는 한국사람의 한 심리이기도 했지만 그게 오히려 위험스러운 발상인지도 모른다.

 한잔 두잔 술이 부풀어 올라 호언장담의 기세로 한국말을 떠들어대며 오기를 부렸다. 그네들의 눈에 눈꼴사나웠을지도 모른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불량기 감도는 청년들이 나이프를 꺼내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본 것도 그 때이다.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낀 것은 순전히 동물적인 감각에서다. 정면 도전 단계는 아니었지만 은근한 위협임이 틀림 없었다. 도전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 상수였다. 맹견 옆을 무사히 지나가는 지혜같은 것이다. 꽁무니를 빼어서도 안 되고 섣불리 반응해서도 안된다. 그러면서도 은밀한 방어태세는 필요한 것이다. 주먹질은 내 인생의 사전에는 없는 행위이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벽을 등지고 앉았다.  1대 다수의 대결에서 공격의 반경을 줄이는 포진법인 것이다. 나보다 등발이 더 좋은 K 교수가 오히려 내 눈치를 보는 형편이었으니 내라도 태연자약하지 않아서는 위기를 모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에 선물하려고 수두룩하게 준비해 간 일회용 라이터를 호텔에 두고 온 것이 그때만큼 후회스러웠던 때는 없었다. 작은 선물로 호의만 베풀었으면 간단하게 풀려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

 K 교수와 나는 대범한 척 술을 계속 마셨다. 불량청년도 청년이려니와 포장마차집 주인의 입장도 있으니까 손님을 보호하려는 처지를 기대해 본 것이다. 이 눈치 저 눈치로 이방인을 저울질 해 보는 그네들을 건너편 테이블에 두고 술을 마시는 기분이란 영락없이 맹견 곁을 지나가는 긴장감 그것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다행한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불러들인 건지 아니면 지나다가 들른건지는 몰라도 그네들 형님뻘 되는, 근방에 사는 조선족 청년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 관광객이 자유롭게 드나들던 시절이 아니고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 아닌 곳에서 뜻밖에 만난 동포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수인사를 트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조선족 3세로 워낙 서툰 우리말이어서 의사소통에 애를 먹었다. 그렇지만 동족끼리 만나 대화하는 분위기를 읽은 불량청년들은 대번에 수그러들어 적의를 꺾는 바람에 자칫 발생했을지도 모를 위기는 면한 것이다. 동포의 고마움을 그렇게 깊이 느껴본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경북 영천에 살았었다는 조선족 3세인 그는 은행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차림새나 품위로 봐서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의 깔끔한 품위의 은행원에 대한 인식상의 차이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조국에 대한 특별한 향수는 없어도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한국을 조국으로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올림픽을 개최하여 11억 중국 인구의 세력을 누르고 중국을 이긴 나라,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민주화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 경제가 성장하여 마음대로 세계를 여행하고 돈도 많은 나라라고 면구스럽기도 한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는 것이었다.

 저의가 의심스러울 만큼 조국의 여행객에게 집착하는 분위기에 불안한 생각도 들고 하여 이쯤해서 자리를 떠야겠다 싶어, 구멍가게 주인에게 계산을 요구하였더니 200 위안이란다. 당시의 환율로 따져 우리 돈 2만원에 불과하니 아무것도 아닌 돈이었지만 그 곳 교수 한달 월급이 5,6 백 위안이던 중국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짠돌이가 되기 마련이어서 계산을 따졌더니 120 위안이었다.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30 위안을 더 얹어  150 위안을 주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값을 따지지 않고 무한정으로 맥주를 내어 놓는다. 또다른 측면의 인심이었던 것이다.

 조선족의 그 청년은 자기집에서 담은 과일주까지를 들고 나와 물량공세를 벌였다. 밤 11시에 포장마차집에 들런 시간만 알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잊고 있었던 상태였으니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같이 간 K 교수를 집적여 자리를 떴다. 호텔까지 동행한다고 따라나서는 조선족 청년을 뿌리치고 호텔로 도망치다싶이 달렸다. 술김에서인지 고국동포에 대한 향수에서인지 집요하게 따라붙는 동포청년을 떼낸 기분은 아직도 석연치 않다. 숙소인 호텔방에 들어와 커튼을 열어 젖히니 먼동이 트고 있었다. 부질없는 객기로 밤을 샌 것이다.

 

 장춘을 거쳐 연길 백두산을 가기 위하여 여정을 재촉해야 했다. 그 쪽은 만주벌판을 관망하기 위한 기찻길이어서 역으로 가는 길에 고궁이 있는 북릉공원으로 향했다. 시장길 연도엔 채소와 과일과 곡물 등 먹을거리의 집산지였다. 자전거와 손수레에 우마차까지 끼여든 인산인해 속을 헤치고 북릉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또 다음의 기차 시간에 쫓겨야 했다.

  가면과 페이스 페인팅으로 야단스럽게 치장한 그로데스크한 얼굴에 빨갛고 파랗고 노란 원색의 바지와 재킷 차림의 쌍룡총 벽화에서나 봄직한 고구려인의 복장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깃털을 모아 펼친 것 같은 특이한 부채를 든 심양시 가옥표연단(瀋陽市 佳玉表演團)의 북릉공원에서의 민속공연을 끝까지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심양을 출발, 기차로 만주벌판을 달려 장춘으로 갔다.  ( 1993. 7 )

 

                                                               如    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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